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얄궂게도 내 삶에서의 이동권은 한동안 달라지지 않았다. 자주 이용하는 지하철역에는 한참이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들 했지만, 정작 나는 여전히 “저 좀 지하철까지 옮겨 주세요”라고 부탁하는 일이 많았다. 거리에 돌아다니는 저상버스가 한 대, 두 대 늘었지만, 우리 집까지 가는 노선에 저상버스가 생긴 것은 그 후로도 한참 지나서였다. 그래도 우리의 싸움으로 지금은 서울에서 엘리베이터가 있는 역이 아니라 없는 역을 찾는 게 더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20년 넘게 외친 결과다. <95~96쪽>
어려서 학교도 못 다니고 시설에 처박혀 지내야 했던, 이동하다 목숨을 잃을 뻔했던, 그리고 그 이동권 하나를 얻어 내겠노라 평생을 싸우고 있는 내 삶 자체가 차별의 증거다. 사회 전반에 깔린 편견의 시선도 강력하다. 내 삶에도 그런 시선들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150쪽>
처음으로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고, 처음으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처음으로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직접 샀을 때의 두근거림. 처음 바다를 봤을 때나 처음 캠프파이어를 했을 때 찾아온 설렘. 앞으로 더 많은 시설 거주인이 지역사회로 나와 더 많은 설렘을 만나고 결국 그 설렘이 일상이 되기를. 그래서 장애라는 게 특별한 삶이 되지 않는 삶을 살면 좋겠다. <210쪽>
천사가 아닌 전사로 살아온 내가 생을 마감할 즈음엔 세상이 많이 달라져 있으리라 믿는다. 저상버스가 지역마다 골목골목까지 누비고 장콜(장애인콜택시)뿐만 아니라 일반 택시도 장애인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세상. 활동보조 시간도 필요한 만큼 주어지고 다양한 공공 일자리가 생겨나 일하는 장애인을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세상.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함께 일하고 밥과 술도 같이 먹으며 어울려 지내는 세상. <290쪽>
[정리=장서진 기자]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이규식, 김소영, 김형진, 배경내 지음 | 후마니타스 펴냄 | 304쪽 | 1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