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에게 듣다] 수잔 샤키야 “문재인 대통령의 책 추천, 가짜뉴스인 줄 알았죠”
[명사에게 듣다] 수잔 샤키야 “문재인 대통령의 책 추천, 가짜뉴스인 줄 알았죠”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10.13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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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테’라는 말을 다들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특히 요가를 해본 사람이라면 더 익숙할 수도 있겠다. 나마스테는 네팔의 인사말로, ‘내 안에 있는 신이 당신 안에 있는 신을 존중합니다’라는 뜻이다. 때로는 인사말이 그 나라의 특징을 설명하기도 하는데, 네팔 사람들은 정말로 신이 각자의 몸 속, 나아가 모든 존재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혹자는 네팔 사람들이 미신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126개 민족으로 구성된 네팔에는 사회적인 갈등이나 분쟁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만큼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 상대하는 모든 것에는 신이 스며들어 있으므로 함부로 하지 않는다. 설령 나와 다른 신을 모시고 있더라도 말이다.

이같은 삶의 자세를 가진 네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과연 타인을 신처럼 존중한다는 네팔의 문화에 한계나 넘어서야 할 과제가 없을까.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이 있는 한국 사회에서 네팔이라는 나라를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지극히 사적인 네팔』은 20대 초반에 한국에 건너와 지금까지 13년간 활동하고 있는 방송인 수잔 샤키야가 네팔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소개한 책이다. 수잔은 JTBC <비정상회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등에 출연하며 네팔의 문화를 시청자들에게 알린 바 있다.

지난 3월 출간된 책이지만, 9월 초 문재인 전 대통령이 SNS에 이 책을 언급하면서 베스트셀러로 급부상했다. 수잔과 출판사가 첫 만남을 가졌던 군자역 인근 카페에서 지난 27일 그를 만났다.

수잔 샤키야 [사진=안경선 PD]
수잔 샤키야 [사진=안경선 PD]

-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책이 하루 만에 매진됐고 독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어요.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저는 트위터를 안 해요. 친구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트위터를 캡쳐해서 보내줬을 때 알게 됐어요. 그때는 ‘가짜뉴스겠지, 누가 이렇게 올리냐’라고 생각하며, 확인도 안하고 그냥 잤죠. 그런데 다음날 문자랑 전화가 쏟아지는 거예요. 혹시 진짜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출판사 대표님에게 연락을 했죠. 그랬더니 전화를 받은 대표님이 ‘수잔씨, 난리 난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책이 어마어마하게 빨리 팔렸어요’라고 얘기해 줬어요. 그때 이게 꿈인가 싶기도 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죠.”

- 하루 아침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셈이네요.

“그러니까요. 꿈도 못 꿨는데(웃음). 책 쓸 때에도 서점에 가면 독자분들이 별난 네팔 책이 있네, 라는 정도의 느낌만이라도 얻길 원했거든요. 수잔이라는 사람이 조금 다르게 책을 썼네, 읽으면 도움이 될 만하겠네, 라고 생각하기만 바랐어요. 출판사에서도 ‘우리 책 잘 팔자’라고 했지만, 큰 욕심은 안 부렸었죠. 책에 오타도 좀 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꼼꼼히 더 볼 걸하는 생각이 드네요.”

- 책이 네팔에 대한 문화와 역사를 전반적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수잔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와 시선이 담겨 있어 인상적이었어요.

“처음 출판사 대표님과도 얘기한 부분이 있었어요. 솔직히 저는 네팔을 대표할 수 없다, 다만 제가 네팔에서 경험했던 것들은 자연스럽게 얘기해드릴 수 있다, 라고 이야기했죠. 네팔을 대표해 이렇다저렇다 말할 수는 없지만, 제가 경험한 것 그리고 느낌은 어쨌든 사실이니까요. 마침 대표님께서 ‘지극히 사적인’ 시리즈로 하자고 하셔서 저도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었어요. 이 타이틀 덕분에 네팔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글도 자연스럽게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진=안경선 PD]

- 네팔의 인사말 ‘나마스테’는 ‘내 안에 있는 신이 당신 안에 있는 신을 존중합니다’라는 뜻이잖아요. 책 곳곳에서도 네팔 사람들의 신에 대한 생각도 나오고요. 네팔에서는 신이 여러 의미로 쓰이는 것 같아요.

