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에 부는 채식 바람, 안백린 셰프 “비건은 스펙트럼”
레스토랑에 부는 채식 바람, 안백린 셰프 “비건은 스펙트럼”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9.26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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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현식 PD]

순 식물성 다이닝 바 ‘천년식향’은 독특하다. 비건 레스토랑으로 분류되지만 ‘비건’을 강조하진 않는다. 영국에서 의료생물학을 전공한 안백린 셰프는 보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초록색’ 음식 대신 화려한 플레이팅에 ‘단짠단짠’의 조화를 담아낸다. 비주얼도, 맛도, 식감도 고기 요리와 구분이 어려운 그의 요리들은 ‘비건은 맛이 없다’, ‘비건은 건강해야 한다’ 같은 편견을 깬다.

시작은 가족의 건강을 위해 만든 케일 주스였다. 매일 케일 주스를 먹으며 컨디션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기에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이를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건강한 ‘초록색’ 음식인 케일 주스는 환영받지 못했다. 심지어 오빠는 한입 마시고는 뱉어 버렸다. 아무리 건강에 좋고, 의도가 좋은 음식이라도 그것만으로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걸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왜 셰프 일을 하냐고 묻기도 한다. 전공을 살려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도 있을 텐데 왜 굳이 힘든 길을 가냐는 얘기다. 하지만 그에게 요리는 일종의 예술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자신 있는 방법이다. 자신에게 요리란 시를 쓰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그는 『고기가 아니라 생명입니다』(2019)와 얼마 전 출간된 『채식하는 이유』까지, 두 권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요리와 책을 통해 세상에 꼭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천년식향에서 안백린 셰프를 만났다.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밀레니얼 방식으로 재해석한 채소 발효를 통해 철학과 신념을 전하고 싶은 안백린입니다. 밀레니얼과 채소 발효라는 단어의 조합이 낯설게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 채소 발효의 범주는 생각보다 다양해요.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된장, 고추장이나 토종 음식뿐만 아니라 내추럴 와인, 콤부차, 콤부차로 만든 칵테일 등도 채소 발효의 일종이죠. 저는 9년 동안 외국 생활을 했는데, 그곳에서 채소 발효는 신비로우면서도 밀레니얼 세대가 좋아하는 테마였어요. 현재 세계적인 미식 문화를 선도하는 트렌드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Q. 천년식향은 순 식물성 다이닝 바입니다. 순 식물성 다이닝 바라는 개념이 새로운데, 주요 고객층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외국 바이어나 유학생 등 외국인 고객도 많고, 조금이라도 외국 경험을 하신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사실 ‘왜 이 가격에 이것을 먹어야 하는가’부터 ‘베러 댄 섹스’(Better than Sex) 같은 메뉴 이름까지 모든 게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다, 내지는 이상하다는 반응도 많거든요.”

Q. 최근 출간된 책 『채식하는 이유』에서 “비건은 (한 가지 색이 아닌) 스펙트럼”이라는 표현이 인상 깊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천년식향의 메뉴 중 ‘비트 라비올리’는 채소 본연의 맛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선택해요. 여기서 가장 멀리 떨어진 메뉴로는 ‘플레저 앤 데인저’가 있죠. 다섯 가지 발효 소스가 들어가는 식물성 떡갈비 요리인데 굉장히 강하고 자극적인 맛이에요. 저는 이 둘이 하나의 스펙트럼에 속해 있다고 생각해서 큰 차이를 못 느끼지만, 한국에서는 이 간극이 큰 차이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 한번 ‘비트 라비올리’와 ‘플레저 앤 데인저’를 같은 가격으로 해 놓은 적이 있어요. 후자에 대해서는 가격 컴플레인이 없는데, 채소의 느낌을 살린 요리(비트 라비올리)는 본격적인 식사용이 아닌 식전 요리라는 편견이 있어서인지 가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양도 오히려 더 많게 했고, 손이 많이 가는 건 똑같은데도요. 스펙트럼이라는 표현을 쓴 건, 제가 생각하는 비건 요리의 세계는 우주처럼 입체적이고 무궁무진한데, 한국에서는 단면적으로만 받아들여지는 게 아쉬워서예요. 비유를 하자면 ‘비건은 초록색이다’라는 점에다 ‘아니다. 초록도 있고 빨강도 있다’라는 선을 하나 그었더니 그게 또 ‘빨강은 비싸도 되고, 초록은 싸야 한다’라는 어떤 방향성을 제시한 것처럼 돼 버리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은 채식, 순 식물성 음식, 비건을 초록색으로 이해한다. 초록이 갖고 있는 싱그러움, 상쾌함 등의 감정과 건강성에 대한 이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모두 다르듯 비건도 다양하다. 비건은 스펙트럼이다. 초록색으로 통념화되는 가치를 넘어, 비건의 열정과 욕망을 상징하는 빨간색, 어둠을 상징하는 검정색, 이러한 다양성을 보여 주고 싶다. 기존 비건의 개념을 넘어, 다양한 색상과 다양한 맛을 비건에게, 채소에게 허용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즐기게 하고 싶다. - 『채식하는 이유』 中

