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독서] 문재인의 ‘평산마을책방’, 그 기원은…
[리더의 독서] 문재인의 ‘평산마을책방’, 그 기원은…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3.03.13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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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 [사진=딸 문다혜씨 트위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이색적인 행보가 화제다. 이번 달 중 고향인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 책방을 열고, 매일 사저와 책방을 오가며 ‘책방지기’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 대통령 출신 ‘책방지기’라니 색다르지만, 임기를 마친 이후에는 현실정치를 벗어나 ‘잊혀진 삶’을 살고 싶다던 과거 발언과 소문난 애독가인 점 등을 종합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재임 기간 중에도, 퇴임 후에도 SNS 등을 통한 활발한 책 추천으로 국민들과 소통했던 그다. 그 꾸준한 애정이 자신만의 책방이라는 결실에까지 다다르자 문득 궁금해졌다. 정치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문재인에게 ‘책’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2017년 2월 출간된 책 『문재인의 서재』(푸른영토)는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 문재인의 독서 인생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책이다. 쉴 때도 손이 닿는 곳에 책이 없으면 허전한 느낌이 든다는 ‘활자 중독자’ 문재인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니었음을 알려 준다.

초등학교 때 그는 작은 키와 약한 몸, 내성적인 성격으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가난하고 남루했던 어린 시절을 견디게 한 힘은 바로 독서. 부산의 양말공장에서 양말을 구입해 전남 지역 판매상에 공급하는 일을 했던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집에 돌아올 때마다 책을 사 왔다. 안데르센 동화집, 강소천 선생의 아동문학, 어린이용 플루타르크 위인전 같은 책들이었다. 가난과 고통을 넘어 행복을 찾는 소년의 이야기가 담긴 프랑스 동화 『집 없는 아이』도 기억에 남아 있다. 아버지가 다음 책을 사 올 때까지 같은 책을 몇 번씩 되풀이해 읽었다.

이내 아버지가 장사를 그만두면서 책 공급은 끊기게 되었으나, 이미 그는 세 살 위인 누나 책까지 뒤져 읽을 정도로 독서의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이용하게 된 도서관은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3개월가량 매일 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까지 있다가 의자 정리까지 도와준 다음 귀가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으로 향하던 습관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책은 ‘꿈의 통로’였다. 그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네 번이나 다녀온 여행가이기도 한데, 중학교 때 읽은 김찬삼 교수의 『세계일주 무전여행기』 같은 책들이 세계여행의 꿈을 심어 줬다. 인권변호사에서 정치인에 이르기까지의 기본적인 지적 역량이나 역사와 사회에 관한 의식을 처음 심어 준 것도 책이었다. 특히 경희대 법대에서 만난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논문과 저서들은 청년 문재인에게 강렬한 정서적 충격을 안겼다.

대통령이 된 이후 책을 국정운영의 도구로 활용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수의 책을 국민들에게 추천하는 것 외에도 정책 구상에 다양한 책을 참고했다. 언론 정책을 구상하는 데는 미국의 언론학자 로버트 맥체스니의 『부자 미디어, 가난한 민주주의』를, 에너지 정책을 구상할 때는 세계적인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3차 산업혁명』을 참고하는 식이었다. 또 청와대 내부 통신망에 서평 코너를 마련해 독서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처럼 문재인은 언제나 “책에서 길을 찾고 책에서 더 나은 미래를 열어 갈 동력을” 얻는 이였다. 정치권을 벗어난 뒤에도 그 행보는 일관되게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으로서 그의 업적이나 잘못에 대한 평가는 여느 정치인이 그러하듯 크게 갈린다. 하지만 그에게 눈앞의 현실보다 훨씬 커다란 꿈을 그리는 원동력이 되어 준 ‘책’의 가치에는 누구라도 공감할 듯하다.

“책에 굶주린 학생이 있었습니다. 활자화된 읽을거리가 보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 학생이 있었습니다. 양이 차지 않으면 신문이라도 주워 읽어야 배가 차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매일 학교 도서관 문이 닫힐 때까지 책 속에 파묻혀 있다가 의자 정리까지 해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책은 어쩌면 제가 찾은 유일한 행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손에 책이 들려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신은 분명 행복한 사람입니다.”

-문재인, 『문재인이 드립니다』 中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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