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에 이사 온 ‘곰’… 죽이는 게 답일까요
옆집에 이사 온 ‘곰’… 죽이는 게 답일까요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11.19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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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도시를 집어들고서 거꾸로 뒤집은 다음 흔들면, 거기서 떨어지는 동물들에 경탄할 것이다. 고양이와 개만 떨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장담한다. 보아뱀, 코모도도마뱀, 악어, 피라냐, 타조, 늑대, 링크스, 왈라비, 매너티, 고슴도치, 오랑우탄, 멧돼지. 이게 당신의 우산에 떨어질 거라고 예상되는 빗방울들이다.

-얀 마텔, 『파이 이야기』 中

1856년 7월 4일, <뉴욕 데일리 타임스>는 맨해튼 도심에 “색다른 방문객”이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그 색다른 방문객이란 우리에게 ‘미국 다람쥐’로 알려진 동부회색다람쥐였다. 사람들은 다람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두고 논쟁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다람쥐가 도시에 해로울 거라고 주장했다. 지금은 도시에서도 흔하게 관찰할 수 있는 야생 다람쥐가 등장만으로도 기삿거리, 논쟁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은 도시가 얼마나 동물과 단절되어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당시 미국 도시에는 가축과 비둘기, 쥐, 갈매기를 제외하면 동물이 거의 살지 않았다.

미국의 도시에 본격적으로 야생동물들이 돌아오기 시작한 1900년대 초, 도시에는 가로수도, 공원도, 보호구역도 없었으며 주택 밀집도도 지금보다 높았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수는 그 이전 어느 때보다도 많았지만 가축을 포함한 동물의 숫자는 과거와 미래를 통틀어 어느 때보다도 적었다. 환경학자 피터 S. 알레고나는 이것이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도시상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도시는 오직 사람들을 위해 설계되고 사람들이 거주하는, 자연과는 명확하게 구분된 공간이어야 했다. 그의 책 『어쩌다 숲』(이케이북)에서는 이처럼 인간만을 위한 곳으로 여겨지던 도시를 새로운 서식지로 선택한 다양한 야생동물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을 비롯한 도심 지역에서 너구리, 박쥐 등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사례가 급격히 늘었다. 자연 개발로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이 풍부한 먹이와 녹지를 갖춘 도심 주변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신기하게만 여기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야생동물로 인한 각종 사고도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인간과 야생동물은 공존할 수 있을까?

위협적인 야생동물에 대한 몇몇 성공적인 대응 사례가 있다. 1998년, 국립공원이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에서는 연간 500건이 넘는 곰 관련 사고가 일어났으며, 일곱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세 마리의 곰이 죽었다. 이에 의회는 연간 50만달러의 예산을 할당해 1년 동안 378개의 식품 저장함을 설치하고, 4만5,000여명 이상의 방문객과 접촉하고, 50회 이상의 훈련 수업을 열고, 1,600회 이상의 경고나 표창을 하고, 286개의 쓰레기봉투를 모았다. 이런 노력과 함께 10년의 세월이 흐르자 곰 관련 사고는 90% 이상 줄었고, 요세미티의 곰들은 인간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며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아닌 자연물로 식사를 하게 됐다.

비슷한 시기인 1996년, 캘리포니아 매머드레이크스 경찰서에서는 마을에 나타나 사고를 치는 16마리 곰을 없애기 위해 사냥에 능한 스티브 설스라는 남자를 고용했다. 곰을 총으로 쏘아 없애야 했던 설스는 곧 자신이 하는 일이 장기적으로는 개체수를 줄일 수 없으며, 오히려 곰들에게 아무런 깨달음을 주지 못하고 있어 같은 일을 영원히 되풀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총 대신 소음과 밝은 빛, 고무 총알 등으로 곰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또 곰이 쓰레기에 손을 댈 수 없도록 처리하고, 주민과 방문객을 교육할 것을 시에 촉구했다. 이후 마을의 곰 개체 수는 안정되었고, 곰 관련 사고도 대폭 줄었다.

이런 사례들은 도시인들이 그동안 단절된 채 살아온 야생동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고민한다면 사고를 줄일 수 있음을 알려준다. 물론 상황에 따라 훨씬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도시라는 새로운 생태계의 일원으로 자리 잡은 야생동물을 완벽하게 몰아낼 능력이 없다. 사실, 그럴 권리도 없다. 도시 지역의 원래 주인은 인간이 아닌 야생동물이었지 않은가. 멋대로 도시를 세우고 모든 자원을 끌어다 쓴 인간의 이기심이 기존의 생태계를 파괴했고, 그 결과 기후 위기와 코로나19 같은 인수공통감염병까지 맞이하게 됐다.

그러므로 지금은 새로운 이웃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고민해야 할 때다. 저자는 “도시는 역사상 처음으로 야생동물과 공존하기 위해 더 합리적이고 인도적이고 효과적인 접근법을 개발하는 데 앞장설 수 있는 독특한 위치를 점유했다”며, “서식지를 복원하고 토착 포식자들을 회복시키는 것 같은 체계적인 해결책에 몰두할수록 우리 모두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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