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무리, ‘이 책’은 어떨까요
한 해의 마무리, ‘이 책’은 어떨까요
  • 안지섭‧김혜경 기자
  • 승인 2022.12.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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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서점, 목욕탕, 사진관…’ 일상적 무대를 배경으로 한 힐링소설 인기
『하얼빈』 『아버지의 해방일지』 『역행자』를 통해 서점가 남성 독자들의 영향력 실감
“속독법‧다독법 말고, 정독법 책도 있어야”
“책도 OTT처럼 친근하게 여겨졌으면”

어느덧 2022년도 저물어간다. 매년 서점가에서 화제가 되었던 책 목록을 살펴보면 그 해 한국 사회가 무엇을 좇고 있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숏폼 콘텐츠의 시대,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지만 여전히 어떤 책들은 사람들의 일상에 날카롭게 파고들어 새로운 담론을 형성한다.

<독서신문>의 안지섭‧김혜경 기자가 12월을 맞아 올 한 해 대중적인 관심을 받았던 베스트셀러 경향을 돌아보고,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덜해 아쉬웠던 양서, 지금 우리의 독서 문화 등을 함께 짚어봤다.

Q. 올해 화제가 된 책이 여러 권 있었다. 그 중 생각나는 책 한 권을 뽑자면?

김 :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무래도 김호연 작가의 소설 『불편한 편의점』이다. 1권의 꾸준한 인기 속에 올해 나온 2권도 큰 사랑을 받아, 최근 합산 판매량 100만부를 넘겼다. 참고로 2020년대 들어 100만부를 돌파한 소설은 『아몬드』,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후 세 번째다.

안 : “너무 베스트셀러여서 피했는데, 근간에 광화문 교보에서 서서 읽다가 사게 만든 책”이라는 서평을 봤다. 이렇게 재밌다는 『불편한 편의점』의 인기 비결은 뭘까.

김 : 많은 언론에서 분석했듯이, 다들 외롭고 힘들었던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 사람 냄새 나는 공간에 대한 갈증이 커졌던 것 같다. 한 마디로 ‘힐링’이다.

안 : 과거에도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달러구트 꿈 백화점』 등 특정한 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는 힐링 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이들과는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

김 : 과거엔 힐링의 공간이 판타지 속에 존재했다면, 『불편한 편의점』,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처럼 요새 인기를 끄는 작품들에서는 편의점, 서점, 목욕탕, 사진관 등 당장이라도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칠 것 같은 일상적인 공간으로 변모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안 : 그런가 하면 소설 분야뿐만 아니라 과학 분야에서도 ‘힐링’을 찾아볼 수 있다.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말이다. 둘 다 과학에 관한 내용이라 ‘무슨 힐링이냐, 머리만 아플 것 같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두 책을 읽으면 이 책들이 평범한 과학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가 힐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건 제목에서부터 직관적으로 이해가 된다. 그런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도 힐링이 있었나? 두 책이 어떤 면에서 ‘힐링 과학’인지…

안 : 먼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작가 룰루 밀러가 19세기의 위대한 어류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의 행적을 쫓아가다 얻은 생각을 전하는 책이다. 조던을 존경하게 됐지만 이내 실망하게 된 계기, 그리고 자신만의 깨달음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자신의 우상이나 존경했던 사람의 추악한 모습을 보고 나서 실망한 경험이 저마다 있지 않나.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실망감을 극복한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선다. 독자들은 책에 담긴 과학적인 내용보다도 밀러의 삶을 감명 깊게 읽었을 것이다.

김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안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현재 존재하는 생물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을 ‘다정함’에서 찾는 책이다. 일례로 작가는 강한 신체 능력을 가졌던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고, 사회성이 뛰어났던 호모 사피엔스가 현생 인류가 됐다는 점을 들어 ‘친화력’이야 말로 적자생존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타인에게 건네는 따뜻한 손길이나 포옹, 환대 등 사람 냄새 나는 단어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Q. ‘K-소설 르네상스’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한국 소설이 국내외적으로 주목받았던 한 해였다. 소설 분야에서 인상 깊었던 흐름이 있나.

김 : 세계 3대 문학상으로 손꼽히는 영국 부커상에서 정보라 작가의 호러‧SF 단편집 『저주토끼』가 최종 후보까지 올랐던 일이다.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조명된 한국 소설은 소위 순문학 위주였는데, 장르문학의 저력을 확실히 보여줬다. 몇 년 전부터 정세랑, 김초엽, 천선란 등 젊은 작가들이 대중성 있는 SF 소설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우리 출판계에 장르문학 붐이 일었지 않나. 장르문학만 다루는 출판 브랜드나 작품집 등의 시도도 크게 늘었다.

