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감정노동자’다
우리는 모두 ‘감정노동자’다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3.01.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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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감정노동이라고 하면 콜센터 상담원, 승무원 등 서비스직 종사자를 떠올린다. 그들에게는 상대방의 태도와 관계없이 언제나 친절한 태도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손님은 왕’이라며 소비자 권리만 강조하던 문화 속에서 이들의 권리는 자연스럽게 침해받아 왔다. 그러다 ‘땅콩 회항’과 같은 ‘갑질’ 사건을 필두로 수많은 감정노동자의 노동 환경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고, 마침내 지난 2018년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생겨났다.

그런데 현행 감정노동자 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41조)은 주로 서비스직 종사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감정노동이 요구되는 모든 직업군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한계점을 지닌다. 과거 주민들에게 무리한 감정노동에 시달린 경비원들의 잇따른 자살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감정노동자 보호법을 경비원에게도 확대 적용하기로 한 사례는 그 방증이다.

10여년간 감정노동을 연구해 온 윤서영 감정노동해결연구소 원장에 따르면, 감정노동은 정도나 양상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직업에서 나타난다. 그는 책 『모든 직업에서 감정노동이 발생한다』(커리어북스)에서 “자살하는 교사의 뉴스가 주기적으로 방송된다. 조류독감으로 닭 몇만 마리를 살처분한 소방대원이 심리상담 치료를 받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해당 직업군의 정신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을 만들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다양한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먼저 감정노동을 재정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감정노동’은 1983년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최초로 사용한 용어로, 자신이 실제 느끼는 감정과 조직에서 표현을 요구하는 감정이 일치하지 않는 모든 상황에 적용된다. 우리가 감정노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강요된 친절은 ‘긍정적 감정노동’이다. 이 밖에도 감정노동의 유형엔 ‘중립적 감정노동’, ‘부정적 감정노동’ 등이 존재한다.

‘중립적 감정노동’은 정서적으로 중립을 유지하며 객관적이고 공정한 정보를 전달하는 업무에 요구된다. 중립적 감정노동이 요구되는 대표적 직업군으로는 장의사, 판사, 운동경기 심판, 의사, 카지노 딜러 등이 있다. 인간이 주관적인 감정과 의사를 억제하는 상황을 지속하다 보면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 학습돼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부정적 감정노동’은 억지로 분노나 공격성을 표출해야 하는 업무에 해당된다. 대표적 직업군에는 경찰, 형사, 조사관, 교도소 관리자, 불만 고객 담당자, 채권추심 관리자 등이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할 때 우리의 뇌는 실제로 그 감정을 느낀 것으로 간주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분비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인체에 해롭다. 게다가 이들은 직업 특성상 폭력적이고 위험한 상황에 자주 노출돼 기본적인 스트레스 강도도 높다.

세 가지 유형의 감정노동은 각각 대표하는 직업군이 있을 수 있으나, 한 직업에서 한 가지 감정노동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경찰이나 소방관은 평소에는 긍정적 감정노동을 요구받다가 주취자 등을 상대할 때는 부정적 감정노동을 수행해야 하는데, 이렇게 다중적인 감정노동을 수행할 경우 스트레스는 더욱 가중된다.

우리나라 법은 ‘감정노동’과 ‘직장 내 괴롭힘’을 구분하고 있지만, 선진국에서는 법률 용어로 보다 포괄적인 ‘직장 내 스트레스’를 사용한다. 저자는 “직무를 수행하는 중에 우리는 누구나 직장 상사나 서비스 대상자에게 자신의 감정과는 다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상황에 수시로 노출된다. 이것이 정신적·신체적인 증상으로 발현된다면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며, “국내의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서비스 업종에 국한하지 않고 인간의 관계적인 측면에서 발생하는 직무 스트레스를 포함하도록 확장되어야 한다. 앞으로 선진국과 같이 다양한 직업군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의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전한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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