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빼곡히 늘어선 회색빛 비석들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바람결에 흔들리는 초록색 잔디 아래에 누운 사람들은 무슨 말을 들려주고 싶은 것일까? 갑자기 “내 앞에 서서 울지 말아요. 나는 그곳에 없고. 나는 잠들지 않으니. 나는 불어오는 천 개의 바람이요”라는 노랫말이 떠올랐다. 자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다가가 속삭이는 바람이다. <4쪽>
기념사업회, 출신지, 출신학교, 종교계 등에서 추모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년 전 ‘순국선열의 전당’을 건립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만 이렇다 할 진전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상징성과 예술성을 아울러 갖춘 신성한 장소(shrine)가 되었으면 합니다. 후손이 없는 분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후손을 대신하여 특별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120~121쪽>
15세 소녀 동풍신 열사가 있지 않습니까? 1919년 3월 15일 명천 화대 장터 시위에는 5천여 명이 참가했습니다. 동풍신 열사는 만세를 부르다가 순국한 부친(동민수)을 등에 업고 시위에 앞장서다가 체포되었지요. 재판정에서 ‘총살당한 아버지를 대신해 만세를 불렀다’고 당당히 주장한 끝에 2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순국하였습니다. 동풍신 열사는 유관순 열사보다 두 살 아래였습니다. “남쪽에 유관순이 있었다면 북쪽에는 동풍신이 있었다”라 할 정도로 북한지역을 대표하는 순국열사입니다. 그런데 위패조차 세워져있지 않습니다. <121쪽>
한 팔이 잘려 나가 ‘혈녀(血女)’라 불린 여성도 있었다. 1919년 3월 10일 광주 만세 시위에 앞장섰던 윤형숙(윤혈녀)은 군도에 왼팔이 잘리고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잠시 쓰러졌다가 일어나 오른손으로 태극기를 집어 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1919년 3월 3일 개성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의 시위에 참가하여 1년간 옥고를 치른 심영식은 맹인 여성이었다. <184쪽>
이곳에 묻힌 분들은 첫 방울이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이어진 방울로 하여 오늘의 우리가 있겠지요. 첫 방울이 된 그분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한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기억해달라는 것입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현충일 연설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254쪽>
[정리=김혜경 기자]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들』
김종성 지음 | 유아이북스 펴냄 | 392쪽 | 2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