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값
꼴값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2.10.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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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인간은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기를 원한다. 등 따시고 배부른 것에 족하며 살 수 없는 속성을 지녔다고나 할까. 그러므로 타인이 뜻깊은 일, 남다른 면모, 유익한 일을 보일 때는, ‘잘한다, 훌륭하다, 멋있다’라는 추임새 좀 해주면 어떨까. 질투하고 시샘하고 비하하기에 앞서 상대방이 지닌 장점, 성취한 일에 아낌없이 진심 어린 박수와 격려를 보내보자.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억만금보다 값질 수 있잖은가.

필자가 문학을 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일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께서 일기 글을 뛰어나게 잘 쓴다는 칭찬과 함께, 나중에 훌륭한 작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말 한마디가 오늘의 필자를 있게 했다. 당시 기억으론 선생님께서 일기 글을 반 아이들 앞에서 큰 소리로 읽어주곤 했었다. 그게 바로 “얼쑤!”가 아니던가. 선생님께서 따뜻한 추임새를 보내줄 때마다 훗날 꼭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 꿈은 이탈리아 작가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가 지은 소설, 『사랑의 학교』를 읽고는 더욱 공고해졌다.

이때 반 친구에게 “난 커서 꼭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 같은 작가가 될 거야”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애는 선생님의 잦은 칭찬에 질투를 느꼈는가 보다. 필자에게 꼴값한다고 했다. 심지어 작가가 얼마나 어려운줄 아느냐며 입을 삐죽거렸다. 그때 솔직히 필자는 어린 마음에도 친구로부터, “너라면 충분히 작가가 될 소질이 있어”라는 추임새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애는 그 말을 끝까지 아꼈다. 이게 아니어도 자신보다 무엇으로든 앞서고 남다른 일을 하는 사람에겐 제발 꼴값 좀 할 수 있게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잖은가. 어찌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저마다 재능과 능력이 없겠는가.

오랜만에 만난 지인 얼굴빛이 훤하다. 전엔 항상 표정이 음울하고 얼굴색이 칙칙했다. 안색이 밝아진 비결을 묻자 요즘 뱃속이 편하단다. 딸이 드디어 번듯한 직장에 취업했다며 입이 귀에 걸린 표정이다. 그녀는 일찍 남편을 잃고 장애를 지닌 무남독녀를 키웠다. 공사판에서 벽돌도 날랐다. 식당일도 도우며 참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온 그녀다. 무엇보다 몸도 성치 않은 딸의 외국 유학까지 뒷바라지하느라 등골이 휜 여인이었다. 이로 보아 여인의 모성은 강철보다 강하다.

그러나 유학 생활을 마친 딸이 변변한 직장도 없이 집에서 빈둥댔나 보다. 여인은 필자를 볼 적마다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해왔다. 그럴 때마다 여인이 안쓰러워, 어느 날 외출 중인 그들 모녀와 마주쳤을 때 곁의 딸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으니 용기 잃지 말아요. 자격증까지 갖췄으니 훌륭해요”라는 추임새를 건넸다. 훗날 지인 딸은 필자의 이 말에 힘을 얻어 집안에서 은둔 생활을 청산하게 됐단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간구(懇求)에 부응했을 것이다.

드디어 여인 딸이 외국 유학에서 전공한 분야의 능력을 인정받아 국내 굴지 회사에 취업했단다. 이제야 비로소 허리를 펴게 됐다며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그녀다. 하지만 이를 시샘하는 주변 사람들은 그녀 딸을 바라보며, “꼴값하네, 비장애인도 어려운 그 회사에 어찌 취업했을까?”라며 비아냥거리더란다.

우린 타인에 대하여 긍정적인 시각보다 다소 부정적인 관점을 지니곤 한다. 누군가 명성을 얻거나 자기 분야에 특출한 면모를 보이면 깎아내리기 바쁘다. 도무지 타인의 장점 및 자신보다 잘되는 꼴을 두 눈 뜨고 보지 못한다고나 할까. 그래 예로부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닌가 보다.

판소리를 부를 때 “얼씨구! 얼쑤!”라는 추임새가 있다. 이 추임새가 들어가면 판소리를 부르는 일도, 듣기에도 신명이 절로 난다. 추임새의 뜻은 ‘추어주다’, 즉 ‘정도 이상으로 칭찬해주다’가 아닌가. 삶이 각박하고 힘들수록 타인의 장점을 치켜세워주고 인정해줄 때 어쩌면 능력 및 재능은 배가될지도 모를 일이다. 흔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잖은가.

코로나19 창궐 이후 이에 대적하느라 심신이 몹시 지쳤다. 하루하루를 결코 이 바이러스한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가까스로 버텨왔다. 이는 어쩌면, “나는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할 거야. 꼭 이겨낼 수 있을 거야”라는 추임새를 필자 스스로에게 수없이 보낸 결과가 아닐까 싶다. 이로 보아 극한 상황도 극복할 수 있는 괴력은 용기와 자신감을 안겨 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인 듯하다. 누구나 지닌 꼴값은 톡톡히 해내야 하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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