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형 인재’는 옛말, π형 인재가 뜬다
‘T형 인재’는 옛말, π형 인재가 뜬다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3.01.30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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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텔룽 효과(Einstellung effect)’는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이나 경험이 더 좋은 문제 해결 방식을 찾는데 방해가 되는 현상을 뜻하는 심리학 개념이다. 지식이나 경험이 힘이 되지 못한다니, 무슨 말일까. 바로 예를 들어보자.

아인슈텔룽 효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사례가 옥스퍼드 대학의 신경과학자 피터 맥레오드와 그의 연구진이 진행한 체스판 실험이다. 연구진은 실력이 출중한 체스 선수들을 모아 불렀다. 그리고 막바지에 다다른 체스 판을 보여주고는 “체크메이트를 외칠 수 있는 최단수를 궁리해보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체스를 많이 해 본 사람이라면 다섯 번 안에 끝낼 수 있는 판이었다. 그런데 이 판에는 체크메이트를 더 빨리 할 수 있는 세 번의 수가 있었다. 물론 이것이 일반적인 수는 아니었기 때문에 바로 눈치채기는 힘들었다.

실험에 참가한 체스 선수들 절반은 더 빠르고 효율적인 수를 고르지 못하고, 다섯 번을 거쳐야 하는 수를 택했다. 재밌는 점은 다른 실험에서 앞선 상황처럼 두 가지 경우가 아니라 한 가지만 있을 때에는 선수 모두가 그 방법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그것이 선수들이 놓친 묘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즉, 체스 선수들의 전문적인 지식이 더 좋은 수를 머리 속에서 가려버린 것이었다.

심리학자 피터 홀린스는 책 『폴리매스는 타고나는가』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에만 의존하는 전문가는 참신한 사고가 요구될 때마다 분명히 불리한 처지에 놓인다”며 “어떤 일이 통상적으로 처리되는 방식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고정 관념 때문에 그 일을 다른 식으로 처리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고집스럽고 뻣뻣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사람은 창의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이는 창의성이 중시되는 오늘날 한 가지 분야에 정통한 I형 인재보다 T형 인재가 업계에서 환영을 받는 이유가 되고 있다. T형 인재는 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과 기초 지식을 갖고 있어 소통과 협력이 가능한 인재다. 창의성은 한 우물이 아니라 다른 우물도 함께 팔 때 나온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우리가 π형 인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π 모양의 수평선은 지식의 폭을, 수직선은 지식의 깊이를 나타낸다. 그러니까 지식의 깊이는 I나 T의 세로 축처럼 길지 않아도, 둘 이상의 분야에 대한 지식과 그것들을 접목시킬 수 있는 인재라는 이야기다. AI와 로봇으로부터 일자리를 위협받는 시대에 지식을 종합하고, 연결하고, 창조하는 능력은 더욱 각광받고 있다.

“유튜브 같은 간단한 사이트 덕분에 방대한 전문 지식에 접근하는 일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다시금 생각해보자. 과거에는 정보를 구하려면 직접 전문가에게 연락하거나 도서관에 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새로운 기술을 스스로 터득하고, 독학으로 언어를 배우고, 장소의 제약 없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반나절 만에 글로벌 사업을 론칭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혹자는 이렇게 반론할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천재나 위인들은 모두 한 가지 분야에서 특출난 능력으로 공을 세운 사람 아닌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벤저민 프랭클린, 르네 데카르트, 괴테 등의 인물은 모두 다양한 지식을 섭렵했던 인물들이었다. 일생 동안 한 분야에 헌신한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에 대해서는 “다른 평범한 과학자들에 비해 춤이나 연기, 시 쓰기, 만들기 등의 취미를 즐길 확률이 22배나 높다”고 말한다.

저자는 π형 인재가 되려면 진취성과 호기심, 열린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들은 우리가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나 “재주가 열두 가지면 굶어 죽는다” “무엇이든 할 줄 아는 사람은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다”는 말 때문에 애써 제한해왔던 것들이다. 인간은 원래 호기심이 많고 자신의 창의성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존재다. 자신의 전공이 아닌 다른 분야가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등 돌리지 말고, 우리의 삶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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