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명작, 여전히 명작일까…
과거의 명작, 여전히 명작일까…
  • 장서진 기자
  • 승인 2023.06.25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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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세상에 널리 알려진 훌륭한 작품을 뜻한다. 명작을 떠올리면, 각자 떠올리는 작품이 있기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등등…. 누구나 들어본 적 있는 작품들이며, 명작이라는 이름 앞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세상에 인정받는 명작이란 그런 것이다.

영화, 문학, 그림 등 모든 예술작품들은 명작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는 순간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사랑을 받는다. ‘센세이션’한 등장으로 처음부터 인정받는 명작이 있는가 하면, 과거 세간의 빛을 받지 못하다가 후세기에 인정받는 명작도 있다. 주로 명작이라 하면 전자를 떠올리지만, 후자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고흐의 그림. 고흐가 작품 활동을 하던 당시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지만, 살아생전 1개의 작품밖에 팔지 못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가 죽은 뒤 미술계의 흐름이 바뀌면서 그의 작품은 점점 알려지기 시작했다. 고흐의 작품은 후세대 야수파, 초기 추상화, 표현주의의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현재 그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로 알렸다.

시대에 따라 명작의 가치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과거의 명작이라고 불리던 작품이 현재에는 명작이라고 불리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할까. 시대는 변하고,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과 이념, 시선도 바뀐다. 현재의 우리 눈에 명작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작품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뜻밖의 미술관』의 김선지 저자는 그림을 예시로 들며 “한때는 추앙되었으나 지금은 비난받게 된 화가도 있다”라고 말한다. 과거 명작으로 인정받는 그림이었으나, 현재의 가치관에서는 아름답게만 볼 수 없는 작품. 고갱의 그림이 그렇다.

폴 고갱은 폴 세잔, 빈센트 반 고흐와 함께 후기 인상주의의 주요 화가이자 모더니즘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다. 고갱은 나비파부터 야수파, 입체파에 이르기까지 20세기 모더니즘 미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울러 당시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고흐와 달리 살아생전 다수의 작품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현대의 시점에서 그의 몇몇 작품들은 불편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마나오 투파파우>, <아레아레아> 등 타히티섬 여성 주민들을 대상화한 작품이 그렇다.

고갱은 평소 유럽의 부르주아 사회를 혐오했다. 산업화 사회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그는 우연히 파리 박람회에서 본 타히티 전시관에 매료돼 남태평양 타히티로 떠났다. 그러나 그의 상상과 달리 타히티는 프랑스의 식민지로서 서구 문화와 기독교 신앙으로 물들어 유럽화되고 있었다. 당시 타히티의 삶을 인정할 수 없었던 그는 직접 야생의 삶에 대한 판타지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의 그림에서는 타히티 주민들이 원시사회에서 걱정과 근심 없이 노래와 섹스만 즐기며 지내는 것처럼 묘사됐다. 또한 타히티섬 생활을 선정적이고 에로틱한 모험인 것처럼 기록했다. 아울러 그의 작품 중 타히티 주민들을 ‘야만인’이라는 제목으로 표현한 작품도 상당하며, 그림 속 여성들은 타히티섬 민속의상을 입거나 아예 누드인 상태로 표현되곤 했다. 그림과 함께 기록된 그의 자전적 소설 『노아노아』는 실제 타히티 생활의 이야기가 아닌 유럽인의 호기심을 끌어내기 위한 판타지적 이야기가 주였다.

근래 들어 학계 일부에서는 그를 문화 식민주의자 혹은 미성년 소녀들을 성 착취한 소아성애자라 비판하고 있다. 실제 그의 뮤즈이자 현지처인 원주민 소녀 테헤아마나는 13세로 기록됐다. 별거 중이었지만, 덴마크인 아내 메테소피 가드가 있는 상황에서 테헤아마나를 비롯해 여러 타히티 소녀들과 성적 관계를 맺으며 그림을 그렸다. 고갱은 유럽 남성이 식민지 여성을 상대로 누렸던 특권을 향유했다.

고갱의 이름 아래, 그의 그림은 오랫동안 아름답다 인정받았다. 그러나 현재, 그의 그림 속 이면과 마주한다면 명작이라는 칭호는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명작의 조건에는 ‘훌륭한’이라는 형용사가 붙기 때문이다.

[독서신문 장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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