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물’ 못 파는 나, 알고 보니 ‘다능인’?
‘한 우물’ 못 파는 나, 알고 보니 ‘다능인’?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11.03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스틸컷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주인공 율리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선택에 뛰어드는 인물이다. 기껏 의대에 입학해 놓고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돌연 학자금 대출을 받은 돈으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작가 지망생이자 서점 직원이 되어 있다. 스물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그가 내린 우유부단하고 무모해 보이는 선택들은 연애에서도 갈팡질팡하는 모습과 맞물리며 어찌 보면 ‘최악’인 결과들을 낳는다. 그러나 방황할지언정 언제나 그 순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는 그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서려 있다.

우리는 ‘한 우물을 파는 사람만이 성공한다’는 식의 말을 들으며 자랐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꼭 맞는 하나의 일에 몰두해 끝내 그 분야의 대가가 된 사람에게 가장 큰 박수를 보내곤 한다. 반대로 성인이 되어서도 진로를 확실히 정하지 못해 다른 분야로 이직하는 일 등이 잦다면 경솔하고 근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듣기 쉽다. 그런데 과연, 모든 사람에게 ‘단 하나의 진정한 천직’이 존재할까? 충분한 고민과 노력만 뒷받침된다면 누구나 한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일까?

책 『모든 것이 되는 법』(웅진지식하우스)의 저자 에밀리 와프닉은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다른 삶의 방식이 필요한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다능인’(multipotentialite)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많은 관심사와 창의적인 활동 분야를 폭넓게 아우르는 사람”들이다. 다양한 분야에 깊은 열정을 가지며, 그 사이를 오가면서 기쁨을 느낀다. 사람에 따라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이 잘 맞을 수도, 몇 개월에서 몇 년간 하나의 주제에 빠져들었다가 완전히 새로운 분야로 넘어가는 방식이 잘 맞을 수도 있다.

이들에게 일평생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파야 한다는 건 악몽과도 같은 일이다. 영화 속 율리에처럼 직업을 계속 바꾼다면 어떤 분야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갖추지 못하리라는 우려가 들 수 있다. 이는 다능인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이기도 하다. 저자 역시 음악, 미술, 웹 디자인, 영화 제작, 법학 등을 어지럽게 오가며 열정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불안과 외로움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직업에서 시작된 고민은 ‘행복하기 위해서 여러 분야를 넘나들어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제 구실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정체성의 혼란까지 일으켰다.

다능인들은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없을지는 몰라도, 한 분야에 천착했던 경험을 다른 분야에 적용하며 높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세상을 바꾼 혁신가 중에는 다능인이 많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가 되기 전 의사 교육을 받았고, 유능한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은 피뢰침과 이중 초점 안경을 발명했다. 저자는 “전문가들이 단일 분야에서 뛰어난 데 반해 다능인들은 영역들을 혼합하고 그 교차점에서 작업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분야들 간의 관계성에 대한 더 깊은 수준의 지식을 성취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만의 전문성”이라고 말한다.

책에서는 다능인의 이러한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네 가지 직업 모델을 제시한다. 먼저, ‘그룹 허그 접근법’은 몇 가지 직업 영역을 오가며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면적 일이나 사업을 뜻한다. 한 사람이 여러 직무를 넘나들거나, 여러 직군의 사람들을 유연하게 관리해야 하는 스타트업 직원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슬래시 접근법’은 정기적으로 오갈 수 있는 두 개 이상의 직업을 갖는 것을 뜻한다. 자유와 유연성을 중시하는 다능인에게 잘 맞는 방식으로, 프리랜서 등이 해당된다. ‘아인슈타인 접근법’은 특허국 직원으로 일하며 특수상대성이론을 개발한 아인슈타인처럼 생계를 책임지는 풀타임 직장을 본업으로 두고, 취미나 사이드 프로젝트 형태로 다양한 분야를 마음껏 탐구하는 방식이다. ‘피닉스 접근법’은 한 분야에서 몇 달 혹은 몇 년간 전문가처럼 일하다 완전히 진로를 바꾸는 것이다.

저자는 “원하는 대로, 몇 년에 한 번씩 모델을 바꾸어도 좋으며, 혼합해도 좋다. 모두 다 괜찮다. 이 직업 모델들을 당신에게 엄격히 적용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단순히 구조와 시작점을 제공해서 당신이 자신의 많은 면을 이해하고 그것들을 만족스러운 직업과 인생으로 해석해내는 방법을 개념화할 수 있게 하고자 함이다”라고 설명한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