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고록 낸 베르나르 베르베르 “내 삶은 내 방식대로 기억하고 싶었다”
첫 회고록 낸 베르나르 베르베르 “내 삶은 내 방식대로 기억하고 싶었다”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3.06.29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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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사진=열린책들]

‘개미의 회고록’. 프랑스 SF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최근 출간한 자전적 에세이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의 원제다. 원제에 ‘개미’를 붙인 이유는 한국에서 170만부 넘게 판매된 데뷔작이자 출세작 『개미』 때문만은 아니다. 천재라 불리기도 하지만, 작가로서 누구보다 개미처럼 성실하고 규칙적인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개미』 출간 후 3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5시간 반씩 글을 썼다. 거의 1년에 1권꼴로 신간을 냈으니 다작의 ‘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8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음식점에서 4년 만에 한국을 찾은 베르나르 베르베르(61)의 내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올해에만 소설 『꿀벌의 예언』(전 2권)과 위의 에세이 등 총 세 권의 책을 국내에 출간했다. 주로 소설 위주로 활동해 온 그가 자신의 삶과 글쓰기를 전체적으로 회고하는 에세이를 펴낸 건 처음. ‘개미의 회고록’을 집필한 계기를 묻자 그는 “다른 사람이 내 인생에 대해 맞지 않는 방향으로 기술하는 것을 원치 않아 직접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덟 살 무렵부터 작가로서의 기질을 보인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때부터 벼룩, 사자, 연인들이 사랑을 맹세하는 나무, 살아 있는 성(城) 등 인간이 아닌 존재를 주인공으로 글쓰기를 좋아했다. 이후 독창적인 이야기를 쓰려는 욕심에 과학에까지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전문가급으로 심층 연구한 ‘개미’를 첫 소설로 등장시켰다. 여느 작가들처럼 문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 없이, 장장 12년 동안 120번에 가까운 수정 작업을 거쳐 어렵게 첫 책을 냈던 그는 스스로를 문학상이나 기성 문단의 인정과는 거리가 먼 ‘체제 밖의 작가’로 규정했다.

문학적 스승으로 여기는 SF 소설의 선구자 쥘 베른과 필립 K. 딕의 공통점으로 “생전에 문학계로부터 충분히 인정받지 못해 괴로워했다”는 점을 꼽기도 했다. 본인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스토리텔러’라는 자리에 만족한다. 프랑스에는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명예를 얻으면 더는 쓰지 않는 작가들도 많은데, 내 관심사는 그런 명예보다는 대중에게 다가서는 일이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과거, 유독 자신의 작품에 관심을 두는 독자가 많은 한국을 ‘제2의 조국’처럼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도 “프랑스 독자들은 노스탤지어(nostalgia)에 대한 집착이 강한 반면 한국 독자들은 미래지향적인 경향이 있다”며 작가로서 자신이 성공한 데는 당시로서는 낯설었던 소재를 알아봐 준 한국 독자들과 출판사의 덕이라고 강조했다. 1994년 처음 한국에 방문했을 때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가 소개했던 어린 딸은 어느덧 그의 편집자가 됐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국과 맺은 인연이 이렇게 대를 이어 계속된다는 것이 신기하다”며 웃었다.

한국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도 드러냈다. “침략적인 기질을 가진 주변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도 고유의 문화와 언어, 정신을 보존해 온 점이 놀랍다고 했다. 집필 중인 차기작 『왕비의 대각선(가제)』은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지난 28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사진=열린책들]

매일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머리맡에 두었던 수첩에 그날 꾼 꿈을 기록한다는 그는 여전히 천진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간직하고 있었다. 인간 작가를 위협할 수도 있는 챗GPT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인공지능은 불이나 망치, 핵, 인터넷과 같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신기술을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단 우선 관점을 바꿔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신작인 『꿀벌의 예언』에서는 기후 위기와 살충제 사용 등으로 세계적인 문제가 된 ‘꿀벌 집단 실종’이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멸종을 초래할 수 있다는 동시대적 설정에서 출발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거대한 모험을 그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작가로서 이루고 싶은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오지 않는 독자를 하염없이 기다렸던 생애 첫 사인회를 추억하며 “이루고 싶었던 것은 다 이루었다”고 말했다. “글을 쓸 힘이 있는 한, 내 책을 읽어 줄 독자가 존재하는 한” 계속 쓸 것이라는 게 그의 다짐이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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