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뒤떨어진 고전동화, 굳이 다시 써야 할까?
시대에 뒤떨어진 고전동화, 굳이 다시 써야 할까?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3.07.01 0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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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디즈니의 최신작인 실사 영화 <인어공주>의 글로벌 흥행 성적은 원작 애니메이션의 인기에 비하면 초라했다.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에게 주인공 인어공주 역을 맡긴 캐스팅에 대한 거센 반발이 흥행 실패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1989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가 엄청난 흥행을 거둔 뒤로 ‘찰랑이는 빨간 머리’와 ‘흰 피부’는 인어공주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됐다. 그래서 일부 팬들은 이번 캐스팅이 ‘정치적 올바름’을 과도하게 의식한 원작 훼손이라며 ‘#NotMyAriel(나의 에리얼이 아니다)’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고, 이른바 ‘평점 테러’를 했다. 반면 또 다른 팬들은 이를 ‘인종차별’로 규정하고, ‘다음 세대 아이들은 새로운 인어공주를 보며 자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섰다.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출판계에서도 오래전 출간된 작품을 현재의 감수성에 맞게 다듬어 선보이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저자가 이미 사망한 고전 작품이라면 본인의 동의를 구할 수 없기에 이러한 수정 작업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도 종종 벌어진다.

특히 아동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동화책을 두고는 더욱 첨예한 의견 대립이 펼쳐진다. 지난 2월, 영국 출판사 퍼핀 등이 동화 작가 로알드 달의 작품에서 주인공이 읽는 책도 다른 책으로 바꿀 만큼 철저하게 외모, 젠더, 인종 등에 대한 편견이 담긴 표현을 고친 사실이 알려지면서 영국 총리를 비롯한 저명인사들까지 의견을 내기도 했다. 당시 ‘검열’이라는 말까지 나오며 반발 의견이 우세하자 출판사 측은 ‘개정 버전’과 함께 ‘원작 버전’도 출간하겠다고 밝혔다.

1990년대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오른 제임스 핀 가너의 책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는 표면적으로는 제목 그대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다시 쓴 고전동화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페미니즘, 문화 상대주의, 동물보호주의 등 다양한 이론과 사상에 부합하도록 동화의 장면과 표현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 그러나 가너는 한 인터뷰에서 집필 동기에 대해 “고전적인 아동문학 작품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불쾌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개작을 시도하는 ‘과민반응에 대한 풍자적 모방’”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백정국 숭실대 영문과 교수는 2021년 논문 「언어적 유토피아의 불편함: 정치적으로 올바른 고전동화의 역설」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뒷받침하는 각종 이론과 사상은 상호 배타적이라 모든 방면에서 ‘올바른’ 이야기는 불가능하다고 봤다. 가너의 작품처럼 상황에 따라 다른 가치를 선택해 수용하면 작품 내 논리에 모순이 생기고, 도리어 독자의 혼란을 가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개작 시도는 고전의 역사적 가치를 파괴하기 때문에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예술은 “비판과 해석의 대상은 되어도 사후 수정의 대상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고전에 대한 개작 시도는 ‘해석’인가, ‘사후 수정’인가. 이 주제에 대해 이토록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바로 이 표현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어공주> 논란 역시 애니메이션 원작에 대한 ‘사후 수정’으로 보는 쪽과 색다르게 ‘해석’한 시도로 보는 쪽의 대립이다.

사실 우리가 익히 아는 옛이야기들에는 수 세기 동안 전해져 온 특성상 세부 줄거리 등이 다른 수많은 이본(異本)이 존재한다. 우리가 아는 ‘인어공주’도 최초의 원작인 안데르센의 동화에서는 인종이나 국적이 명시되지 않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기 전까지 여러 인종으로 그려져 왔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작가인 리베카 솔닛은 최근 고전동화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해방자 신데렐라』,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를 출간했는데, 이중 ‘신데렐라’는 알려진 이본만 최소 300여개다. 솔닛만의 ‘해석’이 담긴 신데렐라도 이제 그중 하나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대형 출판사 위즈덤하우스를 통해 2019년 출간된 책 『선녀는 참지 않았다』의 부제는 ‘고정관념‧차별‧혐오 없이 다시 쓴 페미니즘 전래동화’. 여성학자 정희진은 책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에서 해당 책을 추천하며, “새로운 상상(콘텐츠)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다시 쓰기(re-writing), 다시 생각하기(re-thinking)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고전동화는 해당 시대의 생활상과 가치관 등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문학사적 사료다. 현대의 감수성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과거의 작품들을 지우개로 지우듯 역사에서 지워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본(異本)이 그러하듯 고전동화를 그 자체로 존중하면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해석’을 입히는 작업은 언제나 가능하고, 또 필요하지 않을까.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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