“네팔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그런 얘기들을 많이 들어요.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신이다, 라고요. 가령 누군가는 스마트폰이 도구라고만 생각하는데, 네팔에서는 이게 신이 될 수 있거든요. 그것이 없으면 일이 안 되고, 있어야 원활하게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존중하는 거고요. 한국에는 정(情) 문화가 있는데,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잖아요. 똑같은 거죠. 우리가 쓰다가 버리기도 하지만 그동안 나한테 줬던 이익이라든지 함께했던 추억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담겨져 있는 것도 신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거죠.”

책에 따르면 네팔은 전통 사회의 분위기를 간직한 나라다. 브라민, 체트리, 바이샤, 수드라로 구성된 신분제도가 엄연히 존재한다. 민족과 계급마다 하는 일이 다르다. 그리고 자신의 직업은 대부분 조상이 하던 일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돈을 많이 받거나 안정적인 직업을 얻으려고 온갖 경쟁을 치르는 한국인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네팔 사람들에게 직업은 어떤 의미인지, 수잔에게 물었다.

- 네팔에서는 어느 민족 혹은 계급에 속해있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나 하는 일이 결정되잖아요. 반면, 한국에서는 의사나 변호사 등 선호하는 직업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직업을 얻고 싶어하고요. 네팔과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가 아닐까 했어요.

“우리가 카스트 제도를 나쁘게 말하기도 하지만, 저는 좋게 보기도 했거든요. 내가 해야 되는 게 정해져 있어서 안정적이기도 하니까요. 어떻게 보면 (그 가문의) 전문 분야라고 볼 수도 있고요. 청소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안 좋은 직업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민족과 계급마다 하는 일이 나뉘어 있어서 갈등이 벌어지지 않기도 해요. 반대로 직업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그동안 누군가 맡았던 일을 다른 사람이 하려고 할 때 경쟁이 생기면서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지잖아요. 네팔 사회는 이런 걸 막으려고 예전부터 시스템이나 체계를 만든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런데 이런 관습도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것 같아요.”

- 시대가 바뀌면서 직업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는 건가요.

“그렇죠. 제가 그런 경우인데, 제 아버지가 약방을 했거든요. 저도 6~7년 동안 같이 일했어요. 나름 좋아했고, 그 때도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한국에 오니까 보시다시피 직업이 달라졌잖아요. 다만 예전에는 사람마다 직업이 딱 정해져 있으니 누군가 와서 간섭할 일도 없고, 그 시절이 개인적으로는 좋았던 것 같아요.”

어느 사회나 개선돼야 할 관습은 있기 마련이다. 네팔의 경우에는 카스트와 쿠마리를 들 수 있다. 쿠마리는 네다섯 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뽑아 초경 전까지 여신으로 섬기는 관습을 말한다. 책에 따르면 여신이 된 여자 아이는 일상으로부터 단절된 채 정신적‧육체적으로 성장하고, 청소년기가 되면 평민으로 강등돼 일상을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경험한다. 이를 바라보는 수잔의 시선은 조금 복잡하다. 그는 “쿠마리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되는 주제”라며 “‘보편적인 인권’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없어져야 할 악습이지만 네팔에서 쿠마리는 악습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사회를 유지하는 시스템의 일부”라고 적었다.

[사진=안경선 PD]
[사진=안경선 PD]

- 밖에서는 네팔의 ‘쿠마리’를 악습처럼 보지만, 이것이 어쨌든 사회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거나 네팔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다고 했어요.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요.

“원래 우리는 신화적인 것들을 믿으며 살았잖아요. 지금은 사회가 발달하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그런 것을 믿지 않게 됐지만요. 그런데 어떤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네팔 사람들은 이럴 때 신이 한 것이라고 믿거든요. 한국에서도 조선 시대를 보면 관상을 보기도 하고 굿을 하기도 하고 오늘날 미신처럼 여겨지는 것을 믿어 왔잖아요. 네팔도 똑같은 거예요. 쿠마리가 어릴 때 뽑히기 때문에 아동학대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해가 안 가는 측면도 있어요. 쿠마리에 대한 인권 침해 요소는 제거하되, 전통문화는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쿠마리 같은 문화나 제도를 너무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지 말고,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자는 이야기 같아요. 카스트도 마찬가지고요.

