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일을 가지고 일본에…” 尹 발언, 진짜 문제는
“100년 전 일을 가지고 일본에…” 尹 발언, 진짜 문제는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3.04.29 0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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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친일 망언’ 논란이 식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4일 공개된 미국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은 취지로 답변했다. 이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될 발언”(이재명 당대표)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이에 여당인 국민의힘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문장의 주어가 윤 대통령이 아니라 일본이라고 해석해야 “상식적”이라며 오역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나 인터뷰를 진행한 미쉘 예희 리 기자가 녹취록 원문을 공개하면서 반박의 여지를 잃게 됐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었던 지난 2021년 9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씨를 만난 자리에서 “일본의 사과를 반드시 이끌어 내 할머니들이 그동안 받았던 마음의 상처를 다 (씻을 수 있게) 해 드리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국무회의에서는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에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 조치’가 빠졌다고 비판받자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우리에게 반성과 사과를 표했다”며 이번과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에 면죄부를 주는 발언을 했다. 윤 대통령은 어떤 근거로 이러한 발언들을 해 온 것일까. 또, 그 근거는 합당할까.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국민감정은 오랫동안 평행선을 달려 왔다. 한국에서는 일본이 ‘사죄하지 않았다’고 보는 시각이 압도적인 반면, 일본에서는 ‘할 만큼 했다’는 식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으며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2015년 일본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본은 전쟁 피해국에 사죄와 보상을 충분히 했는가’라는 질문에 ‘충분히 했다’는 답변이 57%로 과반을 넘겼다. 이어 2020년 일본 세론(여론)조사회가 실시한 비슷한 설문조사에서는 84%의 일본인이 ‘이미 사죄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5년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한일 연구자 51명이 집필, 양국에서 동시 출간한 책 『한일관계사 1965-2015 Ⅰ 정치』(역사공간)에서는 “한일 간 역사 문제는 기본적으로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에 관한 문제였다”고 설명한다.

한일 간 역사 인식 논쟁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50여년간 다양한 양상으로 이어져 왔다. 일본이 공식적으로 사죄의 말을 한 적도 여러 차례 있기는 하다. 특히 1995년 8월 무라야마 총리가 당시 모든 각료의 동의하에 발표한 ‘무라야마 담화’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끼쳤다” “통절한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표한다” 등 과거에 비해 발전된 역사 인식을 보여줘 한국에서도 그 의의가 높게 평가됐다.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가 발표한 ‘한일 공동선언’도 이 담화의 문구를 답습하고 있다.

하지만, 전범국으로서 꾸준한 사죄와 배상, 역사교육 등으로 책임 의식을 보인 독일과는 달리 일본의 사죄는 말뿐일 뿐 실천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표면적으로는 ‘무라야마 담화’에서 비롯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면서 정작 해당 담화의 핵심 정신에 어긋나는 언행으로 갈등을 빚었다. 역사 왜곡 교과서, 독도 영유권 분쟁, 위안부‧강제 징용의 강제성 부정,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의 문제가 반복돼 왔다. 기시다 현 총리도 지난 3월 한일회담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를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고 지칭해 한국의 비판을 받았다.

책에서는 “한일 양국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1995년 무라야마 담화와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의 정신을 토대로 해결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담화를 인용하고 있다. 한일 과거사 문제를 바라보는 두 대통령의 상반된 시각이다.

“일본 국민과 지도자들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사과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미 누차 행한 사과에 부합하는 행동을 요구할 뿐입니다.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행위로 한국의 주권과 국민적 자존심을 모욕하는 행위를 중지하라는 것입니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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