[스미레의 육아에세이] 그런 집을 너에게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그런 집을 너에게
  • 스미레
  • 승인 2023.07.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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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요! 오늘은 집을 혼자 재우면 안 돼요. 빨리 가요.”  비가 그치기 무섭게 어디 멀리 좀 가고 싶다던 녀석이 집 떠난 지 한나절 만에 집 타령이다. 고속도로를 한참 달려 도착한 작은 도시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엄마, 우리가 없으면 집도 우릴 보고 싶어 할까?" 물음표만 가득한 내 표정에 아이는 냉큼 “집도 우리 가족이야!  힘주어 말한다.

어라, 정말. 그리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얼른 머릿속 도화지에 우리 셋을 그려보았다. 집에서 손질 안 된 머리에 파자마 같은 느슨한 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그 그림에서 우리 셋만 뚝 떼어 여기저기 근사한 곳에 세워봤지만 어휴, 어색할 뿐이다. 역시 ‘가족’이라는 그림은 ‘우리 집’이라는 배경과 함께일 때 비로소 완전해지나 보다.

문을 열자 익숙한 생활의 냄새가 다정히 끼쳐왔다. 우리 집 냄새가 이렇구나. 떠난 건 잠시였는데 어쩐지 오랜만인 것 같기만 한 내 집 냄새다. 화분에 물을 주고 신발을 정리하는 소소한 일들도 간만인 듯 달가웠다.

몇 끼 건너뛰었다고 그새 데면해진 부엌과도 마주하였다. 조금 멀어진 거리를 좁힐 방편이랄까, 무언가를 오래오래 푹 끓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솥에 밥을 안치고 뚝배기에 맛국물을 달이는데, 더 그럴 수 없이 안온했다. 그토록 새삼스럽던 월요일. 그 시작엔 ‘집도 가족’이라는 아이의 말이 있었다.

어느 해였던가 스탠드가 들어 있던 커다란 상자에 아이와 창문을 뚫고 집을 만들어 놀던 기억이 난다. 자. 이걸로 네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만들어 봐, 라는 말에 아이는 크레파스와 색종이 대신 생각지도 못한 손전등, 쿠션과 담요, 책 몇 권을 가지고 상자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다른 무엇은 더하지 아니하고 천장에 설기설기 손전등을 달고 쿠션에 기대어 누워 담요까지 척 덮더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상자 집 문패에 아이가 달아준 이름은 ‘잠 책 집’이었다. 이름이 하도 간결하기에 설마 하며 (그래도 뜻은 한 번 물어줘야 할 것 같아서) 무슨 뜻이니 물었더니 아이가 창문을 빼꼼 열고는 “집이니까요. 잠도 자고 책도 읽는 곳이에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런 집이 제일 좋거든요. 스르르 그런 말을 덧붙이며.

그 한마디를 여전히 품고 산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은 이불 안에서 잠들고 그들의 체온 곁에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는 집. 덕분에 집을 이루는 많은 요소 중에 우리가 정말 꼭 쥐고 살아야 할 게 어떤 것일까를 오래오래 곱씹어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아이는 이미, 집에 관해 나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 나름의 집을 만들어 그 안에 산다. 그리고 집은, 우리 기억 속에 집을 짓고 산다. 우리의 기억과 무의식이 집의 집인 셈이다. 내가 예전에 살던 집들 역시 그렇다. 부모님의 한결같은 마음과 정성이 담긴 우리 집은 늘 아늑하고 쾌적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과 별개로 내 마음이 좋지 못한 시절에 살았던 집은 끝내 어둡고 바스러질 듯한 심상으로 남아있다. 심지어 실제보다 밉게 기억되기도 한다. 반면 낡고 작은 집이었지만 어여쁜 기억으로 남은 집도 있다.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수십 년 뒤에 우리가 지금 사는 집의 평수나 아파트 브랜드를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 안에 남는 것은 그 안에서의 사소한 부대낌, 매일매일 나눠가던 꿈, 서로의 따스한 기척이 아닐까.

집을 보살피는 이로써 나는 요즘 쓸고 닦고 광내고 비우는 일 이상의 무언가를 하고 싶다. 사랑하고 느끼며, 우리의 영혼을 한 줄금이라도 성장시킬 수 있는 집. 마치 잘 닦인 거울처럼, 나란 사람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순진무구한 집. 그래서 때로는 나를 위로하고 때로는 나를 일깨우기도 하는. 낙서 자국 가득한 벽에도 뻑뻑한 창틀에도 녹슨 문고리에도 평생 누구도 앗아가지 못할 우리의 이야기가 어룽더룽 쌓여가는 집. 그렇게 함께 나이를 먹고 함께 삶의 모퉁이를 돌기도 하며 저녁의 온건함과 아침의 찬란함을 가득 품은 집. 진실, 선함, 아름다움. 그런 가치가 깃든 집의 기억을 아이에게 주고 싶다.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내향 육아』, 『취향 육아』 저자. 자연 육아, 책 육아하는 엄마이자 에세이스트.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짓는 엄마 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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