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왜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살까?
일본인들은 왜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살까?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10.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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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부딪혀도 ‘스미마센’, 엘리베이터에 동승해도 ‘스미마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말을 걸 때에도 ‘스미마센’”. 최근 출간된 책 『같은 일본 다른 일본』에서 사과 표현이 잦은 일본인의 독특한 화법을 한 마디로 소개한 말이다. 일본인들은 우리말로 ‘죄송합니다’에 해당하는 ‘스미마센’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심지어 고마움을 표현할 때조차 ‘스미마센’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때로는 과할 정도로 친절하고 예의 바른 느낌이다.

‘일본 사회는 사과를 대단히 중시하는구나’라는 인상은 한국인에게는 의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아 우리와 계속 마찰을 빚고 있는 일본의 모습과는 상반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왜 습관적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며, 일상적으로 사과 표현을 하면서도 과거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것일까? 최근 출간된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의 책 『같은 일본 다른 일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15년 이상 일본을 연구한 저자는 사과 표현을 즐겨 쓰는 일본식 화법의 밑바탕에는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심정을 헤아리려는 마음보다는 ‘남에게 빚지고 싶지 않다’는 자기만족적인 생각이 깃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일본인들이 고마움을 표현하는 상황에서도 ‘스미마센’ 또는 ‘송구스럽다’, ‘드릴 말씀이 없다’와 같은 사과 표현을 즐겨 쓰는 이유는 일본에서는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이 곧 ‘보답할 의무를 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스미마센(すみません)’은 ‘빌린 것을 갚다’라는 뜻의 동사 ‘스무(すむ)’의 부정형으로, ‘아직 빚을 갚지 못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책에서는 “(일본 문화에서는) 손윗사람도 아닌 대등한 위치의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은 여간 부담스럽고 착잡한 일이 아니다. (…) 그렇다 보니,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에도 신중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일본 문화를 가장 객관적으로 분석한 고전으로 평가받는 『국화와 칼』의 저자인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주장을 인용하며, 그러한 채무 의식이 “(일본의)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중요한 문화적 원리”라고 말한다. ‘스미마센’과 같은 습관적인 사과의 말은 상대방에게 빚을 져서 생긴 유감스러운 마음의 표현인 동시에 “언젠가는 반드시 보은하겠다는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의지를 표하는 상징적인 화법”이라는 것이다.

즉, ‘스미마센’과 같은 일본인들의 일상적인 사과 표현은 특정한 잘못을 인정하는 말이라기보다는 공동체의 질서 유지에 기여하겠다는 의사 표시에 가깝다. 저자는 그러므로 “일상생활에서 스미마센과 같은 사과의 화법이 자주 사용된다고 해서, 일본 사회에 사과나 사죄의 관행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이처럼 우리가 일본에 대해 지닌 단편적인 인상들을 폭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검증하고 분석한 책이다.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인’과 같은 편견의 실체부터 오타쿠 문화, 혐한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이 궁금해할 일본의 속사정이 모두 담겼다. 인류학자인 저자의 말처럼 “다른 문화에 대한 탐구는 작은 곤충을 관찰하는 듯한 인내심과 섬세함을 요구”하지만, 가깝고도 먼 이웃인 일본에 대해 색다른 관점을 얻을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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