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셀러 작가 김호연이 말하는 ‘창작의 조건’
밀리언셀러 작가 김호연이 말하는 ‘창작의 조건’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3.03.1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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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계에 밀리언셀러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소설가 김호연. 출간 계약도 없이 무작정 써 내려간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나무옆의자)이 대형 출판사나 작가의 유명세가 아닌, 오로지 작품을 읽은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대박’을 쳤다. 지금까지 100만부 이상 팔렸으며, ‘벚꽃 에디션’, ‘단풍 에디션’ 등 계절마다 새 옷을 입고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점점 어려워지기만 하는 출판 시장에서, 이는 영화로 치면 천만 관객에 빗댈 만한 쾌거다. 

기성 문학계나 대중에게 김호연이라는 이름은 낯설었다. 그는 20여년 전부터 대본 일 등으로 밥벌이를 하며 ‘생계형 작가’로 긴 무명 시절을 보냈고, 2013년 『망원동 브라더스』가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이후로도 또 한 번의 무명 아닌 무명 시기를 겪었다. 데뷔작과 히트작 사이엔 『연적』, 『고스트라이터즈』, 『파우스터』 등 빛을 보지 못한 장편소설이 무려 세 권이나 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전업 작가로서 그를 지탱해 준 힘은 무엇이었을까.

최근 출간된 에세이 『김호연의 작업실』(서랍의날씨)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그의 집필 과정과 소설 쓰기에 대한 생각, 노하우 등을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책 제목에도 등장하는 ‘작업실’은 그가 소설 쓰기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다. 작가에게 작업실은 “글쓰기를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한 진공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글쓰기 세계로 진입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시공을 초월한 정신적 웜홀”이라는 것이다. 

비싼 월세를 내면서 호화로운 작업실을 구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초기에는 가능한 소박한 작업실을 추천한다. 김호연은 처음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여러 조건을 따져 작업실을 구한 뒤 2년 안에 반드시 데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결국 제대로 된 성과 없이 방을 빼야 했던 경험이 있다. 그는 “지금도 월세를 내는 작업실에선 묘한 압박을 느낀다. (…) 월세는 꼬박꼬박 내야 하는데 글은 꼬박꼬박 나오지 않는다”라며 “이 차이가 주는 부담은 가뜩이나 창작의 어려움으로 조바심이 드는 당신의 심장을 조일 수 있다”고 말한다.

집필에 집중할 수 있는 본인만의 조건과 형편에 맞는 작업실을 구해야 한다. 도서관이나 공공 작업실, 카페 등 무료 혹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이용 가능한 공간도 작업실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스스로를 고립된 환경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는 것. 작가의 첫 작업실은 동인천의 낡은 빌라였는데, 너무 외딴 곳이 아니면서도 지인이 쉽게 찾아올 수 없는 지역을 일부러 골랐다. 다만 지속 가능한 글쓰기를 위해서는 적절한 휴식도 필요하기에, 작업실 인근에 본인이 머리를 식힐 만한 공간(산책로, 서점, 공원 등)이 있는지는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그에게 ‘작업실’은 나만의 작업 ‘루틴’을 전개하기 위한 공간이다. 수많은 습작을 하고 작법서를 탐구하며 그가 내린 결론은 “작가는 자신만의 글쓰기 방식을 체화한 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작업에 돌입하기 전 괜히 웹서핑을 하거나 졸리지도 않은데 잠을 청하는 등 딴 짓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를 아예 루틴에 포함시켰다. 일과 시작 전 한 시간 정도를 ‘예열 시간’으로 잡아 둔 것이다. 대신 작업실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작업 파일을 열어 둔다. 그러면 딴 짓을 하면서도 계속 책임감을 느껴 정해진 시간에 작업에 돌입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작업실’과 ‘루틴’ 못지않게 중요시하는 것은 ‘산책’이다. 그는 “발로 글을 쓰는” 자신에게 산책로란 “글쓰기의 용광로”와 같다고 표현한다. 『불편한 편의점』 집필 당시에도 수시로 아무 편의점이나 들어가 진열대를 배회하고, 직원이 일하는 모습을 염탐하며 이야기를 구상했다. 앞서 작업실의 중요성을 역설했지만, 작업실은 기본적으로 구상 단계가 아닌 집필 단계를 위한 공간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책상 앞에 앉을 때는 이미 그날 써야 할 글감을 모두 지닌 채 앉아야 한다. 책상 앞에 앉아 이제 뭘 쓸까? 궁리하는 것은 허리와 엉덩이를 고문하는 방법일 뿐”이라며 “지금 개발 중인 작품에 대해 24시간 궁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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