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경력은 단절됐지만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책 속 명문장] “경력은 단절됐지만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 장서진 기자
  • 승인 2023.03.27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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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나의 일상은 이제 ‘엄마로서의 삶’으로만 채우기에는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구석이 있다. 요즘 나는 ‘엄마의 역할’ 퇴근과 동시에 ‘오롯한 나’로 존재하기 위해 출근한다. <62쪽>

나를 나눠 쓰는 일은 처음이었다. 회사생활은 힘겨웠지만,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인정의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엄마의 자리는 줄곧 고요했다. 체력과 정신력은 더 많이 소모되었지만, 인정의 순간은 없었다. 아이의 뿌리를 위해 나는 더 깊은 땅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오늘 파고, 내일 파고 그렇게 몇 년을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야 했다. 엄마의 역할은 처음이었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 몰랐고, 나의 정성으로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에 반비례해 한 존재로서의 나는 작아졌다. 일하는 친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경력을 더해, 땅 위로 꽃을 피우고 연둣빛 나뭇잎을 풍성히 키워갔다. 땅속에 있던 나는 그 푸르름이 부러워 조바심을 냈다. <64쪽>

그렇다. 소설은 알아서 써진다. 주인공이 스스로 자기 선택을 한다. 우리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세상에는 꼭 모두에게 들어맞는 절대적인 방법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 속에서 스스로 선택을 쌓아가며 나만의 소설을 쏘고 있는 것뿐이다. 우리가 집안일에만 시간을 쏟지 않기로 선택한 것처럼, 아이만 기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성장시켜보기로 작정하고 이 수업에 참여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제 입을 모아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글을 써야만 한다고, 그래야 말이 된다고 말이다. <111쪽>

마트 가판대에서 보는 배추도, 부추도, 당근도, 오이도 마찬가지다. 이파리로 만났건 열매로 만났건 식물이라면 응당 꽃을 피운다. 화려하진 않아도,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빛깔을 띠지 않아도, 모든 생명은 저마다의 꽃을 피웠다가 진다. 누군가 나에게 부드럽고 맛이 좋은 이파리만도 못한 부추꽃과 향도 좋고 색도 예쁜 장미 중에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나는 부추꽃이 되겠다고 말할 것이다. 나무도 아닌 것이 한 번 자리를 내리면 뿌리를 박고 해마다 꿋꿋이 자라나는 부추처럼, 아무도 향기를 맡으러 오지 않고 자태를 보고 감탄해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꽃을 피우는 부추처럼 살고 싶다. <218쪽>

[정리=장서진 기자]

『#낫워킹맘』
전보라, 고하연, 박정선, 이정오 지음 | 나비클럽 펴냄 | 288쪽 | 1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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