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내리기 싫다’는 내가 일본에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들 중 하나일 것이다. 탈것에서 내리는 일 말이다. 그렇지만 이게 꼭 일본이라 많이 하는 생각은 아니다.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일은 아빠나 엄마, 주로 아빠가 운전하는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턱을 얹을 수 있을 정도로 차창을 내리고 차가 달리는 동안 바람을 쐬는 일이었다. 움직임이 멈추고 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귀찮고 또 슬퍼졌다. <14쪽>
이렇게 또 손을 흔드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고 다니던 학교는 100년도 넘는 광주 시내의 오래된 학교이다. 그때 나는 같은 반 친구들과 나란히 운동장에 서 있었다. 시내에서 일을 마치고 우연히 운동장을 둘러보던 아빠는 나에게 크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순간 이렇게 운동장에 서 있는데 나도 같이 손을 흔들어도 되는지 모르겠고 집이 아니라 학교에서 아빠를 마주치는 것에 왠지 멍해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가만히 쳐다만 보았다. 아빠는 계속 손을 크게 흔들었다. 손을 계속 흔들던 아빠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는지 내가 선생님과 아이들과 함께 교실로 돌아갔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에서 아빠는 왜 대답을 안 했느냐고 못 알아본 거냐고 물었고 나는 아마 인사를 해도 되는지 몰라서 못했다고 말했던 것 같다. <63쪽>
어느 장소에서 살아갈 허락을 받는 일. 허락을 받으며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베를린에 오고 나서부터 더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 놓이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사실들이 온 순간에 감지된다. 단지 체류 허가증의 문제를 떠나,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우들로 이 사라짐, 증명의 감각을 매일 매 순간 온몸으로 부딪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기울어진 경사를 기어서라도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올라가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거대한 산이 있을 것이다. 당장은 투명하지만 돌이켰을 때 돌이켜보는 시선의 반사됨으로 영원히 빛나고 있을 산이 있을 것이다. <107~108쪽>
[정리=김혜경 기자]
『바로 손을 흔드는 대신』
박솔뫼, 안은별, 이상우 지음 | 민음사 펴냄 | 236쪽 |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