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림책’ 펼치는 어른들… 이유는?
다시 ‘그림책’ 펼치는 어른들… 이유는?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3.02.02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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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당시 재임 중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국인 최초로 ‘아동문학계 노벨상’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이수지 그림책 작가와 주고받은 훈훈한 선물과 대화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이 수상 축전을 보내자 이 작가는 자신의 책 선물로 화답했고, 문 전 대통령은 SNS를 통해 이 사실을 공개하면서 책에 대한 감상평을 덧붙였다. “이야기와 음악을 함께 듣는 느낌이 든다”, “옛날 그림 식으로 접혀 있어서 펼치면 연결되는 긴 그림에 여러 가지 꿈과 상상이 담겨 있다” 등의 감상평에서 그림책에 대한 존중이 묻어났다.

그림책은 과거 아이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점차 고유한 예술 장르로 인정받으며 성인 독자가 늘어나고 있다. 출생률 저하로 아동 인구가 급감하는 상황 속에도 아동도서 출간 종수와 판매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2021년 출간된 말더듬이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책읽는곰)는 4~7세 유아용 도서로 분류되지만, 성인 독자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1년 이상 주요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에 머무르기도 했다.

이런 수요에 맞게 보다 폭넓은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 관련 행사도 많아졌다. 지난해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된 그림책과 미디어 아트‧설치 미술을 결합한 체험형 전시 ‘내맘쏙: 모두의 그림책 전’은 약 3개월간 6만명이 넘는 관람객을 모으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언리미티드 에디션’, ‘리틀프레스페어’, ‘퍼블리셔스테이블’ 등의 독립출판 마켓과 국내 최대 규모 도서전인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그림책의 영역이 해마다 넓어지고 있다.

어른들이 그림책을 찾는 심리는 뭘까. 그림책 테라피스트인 저자가 쓴 책 『어른의 그림책』(메멘토)에서는 “그림책이 어른들에게 큰 위안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때로는 그림 한 장에 기대어도 충분한 위로를 받는다. 이는 성인 책에 가득한 문자 언어로는 하기 힘든 경험이다. 글과 논리의 세계는 대부분 즉각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찬찬히 텍스트를 읽으면 어떤 감정이 고양되기는 하지만, 이는 이성을 거쳐 정제된 감정이다. 시각 경험은 이보다 훨씬 더 순수한 감정을 자아낸다. 늘 절제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세상에서, 날것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설명이다.

그림책은 SNS와 OTT 등의 발달로 하루 종일 각종 자극적인 콘텐츠에 노출되며 피로를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숨 돌릴 틈을 주는 일종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문장이 간결하고 여백이 많은 만큼 오히려 자신만의 해석을 투영하기도 쉽다. 호주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림책 작가인 숀 탠은 그림책을 ‘가장 넓은 범위의 연령대를 수용할 수 있는 문학 형식’이라고 표현했다. 이수지 작가는 지난해 씨네21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림책의) 향유층이 넓어질수록 작가들도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생각을 피력한 바 있다.

책 『트렌드 코리아 2023』(미래의창)에서는 초고령 사회를 목전에 둔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어린 시절의 향수를 쫓는 문화적 현상을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피터팬 신드롬’ 대신 가치중립적인 ‘네버랜드 신드롬’으로 표현한다. 어른이 그림책을 읽는 것도 그 자체로는 잘못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림책 독서를 통해 잊고 살았던 내 안의 ‘어린이성’을 발견하고, 이를 활력소 삼아 더욱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권장할 일이다. 책 속 문장을 빌리자면, “우리의 고민은 ‘요즘엔 다들 도무지 어른스럽지 못하다!’가 아니라, ‘어떻게 어린이 같은 삶의 경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경험의 지혜를 일생을 통해 켜켜이 쌓아 올려갈 수 있을까?’여야 할 것이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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