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에게 듣다] 노브레인 이성우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나아질 수 있어요”
[명사에게 듣다] 노브레인 이성우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나아질 수 있어요”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11.24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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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현식 PD]
[사진=최현식 PD]

소설 『공중그네』에는 어느 날 갑자기 송구를 두려워하게 된 베테랑 3루수가 등장한다. 압박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근육이 경직돼 그동안 당연하게 해 오던 동작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게 되는 입스(YIPS) 증후군이다. 26년 차 베테랑 로커, 노브레인 이성우는 주로 운동선수들에게 흔하다는 입스 증후군을 겪었다. 놀이터 같았던 무대가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질돼 버린 것이다. 그대로 주저앉을 수도 있었겠지만, 스포츠 정신의학 전문의인 한덕현 교수에게 SOS를 쳤다.

최근 출간된 책 『답답해서 찾아왔습니다』(한빛비즈)는 그렇게 두 사람이 나눈 특별한 대화의 기록이다. 공동저자인 한덕현 교수는 정신과 상담이 그러하듯, 불안하고 답답하다는 이성우에게 명확한 해법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다만 끈질기게 경청하고 질문을 던지며 가장 내밀한 속마음들을 이끌어 낸다. 그 과정에서 불안, 우울, 콤플렉스 같은 주제는 물론 본래의 고민과는 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소울 푸드, 고향, 꿈, 인간관계 등 한 사람의 인생 전반에 걸친 각종 사연들이 고개를 내미는데, 이상하게도 그 두서없는 대화의 흐름이 위로가 된다.

돌이켜 보면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힘들었던 시기, 가장 힘든 부분은 힘들다고 말할 데가 없는 거였다. 대부분의 만남이 비대면으로 대체되며 의사소통이 용건 중심으로 변했고, 그만큼 속을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는 줄었으니 말이다. 이성우는 자신의 글을 ‘개똥철학’이라고 표현하지만, 사람은 자신만의 솔직한 느낌을 표현하고 살아야 병이 안 나는 법이다.

책을 쓰면서 이성우는 변했다. 잊고 살던 꿈을 돌아봤고, 자신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컬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마음의 병이 나아졌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는 용기까지 생겼다.

지난 10일, 아직도 혁명을 꿈꾼다고 말하는 40대 후반의 펑크로커 이성우를 만났다.

[사진=최현식 PD]
[사진=최현식 PD]

Q. 2008년에는 일본 여행서 『도쿄 락』을 출간하기도 했죠. 원래 글을 자주 쓰시나요?

“예전에는 노브레인 홈페이지가 있어서 가끔씩 장문의 글을 올리곤 했어요. 그냥 이런저런 일상 이야기, 개똥철학 같은 것들을 써서 올리니까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더 써 달라고 그래서 계속 올리다 보니까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책을 내기도 했었고요. 원래 글쓰기를 되게 좋아하는데, 잠시 잊고 살다가 이번 책 준비하면서 많이 썼네요.”

Q. 실제 대화를 엿보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두 저자의 생생한 ‘케미’가 돋보이는 책이었어요. 첫 공동 집필이 힘들진 않았나요.

“개인적으로 글 쓰는 건 좋아하지만 책으로 나온다고 하면 더 무게감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쓰는’ 것 자체가 어려웠지 ‘같이’ 쓰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어요. 누군가와 함께 쓴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부담이 줄었어요. 망해도 둘이서 망하는 거고, 잘되면 나눠야 해서 그건 배가 좀 아프지만… (웃음)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쓰지 않아도 되니까요. 원고가 한덕현 선생님과 저 사이를 오가며 대화하듯 이어지니 편안했죠. 저는 음악을 하면서 온전히 혼자 작업을 한 적이 별로 없으니까 집필 작업은 벽 보고 말하는 것처럼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번 경험을 통해 다음에 또 책을 내더라도 재밌게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어요.”

Q. 책에서 한동안 무대가 두려웠다고 고백했는데, 일종의 슬럼프를 겪으신 건가요.

“누구나 한 번씩은 그런 때가 오는 것 같아요. 한 3~4년을 시달렸어요. 처음엔 가사 노이로제였죠. 무대에서 가사 까먹을까 봐… 막상 올라가면 입에서 줄줄 나와요. 이미 몸에 체화된 거라 생각을 안 하면 그냥 할 수 있는 건데, 다 까먹은 것 같은 느낌에 잘해야 된다, 틀리면 안 된다, 달달 외우면서 스트레스 받고. 심지어 1절하고 2절이 똑같은 노래가 있거든요? 그럼 1절을 다 했으면 방금 한 거 똑같이 하면 되잖아요. 근데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하니까 되긴 했어요. 그래도 계속 그런 불안에 휩싸였죠. 그러다가 후두염이 심하게 왔어요. 후두염에 걸리니까 목소리가 안 올라가고, 부서지는 소리가 나면서 내고 싶은 소리가 안 나요. 거기에 저도 나이를 먹다 보니까 여태까지 노래하던 방식대로 노래를 하면 몸이 너무 힘들어지는 거예요. 목 상태도 안 좋고… 그러니까 무대 위에 올라가기가 점점 무서워졌어요.”