“맞아요. 저는 네팔이 완벽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녜요. 나쁜 건 얘기할 수 있어야 해요. 네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아마 저한테 욕을 할 거예요. 네팔을 알리는 책이면 좋은 이야기를 써야지, 왜 비판을 하냐고요. 단지 저는 개인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쿠마리 인터뷰를 할 때도 ‘당신이 생각했던 그대로 말씀해주세요, 저는 건드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어요. 제가 쿠마리를 보는 관점, 그리고 그분이 쿠마리를 겪고 나서의 관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 히말라야 산맥을 등반하는 사람들을 돕는 셰르파는 ‘산을 정복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엄홍길 대장님도 그런 얘기를 많이 언급하셨더라고요. 산을 오를 때 ‘정복’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고요. 여러 차례 네팔에 방문하고 히말라야를 다니시면서 셰르파의 태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신 것 같았어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네팔에서는 도구도 신으로 받아들여지거든요. 그런데 산이라는 존재는 더 신성한 존재로 여겨져요. 그래서 셰르파들은 산에 올라갈 때 ‘나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하다’ ‘내가 올라가서 누구도 못했던 경험을 하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혹자는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후 더 유명해지곤 하는데, 사실 네팔에 가면 에베레스트를 14번이나 15번 등반하신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리고 그 분들은 커피숍이나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평범하게 살아가요.”

[사진=안경선 PD]
[사진=안경선 PD]

- 책에 대한 리뷰들이 많아요. 어떤 리뷰가 눈에 들어오던가요.

“블로그에서 개인적인 사연을 바탕으로 쓰신 분들의 글을 재밌게 읽었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게 읽은 글은 냄새에 관한 내용이었는데요. 제가 책에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이 제게 냄새가 난다고 했다고 적었거든요. 예전에는 친한 형들하고 농구할 때는 형들이 ‘야, 너 수비하기 진짜 힘들어, 너한테 약간 독특한 향이 나’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그 때 당시에는 몰랐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13년 살고 나니 제가 네팔 사람들을 대할 때 그 향을 맡게 된 거예요. 그제서야 알았죠. 아, 형들이 얘기한 향이 이거였구나.

리뷰를 보니 비슷한 경험을 적어주셨더라고요. 이탈리아 사람들이 나한테 막 마늘 냄새 난다고 하더라, 그리고 자기는 이탈리아 사람들한테서 독특한 냄새를 맡았다는 이야기 등. ‘당신, 냄새난다’고 말하면 어쩐지 차별하는 것 같고, 실제로 냄새가 나는 건 어쩔 수 없고, 그런 난감한 상황에 대해 공감하면서 적어주셨어요. 그 분과 공감 포인트를 찾은 것 같아서 재밌었어요.”

- 책에 미처 담지 못해서 아쉬운 내용도 있나요.

“솔직히 진짜 많은 것들을 더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일단 하나는 네팔의 명장소. 네팔의 전통적인 스토리가 담겨져 있는 곳들이요. 다른 하나는 수잔의 집 자랑 이런 것들을 하면 어떨까 했어요. 처음에는 가족얘기 하는 걸 꺼려했어요. 그런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프로그램을 하면서 그 나라의 정서까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우리 집에 이틀 정도 살다 오라고 권유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민족마다 다른 전통 음식, 술 문화 같은 것들을 디테일하게 못 다룬 것도 아쉬운 점이에요.”

-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솔직히 저는 책에서 제가 말한 모든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누군가에게는 불쾌하거나 의구심이 드는 부분도 많을 거예요. 그래도 이 책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생각을 얻어가시면 좋겠다라는 생각하고요. 우리가 항상 다문화국가를 지향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외국인들과 마주하기 힘들잖아요. 한국이 진정 그렇게 되려면 말로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배경 지식을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요. 독자분들이 이 책에서 네팔에는 이런 것들도 있네, 하며 내 삶에 적용할 부분을 찾아 좋은 것들을 골라내면 좋겠어요. 물론 아니다 싶은 것에 대해서는 지적하셔도 좋고요.”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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