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배우 서예지와 김정현의 연인관계가 논란이 되면서 ‘가스라이팅’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가스라이팅’은 심리적 학대 중 하나로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상대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말한다. 가해자는 상황 조작을 통해 피해자를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피해자 스스로 신뢰감과 자존감을 잃어가게 만든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가스라이팅 피해자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뉴스를 보다 보면, ‘어떻게 저걸 당하지?’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피해자가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에 화가 나기도 일쑤. 그러나 이는 어쩔 수 없는 그들만의 ‘관계’ 때문이다.
가스라이팅은 친밀한 관계에서 잘 나타난다. 가족, 친구, 연인과 같이 어느 정도의 믿음과 교감이 존재할 때 상대방 한쪽이 우위를 차지하면서 가스라이팅이 일어난다. 그렇기에 관련이 전혀 없는 제삼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한 법. 이런 친밀관 관계 때문에 피해자들은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당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소중한 사람이 자신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상 가스라이팅은 주변에서 눈치채지 못하면 그러려니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미리 알고 방지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책 『가스라이팅』의 저자 스테파니 몰턴 사키스는 가스라이터의 특징을 이야기한다.
가스라이터의 특징은 사과는 하지만, 조건을 붙인다는 것이다. 이를 ‘조건부 사과’라고 일컫는다. 저자는 조건부 사과는 “자신의 행동을 책임지지 않고, 당신의 감정을 인정해줌으로써 이해받는다는 기분이 들도록 당신을 조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스라이터는 피해자에게서 얻을 게 있을 때만 사과한다. 설령 상대가 사과하더라도 잘 들어보면 진정으로 하는 사과가 아니다. 당신이 사과를 요구했거나, 혹은 누군가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들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뿐이다.
다음으로는 상대방을 딜레마에 빠뜨리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딜레마는 두 가지 나쁜 선택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가스라이터가 피해자에게 체중을 줄이라고 말하면서 식사에는 다양한 디저트를 준비한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는 어떤 선택을 해도 행복해질 수가 없다. 또한 가스라이터는 피해자가 어떤 선택을 하든 모든 잘못을 피해자에게로 넘긴다. 그들은 피해자가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하게 만들어 심리적 딜레마에 빠뜨리는 것을 즐긴다.
상대방을 고립시키는 것 또한 가스라이터의 특징이다. 가스라이터는 피해자의 주변 사람들이 피해자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며, 그들과 있을 때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세뇌를 건다. 그러면서 둘만의 시간을 늘려 피해자가 서서히 주변 사람들과 멀어지게 만든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어느덧 가스라이터를 제외하고 의지할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인간관계가 고립될수록 피해자는 가스라이터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가스라이팅 문제 속에서 피해자의 잘못은 없다. 교묘하게 피해자의 심리를 파고들어 마음대로 조종하는 가스라이터가 잘못됐을 뿐. 다만, 가스라이터들의 특징을 미리 알고 피한다면, 우리 스스로 자아를 잃어버린 채 의존만 하는 삶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독서신문 장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