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석영 시인 “시가 아닌 시적인 것을 씁니다”
[인터뷰] 김석영 시인 “시가 아닌 시적인 것을 씁니다”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3.01.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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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영 시인 [사진=최현식 PD]
김석영 시인 [사진=최현식 PD]

제41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김석영의 시집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는 마치 한 편의 영화 같다. 시집이 예고편부터 엔딩 크레딧, 쿠키까지 영화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돌처럼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정물(靜物)들이 영화 속 배우처럼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달은 돌기 때문에 달이다 / 돌지 않으면 돌이다”라는 자서(저자가 직접 쓴 서문)에서 알 수 있듯, ‘움직임’은 그의 시를 설명하는 키워드이다.

사실 우리의 삶도 그의 시처럼 움직임의 연속으로 이뤄져 있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은 어떤 면에서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리저리 튀고, 어긋나고, 이상한 것들을 부자연스럽다며 불편해하지만, 오히려 그것을 진짜 자연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김 시인은 이번 수상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자연스러운 것을 편집하고 매끄럽게 이어 붙여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삶이라면 부자연스러운 것이야말로 시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살아 숨 쉬는 시어들을 모아 한 편의 영화를 만든 김석영 시인, 지난 5일 <독서신문>이 신사역 인근 카페에서 그를 만나 시집 출간에 대한 소회와 작품의 뒷이야기를 물었다.

Q. 수상 축하합니다. 먼저, 시집 출간에 대한 소회가 궁금합니다.

“벌써 2~3달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실감이 안 나고 꿈 같아요. 저도 대학에서 문예창작학을 공부한 문학청년이었거든요.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품을 읽으면서 시를 열심히 공부했었죠. 그래서 어떻게 여기에 내 이름이 있냐는 생각도 들어요.”

Q.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는 두 번째 시집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첫 시집인 『밤의 영향권』을 내놓았을 때와는 느낌이 다르겠죠.

“『밤의 영향권』은 7~8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작년 11월에 내놓았던 시집이죠. 사실 그 시들은 오랫동안 썼던 것들을 묶은 것이라서 시마다 조금 차이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들을 한 권으로 묶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빨리 떠나보내고 싶었어요. 예전에 썼던 시를 퇴고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마침 건강이 좋지 않았어요. 지난 인생을 회고하면서 왜 나는 재밌게 못 살까, 즐겁게 시 쓰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죠.

그래서 첫 시집을 내놓고 나서는 재밌게 쓰려고 했어요. 이 시집은 그 1년 동안 재밌게 쓴 시들을 묶어서 낸 거예요. 그런데 이게 이렇게 상을 받을 줄은 몰랐어요. 정말 얼떨떨하고요. 제 인생에서도 분기점이에요.”

[사진=최현식 PD]
[사진=최현식 PD]

Q. ‘재밌게 쓰자’라는 다짐만으로는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재밌게 쓸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나요?

“시를 쓸 때 너무 진지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선생님들이 ‘시는 시시한 거라고,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제게 시는 여전히 무거웠던 거죠. 다른 것들은 모두 즐길 수 있는데, 이상하게 시는 못 즐기겠더라고요.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데 영화를 보는 그 시선이 시와 비슷해지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취미도 잘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거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제가 사람들에게 시를 가르치는데요.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재밌고 딱딱하지 않게 가르치는데, 정작 저는 시를 쓸 때 끙끙거리게 되는 언행 불일치를 겪었죠.

일단, 나라도 먼저 즐겁게 쓰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이번 시집에 영화적인 표현이나 시어들이 많이 등장하던데…

“어렸을 때는 책보다 영화를 더 많이 봤어요. 그러다보니 영화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Q. 그래서 이번 시집이 영화 같았던 걸까요?

“처음부터 영화적인 구성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어요. 나중에 시를 모아 한 권으로 묶을 때 보니 이 시들의 핵심이 ‘움직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영화처럼 구성하면 재밌을 것 같았어요. 시 중에서도 영화적인 시가 몇 개 있었거든요. 그런 것들을 위주로 형식을 재편하면서 아예 영화적인 형식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죠. 저는 정말 재밌었는데 독자분들은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네요.”

Q. 수상 당시에는 ‘정물처럼 앉아’가 시집의 표제였는데, 나중에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로 바뀌어 있더군요.

“‘정물처럼 앉아’가 정적인 느낌이 강하잖아요. ‘움직임’이 키워드인데 ‘정물처럼 앉아’는 고정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니까요. 편집부에서도 여러 가지 구절을 제시했는데 그중 「진짜 돌」에서 따온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가 있었어요. 움직임이라는 의미를 잘 표현하고, 돌을 내려놓을 수 있고 던질 수도 있는, 양방향성을 보여주는 구절이죠. 시 전체를 포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심사숙고 끝에 이 구절로 결정하게 됐습니다.”

Q. 정말, 움직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시집이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물리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것들도 과연 움직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도 그 생각을 한 적 있어요. 그래서 이번 시집에는 없지만, 탈각된 것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거든요. ‘달도 계속 돌면 또 돌이 된다’고요. 저는 이 양방향을 좋아해요. 달도 움직이지만 정물이 될 수 있는 거고, 그 반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동물이 될 수 있어요. 기계적인 움직임도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저는 그것도 움직임이라고 생각해요.”

