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특구 마포구, 마포구청장은 책과 화해하세요!” 조용한 출판인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서울 마포구가 도서관 예산 삭감 논란에 이어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이하 플랫폼P) 운영과 관련해 수개월째 파행 논란을 빚고 있어서다. 출판인들로 구성된 입주사 협의회는 행정심판 등의 강경 대응까지 각오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8일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운영 정상화를 요구하고, 마포구만의 문화적 자산인 출판 네트워크를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홍대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플랫폼P는 마포구가 출판 산업 진흥과 출판 생태계 다양성 지원을 위해 2020년 서울시와 공동으로 설립, 출판 기업에 위탁 운영해 온 공공시설이다. 출판사를 비롯해 디자인, 예술기획, 도서유통, 뉴미디어 등 유관산업 52개사가 입주해 있다. 지난 3년간 입주자들의 창업 지원은 물론 구민 대상 공개 강연, 출판인 네트워킹 세미나, 동네 서점과의 협력 사업 등 활발하게 문화 사업을 추진해 마포구뿐 아니라 전국의 출판인들에게 호평을 받아 왔다.
마포구와의 갈등은 지난해 박강수 구청장 취임 이후 불거졌다. 마포구는 갑자기 센터 성격을 검토 중이라며 12월 계약 만료였던 위탁사와 재계약을 하지 않다가, 관례상 3년 단위인 운영 업무를 3개월, 9개월 단기로 올해 12월까지 ‘쪼개기 계약’했다. 센터 설립 배경이 된 마포구 조례에는 “위탁 기간은 3년 이내로 한다. 다만, 구청장은 수탁자의 운영 실적 등을 평가하여 위탁 기간을 한 차례만 연장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현 위탁사 보스토크 프레스는 2020년 7월부터 2년 6개월간 플랫폼P를 운영했고, 지난해 9월 실시된 성과평가에서 ‘우수’ 평가를 받았다.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지난 3월 구정질의에서 플랫폼P 관련 질문에 “출판 산업 육성은 예산 규모나 수혜 대상을 고려해 광역자치단체나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국비와 시비의 지원은 전혀 없이 연간 10억원이 넘는 운영비가 구비로 투입되고 있다”며, “마포 청년들을 위해 다양한 일자리 관련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창업지원센터로 운영하고 일부는 마포 지역 출판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구상 중에 있다”고 답변했다.
플랫폼P 입주사 협의회에 따르면, 이후 마포구는 입주사 요건에 ‘마포구민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전체 입주자 중 마포구민은 약 30%에 불과하다. 오는 7월이면 상당수 입주자의 계약이 만료되는데, 마포구민이 아니면 이사를 하지 않는 한 입주 계약을 연장할 수 없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19일 독서신문과의 통화에서, “출판문화진흥센터로써의 용도를 아예 폐기할 계획은 없다”면서도 “센터의 성격과 관련해 개선 방향을 전반적으로 검토 중인 것은 맞다. 아직 구체적인 개선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구 예산으로 운영되는 시설인 만큼 2024년부터는 마포구민에게 더 혜택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개선하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일자리’와 ‘마포구민’을 강조하는 마포구의 입장에 플랫폼P 관계자들은 황당한 궤변이라는 반응이다. 플랫폼P는 지역 특색에 맞는 출판 창업의 산실로, 구민이 아니더라도 마포구의 문화와 경제에 이바지하는 사업자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현익 입주사 협의회 대표는 18일 기자회견에서 플랫폼P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 대해 “공공성의 개념을 이토록 편협하게 해석하여 주민 복리를 훼손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며 “구청에 세금을 내고 주민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사업자들을 관내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연대 발언도 이어졌다. 김원중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사무국장은 서면을 통해 구정의 혜택이 구민에게만 돌아가야 한다는 논리는 말이 되지 않는다며,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흥선대원군인가”라고 꼬집었다. 양현범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 회장은 “출판인으로서 늘 마포구의 문화적 자산이 부러웠고, 이제 플랫폼P를 통해 그 자산이 더욱 빛을 발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문화 중심지 마포를 더 이상 말살하지 말라”고 말했다.
1990년대 출판의 중심지였던 마포구는 2010년 서울시가 ‘디자인·출판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한 이후 홍대를 시작으로 독립서점, 1인 출판사 등이 다수 들어서며 과거의 위상을 되찾았다. 국가 주도로 만든 산업단지인 파주출판문화도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출판 인력이 몰린 곳이자, ‘출판사-서점-독자’가 한데 모여 자생적으로 출판 문화를 발달시켜 온 유일무이한 지역이다. 매년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을 비롯해 크고 작은 출판 관련 행사도 열린다.
홍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이기도 한 단편선 홍우주 사회적 협동조합(홍대 앞에서 시작해서 우주로 뻗어나갈 문화예술 사회적 협동조합) 이사장은 “문화적으로 다채로운 마포구는 누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우연적이고 자연발생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라며, “이렇게 공으로 얻은 훌륭한 자원을 왜 쉽게 버리려 하나. 마포구청이 공공의 지원 역할을 충실히 하는 좋은 선례를 남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