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판계에는 어려운 고전을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게 친숙하게 소개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세계문학 고전을 만화와 소설의 중간 격인 ‘그래픽노블’로 재해석한 책들이 속속 출간되는가 하면, 구독형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에서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물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도슨트(docent)와 같은 역할을 자처하는 ‘도슨트북’을 내놨다.
그래픽노블은 어린이를 위해 내용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거나 과감하게 각색한 만화와는 다르다. 상대적으로 글의 분량이 많고, 원작의 디테일을 최대한 살리고자 한다. 이 분야 대표적인 작품인 『동물농장』(아름드리미디어)을 조지 오웰의 원작과 대조해 보면 전개가 빨라졌을 뿐 사건 진행을 거의 생략 없이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백대승 작가는 그래픽노블에서 특별히 강조된 부분으로 마지막 장면을 꼽는다. “동물들은 뒤엉켜 싸우는 저들을 보며 누가 동물이고 누가 인간인지 헤아릴 수 없었다”. 그래픽노블에서는 이 부분에서 인간에게 대항하다 인간과 분간할 수 없게 된 지배층 동물들을 바라보는 피지배층 동물들의 눈이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모습을 강렬하게 묘사했다. 흔히 단순히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곤 하는 『동물농장』이 이념을 넘어 근본적인 권력의 성질을 꼬집는 작품임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그 이름도 생소한 ‘도슨트북’도 감상해 봤다. 밀리의 서재가 선보인 첫 번째 도슨트북 작품은 20세기 초 미국 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전체적인 스토리를 웹툰 형식으로 요약한 파트 1과 전문가가 작품을 해설해 주는 파트 2로 구성됐다.
파트 1에서는 작품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BGM을 들으며 약 100컷 분량의 요약 웹툰을 감상할 수 있는데, 반응형 시청각 요소가 포함돼 스토리 위주의 짧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 시가와 함께 나타난 슬라이드 버튼을 당기면 라이터에서 불이 나와 서서히 시가로 옮겨 붙는 시각 효과와 함께 타 들어가는 효과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독자의 호기심과 행동을 유도하는 장치들이 곳곳에 배치됐다. 돋보기 버튼을 클릭하면 간략하게 정리된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확인할 수 있고, 장면에 따라 시대적 배경 등에 대한 부연설명도 나온다.
파트 2에서는 tvN 교양 프로그램 ‘벌거벗은 세계사’에 출연했던 미국사 전문가 김봉중 교수가 간결하고 재치 있는 문장으로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배경지식, 각 인물에 대한 심층 분석, 작품에 내포된 메시지 등을 해설한다. 1920년대 미국에서 실제로 유행했던 재즈곡들을 영상 링크로 삽입해 흥미 요소를 더했다. 이렇게 도슨트북의 두 파트를 모두 체험하고 나면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원작(민음사판) 전자책을 자동으로 이어서 감상하게 된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에서는 큰 대중적 인기를 끈 작품이지만, 당시 시대상과 미국적 정서가 핵심이 되는 작품이라 그런 부분에 익숙지 않은 독자라면 처음에 다소 진입장벽을 느낄 수도 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는 시각적 재현에는 성공했지만 원작의 깊이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도슨트북은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와 반응형 콘텐츠 등으로 일단 호기심을 끈 뒤 원작을 더 충실하게 읽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인상이었다.
‘누구나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하면서도 아무도 읽지 않는 책’.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고전(古典)을 이렇게 정의했다. 이미지와 영상의 시대, 낡고 고루하게 여겨지던 고전이 변화하고 있다. 그래픽노블이나 도슨트북이 원작을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미처 읽지 못했거나 이해하기 어려웠던 동서양의 다양한 고전과 가까워지는 데 좋은 발판이 되어 줄 것으로 보인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