Q. 시집이 A 쇼트와 B 쇼트로 나뉘는 것도 특징이었어요. A 쇼트에서는 「진짜 돌」, B 쇼트에서는 「가짜 돌」이라는 대조되는 시를 배치했고, 「폴리오미노」나 「불완전한 세 개의 이미지」 등 같은 제목이지만 다른 내용을 담은 시가 각 장에 있었고요. 순서나 배치 등 형식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영화적인 형식을 고려한 건 아니었어요. 시가 모이고 나서 한 권의 시집으로 묶을 때 영화라는 형식이 잘 어울릴 것 같았죠. 이번 시집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이 ‘움직임’과 ‘반복’이었거든요. 그럼에도 왜 영화적인 형식이어야 하는지 끝까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상상선」이라는 시를 기준으로 A 쇼트와 B 쇼트로 나누면서 좀 더 확신이 생겼던 것 같구요. 시를 퇴고하면서 순서를 짤 때 여러 번 다시 뒤엎는 반복의 과정이 있었는데 가장 몰입했었던 순간이었고 아주 재미있었어요.”

Q. '왜 영화적인 형식인가'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해소했나요?

“시는 종종 한 편의 사진으로 비유되곤 하는데 사진을 움직인 것이 최초의 영화란 점에서 시와 영화는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우리의 삶이 탈각된 ‘푸티지(본래 필름의 길이 및 필름 조각이라는 뜻에서 파생된 단어로 영화에서 미편집본 내지는 미완성본을 의미한다)’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곤 했어요. 영화가 편집된 것처럼 우리의 삶도 자의적인 편집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죠.

삶 속에 현실과 환상, 진실과 거짓이 섞여 있어 구별하기 힘든 것처럼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삶이 미로라면 문학도 미로인 거죠. 우리가 종종 꿈과 현실을 착각하는 것처럼 영화 속에서 삶을, 삶 속에서 영화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과정이 반복되는데 매번 새롭다는 게 재미있고 놀라운 점이에요.

이번 시집에서 같은 시어가 변주되어 반복될 때마다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앞에 「진짜 돌」이 있는 걸 봤는데, 뒤에 「가짜 돌」이란 시가 있네, 과연 무엇이 진짜일까?’ 문학은 출구 없는 미로 같아요. 미로 속에 빠진 자가 어떻게 헤매는지 그 ‘헤맴’ 속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문학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출구(정답)가 없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게 문학의 장점 같아요. 독자분들이 저마다 각자의 입구와 출구를 찾으신다면 그게 새로운 길이 아닐까 생각해요.”

Q. 그러고 보니 시에서 돌이 여러 번 등장하더군요.

“돌을 첫 시집 때부터 많이 썼더라고요. 돌이라는 시어가 이미지나 어감이 좋은 것 같아요. 또 돌은 누군가에게는 흉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기념품이 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사물이에요. 저에게는 여러 가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시어죠.”

Q. 실제로 돌을 많이 만지기도 하나요?

“아뇨(웃음). 저는 사실 정적인 사람이어서, 그래서 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Q. 평소 시를 쓸 때 가장 염두에 두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시를 쓸 때는 시 쓴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사람들을 가르칠 때 시 쓰는 마음가짐을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까 고민한 끝에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있어요. 저는 시의 반대편을 통해서 시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를 쓰려고 하지 않고, 시적인 것을 쓰려고 해요. 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더 안 써지고, 시적인 걸 써볼까 하면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저는 그런 역설의 힘을 믿어요. 제게 강의를 듣는 분들에게도 ‘시적인 거 한번 써보세요’라고 하면 정말 잘 쓰세요.”

Q. 재밌네요. 그러면 시적인 것을 쓰지 않을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세요?

“주로 읽고 쓰는데 하루를 다 보내는 편이에요. 활동은 잘 없고, 한다면 산책 정도? A쇼트에 있는 「불완전한 세 개의 이미지」라는 시에 나오는 오리 이야기가 산책하다 나온 거예요.”

Q. 이번 시집에서 특별히 아끼는 시가 있다면요?

“저는 제 시를 보면서 혼자 감상에 빠지지 않거든요. 영화감독처럼 멀찍이 떨어져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데, 그렇게 안 되는 시가 있어요. 「낮잠 속에서 꽃잎이 떠내려간다」와 「죽음이 빠져 있는 사전」이 유달리 슬프게 느껴져요.

신기하게도 저는 개를 키운 적이 없는데 이 시에서 꼭 개를 키웠던 사람처럼 썼어요. 개를 생각하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할까요. 제게 있어서 돌이 정물(靜物)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시어라면, 동물(動物)의 경우는 개인 것 같아요.”

[사진=최현식 PD]
[사진=최현식 PD]

Q. 수상소감에서 영화감독 고다르의 말을 빌려 “두 번째 첫 번째가 되려면 첫 번째 첫 번째를 부정해야만 합니다”라고 말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고다르가 자신이 찍은 영화 <네 멋대로 해라>를 이야기할 때 썼던 표현이에요. 기존에 만든 영화가 있는데도 다음 영화가 첫 번째라고 하려면 앞선 영화가 부정되어야 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제 첫 번째 시집이 있었기 때문에 이 시집이 두 번째가 됐지만, 저는 이것을 첫 번째라고 생각한다고 한 말이었어요. 저는 저를 부정하고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통이라면 상을 받을 때 ‘이렇게 써도 되는구나’하는 인증받은 느낌일 것 같지만, 저한테는 이제 이렇게 쓰지 말라고 주는 상 같아요. ‘이제 또 다른 것을 써야겠구나’하는 생각에 부담감을 느끼기도 하죠.”

Q. 앞으로 어떤 시를 쓸지도 궁금한데요.

“앤드로 포터의 소설집 제목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라는 제목에 완전히 꽂혔어요. 소설을 읽기 전에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리고 이 제목으로 시를 쓰고 싶어요. 주변에서는 시랑 이론은 너무 안 어울린다고 말했지만, 저는 모든 존재가 다 빛과 물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제목이야 똑같이 나올 수는 없겠지만, 그런 이론적인 것들을 한번 시로 다뤄보고 싶어요.”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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