Q.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컬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고요. 명색이 노브레인인데, 어떻게 그런 결심까지 하게 되었나요.

“책 내고 그런 연락도 꽤 왔는데, 사실 보컬 레슨 받는다고 이렇게까지 대단하다는 평가를 들을 줄은 몰랐어요. 여태까지 앨범 새로 내고 해도 이렇게까지 환호를 받은 적이 없거든요. 그냥 이 상태로는 노래를 계속 할 수 없겠다 싶어서 체면이고 뭐고 없이 가서 배웠어요. 처음엔 거기서도 ‘아니, 여기엔 왜…’ 이런 반응이었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면서 내려놓게 된 것 같아요. 나이 먹고 여태까지 해 오던 것들을 부정하기가 쉽지는 않았는데, 하고 나니까 정말 별거 아니에요. 계속 해 오던 걸 버릴 때도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그게 만약에 잘못됐다면요. 한덕현 선생님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프로 골퍼들은 수천만 원 하는 골프채 세트도 자기한테 안 맞는다 싶으면 바꿔 버린대요. 사실 골프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골프를 계속 하는 게 중요한 거잖아요. 본인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거, 그 본질이 제일 중요한 거죠. 상담을 받으면서 그걸 깨닫게 됐어요.”

Q. 누구나 힘든 시기를 겪지만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겠다는 생각까지는 잘 하지 못합니다. 상담을 받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하루는 잠을 아예 못 잤어요. 다음 날 일정이 있어서 나가야 하는데 한숨도 못 잤죠. 특별한 이유 없이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누구나 잠을 잘 못 잔다거나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거나 그럴 때가 있지만 그게 생활을 방해할 정도로 심해지니까, 더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인생을 잠식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뭔가 큰 문제가 있는 거다, 싶어 그날 바로 선생님한테 SOS를 쳤죠.

제 주변에도 ‘제발 좀 상담 받으러 가 봐라’ 해도 안 가고 혼자 심적으로 고생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유명한 친구들 중에서도요.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이런 게 아직까지도 조금 무섭나 봐요. 안타깝더라고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데 왜 마음이 아픈 걸로는 가지 않을까. 상담 간다고 해서 사람들이 막 손가락질하는 것도 아니고, 한다고 해도 뭐 어때요. 그냥 아프다고 하면 되죠. ‘그래, 나 아파. 어떻게 할 건데’ 이렇게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다들 좀 더 당당해졌으면 좋겠어요.”

Q. 솔직하고 대범해 보이는 로커도 속으로는 크고 작은 고민에 시달린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비주류의 감성을 노래하다 보니 더 예민해지는 걸까요?

“음악 하는 친구들 보면 거의 다 예민해요. 인간이 불안감 같은 감정과 싸우며 사는 건 다 마찬가지겠지만, 예민도가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높은 것 같아요. 미디어에는 아주 단편적인 모습만 비쳐지니까 그게 안 보이는 것뿐이죠. 근데 저는 비주류라서 자랑스럽고, 비주류라서 행복해요. 어느 순간 주류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비주류의 그 습성만큼은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들도 보면 다 좀 삐딱한 면이 있어요. 뭔가 완성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 좋아요. 저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아와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 공부 진짜 못하고, 선생님들의 관심도가 낮은 애였거든요. 고등학교 작문 시간에 ‘나의 꿈’에 대해 글을 적어 냈더니 선생님들이 놀라서 이거 진짜 네가 쓴 거냐고 묻고, ‘너한테 꿈이 있다는 거에 놀랐다. 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고… 저라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아예 없어서 얘는 꿈도 없고,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과거의 저 같은 어린 친구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요. 기대치가 없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고 무언가를 계속 꾸준하게 하다 보면 뭔가를 이루어 낼 수 있다고요. 그냥 꾸준하게 뭔가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멋진 거예요. 예를 들어서 기타를 친다고 하면, 기타를 쳐서 돈을 벌면 좋겠지만 돈을 못 번다면 다른 일을 하면서 기타를 계속 칠 수도 있는 거고요.”

[사진=최현식 PD]
[사진=최현식 PD]

Q. 책에서도 음악을 ‘잘’하는 게 아니라 ‘하는’ 것 자체에 방점을 두면서 마음이 편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오죠.

“한덕현 선생님은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는 투수에게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공을 던지라’고 조언하신대요. 생각해 보면 다 그렇지 않나요. 그냥 하면 되는데 꼭 잘하려고 하니까 삐끗하고,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도 우리는 입버릇처럼 ‘잘’을 강조하죠. 공연을 마친 친구에게 ‘공연 잘했어?’라고 물어보는 게 자연스러워요. 그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선생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우리가 너무 잘해내야 된다는 강박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살아서 뭔가를 하고 있다면, 즐거우면 그걸로 된 거잖아요. 특히나 예체능은 명확한 수치로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잘’이라는 말에 집착해 왔던 거예요. 코로나로 공연도 다 끊기고, 그래서 힘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시기에 제가 뭘 좋아하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공연장에 가서 공연을 하는 게 그냥 당연한 일상이었거든요. 코로나 시기에 유튜브로 좋아했던 밴드들 영상을 쫙 보는데, ‘맞아, 나 이런 거 정말 좋아했었지’ 하면서 예전보다 훨씬 더 몰입해서 보게 되더라고요.”

