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잎쌈을 먹으며
호박잎쌈을 먹으며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3.06.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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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여름철엔 도통 입맛이 없다. 이는 필자뿐만이 아닌가 보다. 요즘 입맛이 없어서 밥 대신 빵, 샐러드 한 접시로 아침 식사를 한다는 지인 민 여사다. 그녀는 곡물 빵 한 조각에 땅콩 잼을 잔뜩 바르고 양상추와 양배추를 얇게 썰어 소스와 버무린 게 아침 식단 전부란다. ‘밥식이’라는 별명에 어울림직한 필자는 이런 음식으론 아침 식사를 하면 온종일 매가리가 없다. 해서 다소 성가셔도 아침 식사는 꼬박꼬박 한식으로 차려 먹는다. 이때 비만의 적이라는 탄수화물 덩어리인 잡곡밥은 한 공기 다 비운다. 어려서 어른들이 늘상 해오던, “나이 들면 밥심으로 산다”라는 말에 전적 공감하며 말이다.

평소 식사 때 유독 쌈 싸 먹는 걸 즐긴다. 쌈이라 하여 꼭 푸성귀만이 전부가 아니다. 해조류로도 쌈을 싸 먹을 수 있다. 그 재료로써 다시마, 심지어 물미역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야채인 상추도 빠트리지 않는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아하는 쌈으로썬 호박잎쌈을 꼽을 수 있다.

잠시 시골 살 때 일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토담에 뻗어나가는 호박 줄기에 매달린 어린잎만 골라 따서 가마솥 안 밥 한구석에 넣어 쪄주곤 했다. 쌈 싸 먹을 땐 쌈장이 맛있어야 한다. 이때 어머닌 뚝배기에 된장을 되직이 풀고 애호박과 두부, 풋고추를 듬성듬성 썰어 넣어 쌈장을 자박하게 끓여 내곤 했었다. 적당히 쪄진 호박잎을 손바닥 위에 쫙 펴고 따끈한 보리밥 한 술 위에 이 강된장을 듬뿍 넣어서 호박잎쌈을 싸먹곤 했다. 당시 그 맛은 일품이었다. 혀를 자극하는 호박잎의 까슬까슬한 감촉도 특유의 구수한 맛으로 상쇄시키는 호박잎쌈이다. 요즘도 어머니 손맛이 그리우면 재래시장에 나가서 할머니들이 벌인 노점상에서 호박잎을 구입하곤 한다.

이렇듯 쌈밥을 좋아하는 필자를 볼 때마다 짓궂은 농담을 잘하는 친구가 우스갯소리를 건네곤 한다. “사람은 너무 솔직한데 밥 포장을 엄청 좋아해”라고 놀리듯 말이다. 그 친구는 상추쌈, 호박잎쌈 등은 아예 입에도 안 댄다. 그래서인지 어쩌다 만나 반가운 마음에 점심 식사라도 할 양이면 입맛이 서로 달라 이 시간만큼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점을 찾곤 한다.

필자는 소박하고 담백한 음식을 좋아한다. 나이 들수록 더 하다. 고등어조림, 두부조림, 혹은 버섯찌개 등과 우렁이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 그리고 갖은 야채가 쌈으로 나오는 쌈밥이 좋다. 그러나 그 친구는 중국 음식, 혹은 베트남 음식, 인도 음식을 선호한다. 이렇듯 서로 입맛이 전혀 다르다 보니 모처럼 만나 서로 얼굴 마주 보며 식사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럼에도 수십 년 넘게 친분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사람은 함께 밥 먹으며 정든다고 하지 않던가.

친구 말마따나 평소 성격이 솔직하여 가리개를 싫어하는 필자다. 하지만 음식만큼은 밥을 포장(?)해 먹는 각종 쌈 종류를 좋아한다. 이로 보아 성향과 음식과는 별반 상호 작용은 없는가 보다. 요즘 가까운 마트를 가보면 진열된 물건들이 과다포장돼 있다. 특히 명절 땐 이 포장 문화가 기승을 부린다. 갈비 세트가 담긴 포장만 해도 그렇다. 고기보다 포장지가 더 과하다. 과자인 경우도 그렇잖은가. 내용물은 적은데 봉지 안에 과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넣은 가스가 빵빵하여 포장지만 부풀어 있어 실속이 없다.

젊은 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논술을 지도할 때 일이다. 마침 스승의 날 일이었다. 할머니랑 단둘이 사는 결손 가정의 어린이였다.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인 그 아이가 묵직해 보이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찾아왔다. 아이는 머뭇거리며 그 비닐봉지를 내 앞에 불쑥 내밀곤 뛰다시피 눈앞에서 사라졌다. 얼결에 그것을 받아들고 안을 살펴보니 닭다리에 살이 통통히 오른 생닭 두 마리가 그 안에 들어있었다.

이것을 옆에서 본 어느 선생님이 한마디 거든다. “무슨 선물을 생닭을 갖고 오며 그것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오느냐”라고 말이다. 그러나 필자는 생각이 달랐다. 무엇보다 그 아이의 마음이 참으로 고마웠다. 또한 ‘그까짓 화려한 포장지가 무슨 대수일까?’ 싶기도 했다. 흔히 ‘포장이 선물의 격을 높인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번지르르한 포장보다 선물엔 진실한 마음과 정성이 깃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것을 염두에 둔다면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는 과대포장이나 아님 실속 없이 겉모습에만 혹하는 우리의 포장 사고(包藏 思考)도 가일층 지양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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