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우리나라에서 매년 최다 관중을 동원하는 국민 프로스포츠다. 야구팬에게는 연중 가장 큰 축제인 ‘KBO 리그 올스타전’이 오는 14일과 15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지난해 행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이맘때 열린 올스타전의 주인공은 21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며 ‘은퇴 투어’의 시작을 알린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였다. 사직구장은 이대호가 국내에서 내내 몸담았던 롯데 자이언츠의 홈구장이다.
그의 은퇴는 사람들에게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첫 번째 이유는 녹슬지 않은 실력 때문이다. 이대호는 일찍이 2022 시즌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공언했지만, 여전히 현역 최고령인 나이가 무색하게 정상급 기량을 과시했기에 팬들도 설마 하며 반신반의했다. 대한민국 3대 ‘마요’가 ‘치킨마요’, ‘참치마요’, ‘이대호 은퇴하지 마요’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떠돌았다.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영구결번으로 남을 정도로 헌신한 롯데 자이언츠에서 리그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8위로 지난 시즌을 마감한 롯데 자이언츠는 예년에 비해 올해는 선전해 시즌 중반까지 중상위권을 지켰다. 팬들은 팀이 부진하던 시절 든든한 기둥이 돼 준 ‘빅보이’를 추억하며, 아직도 은퇴를 아쉬워한다. 그가 은퇴를 결심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최근 출간된 첫 자서전 『이대호,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현대지성)에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야구선수 이대호의 진솔한 속마음과 팬들에게는 다소 갑작스럽게 보였던 은퇴에 얽힌 뒷이야기 등이 자세하게 담겼다.
이대호는 2021년 시즌을 앞두고 롯데 자이언츠와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계약을 맺었다. 2년간 계약금과 연봉으로 8억원씩 총 24억원이 보장됐고 우승 옵션이 연간 1억원씩 걸렸다. 이대호는 “마지막 계약을 놓고 복잡한 실랑이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면서도 “4년 전 미국에서 돌아올 때 맺었던 계약과 비교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개인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팀을 위해 복귀했던 일 그리고 그동안 팀을 위해 내가 해냈던 일들에 대한 예우를 받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선수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계약 규모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가장 열망했던 것은 역시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 이대호는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죽을 만큼 노력은 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각오로 2년간 “죽어라 야구만 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팀 스포츠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성적을 끌어올리기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더 늦기 전에 가족에게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자리에서 물러남으로써 후배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 등 숱한 고민이 부진한 성적과 맞물렸다.
은퇴 결심을 알리고 나자 야구계 선배와 동료들로부터 만류하는 연락이 쏟아졌다. “선수로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설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타율 3할과 20홈런을 유지하는 타자가 은퇴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와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당시 JTBC 야구 예능 <최강야구>에서 감독을 맡고 있던 전직 야구선수 이승엽만이 “우리 팀에 4번 타자 자리가 비는데 얼른 이리 온나”라며 그의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대호는 이후 실제로 <최강야구>에 합류해 방송인으로서 인생 2막을 순조롭게 이어 가고 있다.
그러나 책 제목의 ‘도전’은 방송 활동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이대호는 자신을 선수로서는 확실한 경력을 쌓았지만, 한 사람으로 보면 “그저 20년 넘도록 지름이 100미터쯤 되는 조그만 그라운드 안에서만 맴돌다가 마흔이 넘어서야 세상으로 나온 미숙아”라고 평가했다. 선수 시절에는 성적에 지장이 갈까 봐 어린 아이들과 남들처럼 해수욕장 한 번 다녀오지 못했다.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면서, 부산의 덩치 크고 목소리 큰 극성 야구팬인 인간 이대호로서” 평범하지만 자유롭게 한 번뿐인 삶에 충실하고자 하는,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