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도, ‘쓰레기’도 없이 살 수 있을까
‘고기’도, ‘쓰레기’도 없이 살 수 있을까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10.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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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빙하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북극곰, 급격하게 올라간 온도에 신음하는 지구… 십 년 전만 해도 기후위기를 말할 때면 이런 이미지들이 가장 먼저 따라붙곤 했다. 이제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거나 추상적인 이미지를 가져오지 않아도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누구나 공감하는 분위기가 됐다. 기후위기가 당면한 현실로 다가오면서, ‘제비’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철새 제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의 제비란 ‘제로 웨이스트+비건’의 줄임말로, 간단히 말하자면 육식도, 쓰레기도 없는 친환경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그림에세이 『비워도 허전하지 않습니다』(문학수첩)의 저자 이소 역시 ‘제비’ 중 하나다. 친환경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지만, 친환경적 가치를 삶의 지향점으로 삼는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소수에 속한다. 비건과 제로 웨이스트 중 하나만 지향한다 말해도 ‘대단하다’, ‘신기하다’와 같은 반응이 뒤따르는 곳에서, 두 배의 불편함을 자처하는 ‘제비’의 삶은 어떨까.

제로 웨이스터(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가 되기 전부터 이미 비건이었던 저자는 식품 뒷면의 성분 표시를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무척 번거로워 보이는 일이다. “게임 속 미션 수행을 하듯 제한된 조건 속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아내는 게 나름 재밌었다”고 말하지만, 제로 웨이스터가 되면서는 이 미션의 난이도가 한층 더 높아졌다. 자주 가던 편의점은 온갖 플라스틱 쓰레기의 온상지로 보이기 시작했고, 좋아하던 빵집은 그동안 버린 빵 봉지와 빵 끈으로 가득 찬 지옥의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한동안은 바빠졌다. 안 입는 티셔츠를 바느질해 빵 봉지를 대신할 빵 주머니를 만들었고, 어딜 가든 손수건과 장바구니, 텀블러를 잊지 않고 챙기기 위해 ‘네모 둘, 원통 하나’라는 주문을 외우고 다녔으며, 엉겁결에 받아 왔던 빨대, 포크, 나이프 등의 새 일회용품을 가게에 돌려주기 위해 온 동네를 돌았다. 방에서 키우던 대파 한 줄기는 가지, 토마토, 고추 따위를 재배하는 옥상 텃밭으로, 급기야는 근교의 자그만 밭으로 확장돼 일부나마 식량을 자급하는 생활에 이르렀다.

공장식 축산으로 길러져 가지런히 팩에 담겨 나오는 고기를 비롯해, 거의 모든 것이 공장에서 포장돼 나오는 현대 사회에 매 순간 소극적으로나마 저항하는 과정 곳곳에는 세계가 확장되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었다. 환경을 위한 실천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다정한 응원과 연대의 말부터, 제초제나 화학비료 없이 땅이 원래 가지고 있는 생산력을 최대화해 해가 갈수록 사람의 손이 덜 가도록 하는 놀라운 ‘퍼머컬처(Permaculture)’ 농업에 대한 배움까지.

다만 생존의 문제가 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졌다. 살인적인 폭염과 열대야에 못 이겨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불리는 에어컨을 사기로 했을 때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한파로부터 지켜 줄 겨울 외투 한 벌을 장만하기 위해서 몇 년을 고민했지만, “무자비하게 털이 뜯긴 거위의 벌건 가슴팍”을 떠오르게 하는 구스다운과 미세 플라스틱이 우려되는 합성섬유 소재를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중고 구스다운 패딩을 사며 이런저런 합리화를 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친환경 라이프를 살겠다는 명목으로 각종 친환경 제품을 잔뜩 사들이는 등, 다양한 실수와 실패를 경험했다. 하지만 언제나 결론은 ‘그래도’였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에어컨을 사기로 결심하고도 내내 망설이는 그에게 한 지인은 “에어컨으로 여름을 잘 버티고 힘을 비축해서 지구를 위해 더 큰일을 하라”는 말을 건넸고, 비건들이 모인 오픈 채팅방에서는 채식주의자 연예인이 가죽 제품 광고를 찍었다는 소식에 날선 비난을 가하는 대신 “뭐라도 하는 분은 건들지 말자”는 의외의 의견들이 오갔다.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기후위기의 시대, 저자는 초조함과 절망에 빠져 있는 대신 “모두의 차선이라도 모으는 것이 지금의 최선이 아닐까 싶다”고 담담히 말한다. 그에게 ‘제비’의 삶이 주는 번거로움은, 따뜻한 이불 속으로 빨려 들어 가다가도 ‘참, 양치는 하고 자야지!’ 하며 몸을 일으키는 번거로움과 비슷하다. 당장 귀찮고 피곤해도 내일의 나를 위해 양치를 하듯, 미래의 자신과 인류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어설프고 빈틈이 많을지언정 말랑말랑한 그림체로 계속되는 그의 일상은 모두에게 용기를 전한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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