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 좋아요, 사주’… 청년들은 왜 ‘중독’되었나
‘갓생, 좋아요, 사주’… 청년들은 왜 ‘중독’되었나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10.3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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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진짜 책상에 앉으려고 했는데…. 『플랫폼 자본주의』 읽어줘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뉴스 본 건 언제지…. 넷플릭스 명작 시리즈라도 볼까? 근데 뭔가에 감명받을 기력이 없어…. 폼롤러라도 하든가…. 지금 이런 생각 중에도 이불에서 나올 생각 안 하고 이딴 월간 운세나 보고 있는데, 문화생활은 대체 언제 하냐고. 중독이다, 중독.’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대부분이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사고의 흐름이다. 뭐라도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가득하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한 뒤에는 밤 12시까지 핸드폰이나 들여다보다 ‘중독’된 스스로를 탓하는 것. 그런데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 중독된 걸까. 우리로 하여금 이상적인 삶, 이른바 ‘갓생’을 살지 못하게 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하는 이 강력한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자신을 ‘프로 중독러’라고 소개하는 작가 도우리는 책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한겨레출판)에서 우리를 둘러싼 ‘중독 문화’의 실체에 다가선다.

문화를 ‘여가 시간을 할애하는 대상’으로 정의한다면, 즐겨 보는 사주 유튜브, 습관적으로 확인하는 인스타그램 ‘좋아요’, 스트레스가 심할 때마다 찾는 불닭볶음면에 맥주 한 캔, 자존감을 채워 주는 데이트 앱 등도 모두 문화의 일종이다. 우리 모두가 매일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자면 못내 찜찜함이 남는다. 저자는 “왜 이것들을 문화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라고 중얼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의 문화가 고작 이런 것들이라고? 오히려 내 적디적고 소중한 여가 시간을 낭비하는 느낌인데?”라며 한탄한다. 그가 동시대 청년 문화를 굳이 ‘중독’ 문화라고 명명하는 이유다.

중독이란 흡연자가 그러하듯, 유해하지만 당장의 불안이나 불편을 해소해 주는 대상에 의존하며 스스로를 해치는 상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중독의 대상은 ‘갓생, 배민맛, 방꾸미기, 랜선 사수, 중고 거래, 안읽씹, 사주 풀이, 데이트 앱, #좋아요’ 등 청년들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친숙한 요소들이다. 저자는 경험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언어로 중독 문화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그가 보기에, 생산성 앱이나 SNS에 ‘인증’을 올리는 것으로 완성되는 ‘갓생’의 판단 기준이 결국 세속적인 잣대에 머문다는 점에서 ‘갓생’은 신의 경지에 오른 충만한 삶(god+生)이라는 의미와는 거리가 먼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뾰족한 대안은 없다. ‘갓생’이 깃들지 않은 삶의 기본값을 ‘혐생’(혐오스러운 인생)이라 부르는 극단적인 세계 인식을 통해 본인들이 고도 경쟁 사회의 낭떠러지로 내몰려 있음을 드러낼 뿐이다.

저자는 과거의 자기 계발 붐을 계승한 듯 보이는 ‘갓생’ 열풍이 그때와 달리 ‘일상 관리’의 영역으로 축소되었음을 지적한다. 자기 계발이 ‘취직-내 집 마련-결혼-출산’이라는 ‘정상적’ 생애주기를 밟기 위해 차근차근 스펙을 갖추는 것이었다면, ‘갓생’은 그런 생애주기 레일이 군데군데 끊어져 버린 ‘만성적 번아웃의 시대’에 일상을 유지해 나가는 하나의 방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중독 문화는 ‘자해’와 ‘자기 위로’의 속성을 동시에 지닌다. ‘좋아요’가 주는 쾌락이나 미신 취급을 받는 ‘사주’가 가져다주는 마음의 평화는 가난하고 무기력한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지만, 일시적으로나마 현실이 주는 고통을 잊을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는 과연 이 중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책은 청년들이 값싼 위안에 만족하며 살아가도록 만드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끈질기게 성찰하며, 중독 너머의 삶을 함께 상상해 보자고 제안한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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