안 : 소설이 영상 등 다양한 2차 콘텐츠의 원천으로 활용되면서 장르문학의 가능성이 더욱 주목받게 된 것 같다.

김 : 맞다. 예전에는 책이 먼저 출간돼 인기를 끈 뒤 영상화되는 것이 순서였다면, 최근에는 SF 작가 배명훈의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처럼 출간 전부터 이미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집필하는 경우도 생겼다. 장르문학은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다. 장르문학 작가 전문 에이전시 ‘그린북’과의 인터뷰에서 왜 장르문학을 선택했냐고 물으니, “해외 시장 진출을 노렸을 때 장르문학이 순문학에 비해 훨씬 더 세계 공통의 정서와 논리로 받아들여지기 쉽다”고 했다. 앞으로 세계를 뒤흔들 새로운 ‘K-콘텐츠’는 장르문학에서 출발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안 : ‘K-콘텐츠’라면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도 빼놓을 수 없다. 작가가 30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로 지난 2017년 출간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는데,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애플TV+ 드라마 <파친코>가 인기를 끌면서 더 유명해졌다. 저널리스트처럼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니며 자료를 수집했다는 저자의 내공이 돋보였다.

김 : 4대에 걸친 방대한 이야기지만 흡입력이 엄청나서 드라마도, 소설도 푹 빠져서 봤다. 요즘 대형 서점들이 ‘올해의 책’ 투표를 하고 있는데, 『파친코』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Q. 일반적으로 서점가에서는 여성 독자들의 영향력이 더 큰데, 올해는 남성 독자들이 만든 베스트셀러가 다수 있었다. 어떤 책들이 주목할 만했나.

안 :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을 썼던 김훈 작가가 5년 만에 안중근 의사의 내면 심리를 담은 『하얼빈』을 들고 돌아왔다. 선 굵은 문체와 특유의 단문으로 조명받은 김훈 작가의 복귀 소식에 40~50대 남성 독자들이 반색했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도 같은 독자층에게 인기를 끈 소설이다. ‘전직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문상객들로부터 듣는 아버지에 관한 후일담을 통해 70년 현대사의 질곡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유시민 작가를 비롯해 많은 독자들이 읽으면서 “울다가 웃었다”고. 그러고 보니 올해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중에 역사소설이 꽤 있다.

김 : 20~30대 남성들은 소설보다는 자기계발서에 열광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유튜브에서 ‘무자본 창업가’로 알려졌던 자청의 ‘인생 역주행’ 비법서 『역행자』가 기억에 남는다. 물론 저자의 팬들도 많이 샀겠지만, 과거 ‘흙수저 오타쿠’였다고 말하는 저자가 ‘인생에도 게임처럼 공략집이 있다’며 부자가 되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한 책이라 더욱 큰 관심을 받았던 것 같다.

안 : 정말 그런 노하우가 있다면, 안 읽어볼 수가 없겠다.

김 : 최근 신비한 금수저를 사용해 ‘금수저’ 친구와 인생을 바꾼다는 설정의 드라마 <금수저>가 인기리에 종영하기도 했는데, 누구나 그런 ‘한 방에 인생 역전’을 꿈꿔보지 않나. 특히나 남성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라이트노벨 장르에서는 주인공이 이세계(異世界)에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흙수저였던 내가 이세계에서는 금수저?!’라는 식의 전개가 흔하다. 현실에서도 그와 같은 판타지를 실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이 책을 집어들게 하지 않았을까.

Q. 베스트셀러가 아니더라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은?

안 : ‘돌봄’의 가치를 조명하는 책이 올해 꽤 많이 출간됐다. 그중에서도 『공정 이후의 세계』를 인상 깊게 읽었다. 흔히 우리가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고 한탄할 때 가장 먼저 ‘공정’을 찾지 않나. 각자가 노력한 만큼 보상받아야지, 신분이나 지위가 높다고 해서 특혜를 받아선 안 된다고. 맞는 말이긴 한데, 우리는 이 공정을 경쟁과 함께 이야기한다. 그러나 공정한 경쟁만 말하는 사회는 결국 각자도생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쓴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돌봄이라는 개념에는 인간이 상호의존적인 존재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며, 돌봄이라는 가치를 대안으로 삼자고 말한다.

김 : ‘공정’과 ‘돌봄’, 두 개념을 연결한 게 새로웠다. 또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나.