Q. 나이를 먹으면서 앞뒤를 생각하지 않던 반항적인 성질이 누그러졌다면서도 여전히 “새로운 혁명”을 언급하며 여지를 남겼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예전에는 기존 음악계를 다 부숴 버리고 뒤집어엎는 게 꿈이었거든요. 90년대에는 전자기타 소리만 나와도 사람들이 시끄러워했어요. 그래서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도 사장님 없으면 일부러 헤비메탈 틀고, 손님들이 와서 ‘김건모 같은 노래 틀어야지’ 항의하면 무시하고 그랬죠. 그때는 록 공연도 그냥 앉아서 박수치며 듣는 게 ‘국룰’이었는데 저희는 사람들 일어나서 뛰게 만드니까 공연하다 말고 경비원들이랑 싸우기도 하고… 노브레인은 금지곡도 되게 많았어요. 이제는 그때처럼 막무가내로 전복을 외치지는 못해요. 저의 몸과 마음도 많이 늙었고, 전보다 성질이 누그러들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또 다른 면에서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겠죠.

그리고 저 말고 새로운 친구들이 나오면서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는 거잖아요. 지금 젊은 친구들한테 갖는 기대감이 있어요. 예전에는 록 밴드라는 게 정말 외롭고 힘든 거였거든요. 밴드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보면 맨날 방에서 라면 끓여 먹고 그런 모습만 나왔어요. 지금은 밴드 하면 가난하고, 록 음악은 시끄럽고 안 좋은 것이라는 편견이 없어져서 정말 다행이에요.”

Q. 책을 낸 뒤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나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여겼는데 공감된다는 반응이 많아서, 이렇게 힘들고 아픈 사람이 많구나 생각했죠. 편집자님과 한덕현 선생님이 이 책을 기획하고 만들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책을 팔아 가지고 일확천금을 챙기겠다, 이런 게 아니고 (웃음) 정신과 상담의 문턱을 낮추고 싶어서였대요. 실제로 책을 보고 저한테 와서 병원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어요. 상담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비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병원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마음이 아프고 힘들 땐 어두운 터널에 들어가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 터널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와야 되잖아요. 거기서 빠져나오게 해 주는 전문가한테 도움을 청해야죠. 물론 정말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의 의지예요. 그분들이 머리끄덩이를 잡고 끌고 가 주지는 않거든요. 의지를 갖고 상담과 치료를 받으면서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터널을 빠져나온 것처럼 밝은 태양이 보이게 되는 거죠. 정말 힘들면 주변 사람들한테라도 SOS를 쳐야 돼요. 말 안 하면 모르잖아요. 저도 혼자서 끙끙 앓다가 주변에 표현하고 나니까 나아지더라고요. 치료는 병을 인정하고부터 시작된대요. 자기가 인정을 안 하면 절대 치료가 시작될 수 없다고요. 사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에요. 스스로에게 솔직해진다는 게 정말 무섭거든요.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도 쉽지 않고, 내가 뭘 못한다고 인정하기도 싫고. 근데 그게 되잖아요? 사람이 되게 편해져요.”

Q. 저자로서 가장 애착이 가는 부분은 어디인가요.

“애착이 가는 부분이라기보다는, 후두염 이야기가 가장 꺼내기 어려웠어요. 당시에는 완치된 상태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감정을 글로 적고 나니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힘든지 확실하게 알게 되면서 훨씬 편해지더라고요. 누구에게든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으려면 먼저 내 마음을 돌아봐야 하는데, 글쓰기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덕현 선생님은 제가 살면서 만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 분이에요. 물론 모든 의사가 이렇게 좋고, 잘 맞지는 않겠지만 일단 병원을 찾아가는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마음이 아프면 가서 진찰도 받고 하면서 자기 자신을 더 다독여 줬으면 좋겠습니다. 혼자서 어떻게든 다 짊어지고 해결하려고 하다가 일이 더 커지거든요.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많은 분들이 그 짐을 좀 나누면서 빨리 광명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아무쪼록 저희 책 많이 읽어 봐 주시고, 노브레인 음악도 많이 들어 봐 주세요.”

선생님,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어요! 다함께 바다로 가자고, 언제까지 좁은 강에 모여 있을 거냐고요. 흐르는 물은 썩지 않을 것이고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으니까, 흐르고 흘러서 바다로 가자고요. 여전히 미래가 불안한 저이지만 안주하며 멈추지 않을 겁니다. - 본문 中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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