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된다… 美 안보 전문가가 말하는 ‘재난을 대하는 법’
역사는 반복된다… 美 안보 전문가가 말하는 ‘재난을 대하는 법’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3.06.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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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북한의 군사 정찰위성 발사 이후 서울시와 행정안전부는 엇박자 행정과 상황에 대한 설명, 대피 방법이 나와 있지 않은 재난문자로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사태는 시민들에게도 관련 재난에 대한 대비와 경각심 부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재난문자를 받고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혹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대피를 비롯한 어떤 대처도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인명 피해가 없었지만, 실제 위급상황이었다면 이로 인해 피해 규모가 더욱 커질 수도 있었다. 재난의 조짐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던 ‘침착한’ 정부와 시민들의 모습은 마치 한 재난 영화의 서늘한 도입부 같았다.

‘침착하게 하던 일을 계속하라(Keep Calm and Carry On)’.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영국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전 세계인에게 익숙한 슬로건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정작 영국 전쟁 위원회는 전쟁 중에 해당 슬로건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슬로건이 담긴 포스터는 사후에 다른 포스터들과 함께 상자 속에서 발견됐다. 실제로 캠페인에 사용됐던 슬로건은 ‘자유가 위험에 처해 있다’와 ‘당신의 용기, 쾌활함, 결의가 우리를 승리로 이끈다’였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토안보부 차관보를 역임한 미국의 국가 안보 전문가 줄리엣 카이엠은 영국이 그 유명한 슬로건의 공개를 보류한 이유에 대해, “‘침착하게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그야말로 재난의 시기에 처칠이 시민들에게 요구한 것이 아니다. (…) 영국 국민이 싸움에 나서고, 주체성을 갖고, 악마(재난)에게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손실이 있겠지만 그 손실은 줄어들 것이었다”라고 추측한다. 

이는 카이엠이 최근 출간한 책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민음사)에서 역설하는 ‘재난이 일상화된 시대에 재난을 대하는 법’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재난 이후 완전히 새로운 질서로 재편된 세계를 뜻하는 ‘뉴 노멀(New Normal)’은 결코 오지 않는다고 단언하며, ‘나우 노멀(Now Normal)’을 살기 위해 재난을 ‘관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재난 이후 일상 복구를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재난의 가능성을 항상 점검하고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사실 혼란을 일반적 현상으로 대비하는 것은 재난을 만드는 특수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분명 터무니없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비가 올 것을 예상하고 우산을 차에 두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재난 관리의 성과 지표는 ‘완벽한 재난 발생 예방’이 아닌, ‘피해 결과 최소화’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진이 잦은 일본이 ‘내진 설계 강국’이 되었듯이 말이다.

그는 재난 대응에 있어서는 과민 반응보다 과소 반응이 훨씬 나쁘다고 주장한다. 이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준비의 역설’이라는 개념이 있다. 재난에 성공적으로 대비했다면, 예상보다 피해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대비를 위한 조치들이 언뜻 시간 낭비처럼 보일 수 있음을 뜻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9년 확산했던 ‘밀레니엄 버그(Y2K) 공포’다. 디지털이 보급된 이후 처음 맞는 새천년에 전문가들은 컴퓨터의 구시대적 연도 시스템이 혼란을 일으켜 은행, 의료, 교통, 운송, 전기 시스템을 마비시킬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기업들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기술적 대비를 했고, 그 결과 실제로 2000년이 찾아왔을 때 대규모 재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과장된 ‘밀레니엄 버그 공포’에 대한 회의론이 득세했다. 하지만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전문가들은 당시 우려는 현실적이었으며 훌륭한 대비가 재난을 막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미국에서 수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좀비 영화를 비롯해 종말론적 유형의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이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팬데믹에 더 잘 대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소 재난과 죽음을 다룬 내용을 많이 접한 것이 실제 재난에 대비할 동기를 부여한 것이다.

저자는 물론 “하늘이 무너진다고 소리치는 것이 정확히 생명을 구하고 재산을 보호하고 지역사회와 우리 가족을 더 잘 준비시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이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면 악마는 이긴다. 이 무한한 파괴의 고리 속에서 우리는 다음번에는 반드시 더 잘할 수 있다”라며 재난이 언제든지 찾아온다는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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