안 : 『썸타기와 어장관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도 재밌게 읽었다. 요즘 연애 문화인 ‘썸타기와 어장관리’를 철학적으로 살피는 시도가 참신하게 느껴졌다. 이 책의 저자 최성호 교수가 요즘 또 하나의 연애 트렌드로 떠오른 ‘자만추(자고 만남 추구)’에 대해서도 써줬으면 한다.

『한없이 가까운 세계와의 포옹』은 ‘터치(Touch)’에 대한 책이다. 우리는 연인이나 가족이 아니면 누군가가 몸을 접촉하는 것을 불편해하지 않나.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타인과의 접촉은 더 어려워졌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안전하고 불편하지 않은 ‘터치’는 무엇인지 살핀다. 성적 접촉 없이 누군가를 안아주는 ‘커들러’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책을 읽고 나서 나도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웃음)

김 : ‘자만추’가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의 줄임말인 줄만 알았는데 하나 배웠다. 나는 팬데믹과 이상 기후 현상으로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활발하게 출간되고 있는 관련 도서들을 소개하고 싶다.

안 : 기후 위기…. 심각하다고 하지만 관련 책은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제대로 이해하면 좋을 텐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김 : 전문가가 각종 데이터를 근거로 들며 인류에게 닥친 이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진단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책도 의미가 있지만, 조금 더 일상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게 해 주는 책부터 읽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책 『기후변화, 이제는 감정적으로 이야기할 때』에서는 사람들이 지구온난화, 기후 변화에 대해 30여년 동안 비관적인 뉴스를 계속해서 접해 오다 보니 경각심이 무뎌졌다고 지적한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는 더 많은 과학적 사실보다도 우선 각자의 마음을 움직일 이야기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였던 책은 대니얼 셰럴의 『뜨거운 미래에 보내는 편지』였다. 1990년생 기후 활동가인 저자가 태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아이를 향해 쓴 편지 형식의 에세이인데, ‘이기적’이라고 오해받기도 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아직 세상에 오지 않은 존재를, 미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는 모습이 감동을 준다. 기후 위기와 관련해 현 세대가 이기적인 행동으로 미래 세대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글은 많다. 솔직히 그런 글들을 보면 죄책감이 들어서 ‘난 일상 속에서 작은 실천이나마 하려고 노력하니까, 기후 악당이라 불리는 국가나 기업보다는 나아’라며 더 이상의 생각을 회피하곤 했다. 셰럴은 도망치지 않고 다음 세대의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건다. 환경 운동의 최전선에서 싸우며 희망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답을 찾고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 다정한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른이라면 이래야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Q. 독서 문화의 트렌드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자면?

안 : ‘속독법’이나 ‘다독법’ 노하우가 담긴 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책을 빨리 그리고 많이 읽는 것도 좋지만, 꼼꼼히 읽는 방법을 전하는 책도 필요하지 않을까. 가끔씩 취재도 할 겸 독서 모임에 가면 단어나 문장 하나의 의미를 놓치지 않으려는 독자들이 있다. 생경한 단어나 문장이 나왔을 때 ‘대충 이런 의미겠지’라고 생각하며 넘기지 않고, 물고 늘어지는 독자 말이다. 마치 이들의 머릿속에는 촘촘하게 짜여진 그물망이 있는 것 같다. 이런 독자들은 자기 중심이 갖춰져 있어서 쉽게 현혹되지 않는다.

결국,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우리에게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독자들에게 같이 읽자고 제안하고 싶은 책 2권이 있는데, 조병영 교수의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와 임진아 작가의 『읽는 생활』이다. 하나는 인문서적이고, 하나는 에세이지만, 결국 두 책 모두 ‘읽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 번쯤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김 : 한 권을 읽더라도 내 것으로 소화하며 읽어야 한다는 관점에 동의한다. 단편적인 정보,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왕 책을 읽는다면 책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을 충분히 누려야지. 그런데 진입장벽 면에 있어서는 책이라는 매체도 OTT 서비스처럼 친근하게 여겨졌으면 하는 소망도 있다. 요즘은 책을 좋아하고 책과 친한 사람,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이 뚜렷하게 나뉘는 것 같다. OTT 서비스는 영화를 잘 아는 영화광들도 이용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쯤은 구독하고 있지 않나. 심심하면 넷플릭스 첫 화면 들어가서 재밌는 시리즈 없나 둘러보고,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서 ‘인생 작품’을 만나기도 한다. 그럼 또 그걸 친구에게 ‘영업’하고, 친구는 가벼운 마음으로 추천받은 작품을 재생해 본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에 녹아들어 있는 OTT 서비스처럼, 책도 더 폭넓은 사람들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는데… 생각하다 보니 이건 <독서신문>에서 노력해야 할 지점이다. (웃음)

[독서신문 안지섭‧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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