천년식향의 ‘비트 라비올리’ (촬영 @myakua_vegancookingclass) [사진=천년식향]
천년식향의 ‘플레저 앤 데인저’ (촬영 @myakua_vegancookingclass) [사진=천년식향]

Q. 과거 밀레니얼 사찰음식점 ‘소식’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비건 요식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동물과 미래 세대의 고통, 환경 파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식습관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 인간의 이기심을 직면했기 때문이에요. 비단 고기를 먹는 사람들만 그런 이기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에요. 비건과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저도 그런 이기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죠. 동물을 위해 채식을 하면서도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그 플라스틱은 최종적으로 거북이 뱃속으로 들어가요. 서로 단절된 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내 행동이 다른 존재에게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를 매번 생각하는 건 어려워요. 우리는 본능적으로 당장 내 몸이 편리하고 입이 즐거운 쪽을 선호하죠. 그 이기심을 없앨 수 없다면, 오히려 활용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딱딱한 당위성과 논리가 아닌, 모두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으로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설득해 보기로 한 거죠. 제 직업적 사명감은 거기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Q. 2019년 공저자로 참여했던 책 『고기가 아니라 생명입니다』에서 ‘동물권’에 집중했다면, 이번에 출간된 『채식하는 이유』에서는 ‘요리’에 더 초점을 맞춘 것 같은데,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때는 왜 사람들은 인간이 겪는 고통에는 깊이 공감하면서 동물의 고통에 대해서는 잘 공감하지 못할까 고민했다면,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생각 정리가 됐어요. 그렇지만 근본적으로는 비슷한 고민을 담은 책이에요. 인간-동물, 고기-채소… 이런 식으로 구분 짓고 후자를 낮춰 보는 사고방식에 대해 계속 의문을 가져 왔으니까요. 동물을 소비하지 말자고 이야기할 때 제 입장은 ‘동물을 절대 먹지 마라’보다는 ‘먹어야 한다면 그 죽음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고 감사하며 최소한으로 먹어라’에 가까운데, 사람들은 죽음의 무게는 외면한 채 마음 편하게 고기를 사 먹고 싶어 하죠. 그 바탕에는 무의식적으로 인간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가 깔려 있어요. 이와 비슷하게, 아무리 좋은 재료를 쓰고 공이 많이 들어간 채소 요리라도 고기 요리와 같은 돈을 주고 먹어야 한다면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껴요. 은연중에 고기가 채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맛있는 채소 요리를 통해 그런 사고방식에 균열을 내고 싶어요.”

Q. 천년식향은 비건 레스토랑으로 분류되지만, ‘비건을 표방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어 특이합니다. 비건임을 강조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천년식향의 주요 타깃은 비채식인이에요. 이미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들이 한 끼라도 육류 소비를 줄였으면 해서 굳이 비건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지 않는 거예요. ‘표방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 부분을 앞세워 드러내지 않는다는 거지, ‘비건이 아니다’라는 뜻은 아니에요. 쌈장도 대부분 비건이지만 ‘비건 쌈장’이라고 팔진 않으니까요. 다만 비건이신 분들이 물어 보시면 비건 여부를 확실히 답변 드리고 있어요.”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우리는 선과 악 중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의 강도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체를 가지고 있는 한 폭력은 불가피하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원래 모순을 견디면서 산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절대 100% 선한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건을 ‘완벽한 채식주의자’로 번역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정확하지 않은 번역이며, 철학적 성찰이 부족한 표현일 수 있다. 물론 완벽주의 덕분에 채식을 시작해 동물과 환경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스트레스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버틸 수 없다. 부담이 되고 의욕이 나지 않아 두려움을 마주하기보다, 회피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멀어지고 싶어 한다. 타인의 모든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요리를 하는 것이 즐겁다. - 『채식하는 이유』 中

[사진=최현식 PD]

Q. 국물 요리가 많은 한국 특성상, 비건을 지향하면서도 ‘비덩주의(덩어리 고기만 먹지 않고 육수 등은 허용하는 채식 유형)’나 ‘멸치테리언(멸치 육수를 먹는 베지테리언)’으로 타협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비건’을 포기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당장 비건이 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억지로 멸치를 끊어라, 이렇게 요구하고 싶진 않아요.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비건이 돼야만 한다는 말은 완벽해야 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완벽주의에 집중하지 말고 현재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즐겁게 좌충우돌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잘 생각해 보면 할 수 있는 일도 많거든요. 예를 들어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서 오늘은 배달 음식 대신 그냥 집에 있는 두부로 된장국 끓여 먹는다, 이것도 유의미한 실천이잖아요. 사람들이 유독 채식에 대해서는 완벽해야만 한다는 장벽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플라스틱 줄이기처럼 다양한 방법을 쉽게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회사 사람들과 점심 먹으러 가서 비빔밥을 먹는다고 하면 거기에서 ‘고기 빼 주세요’라는 한 마디, 혹은 순두부찌개와 제육볶음 중에 순두부찌개를 선택하는 것. 사소하지만 이런 실천에서 뿌듯함을 느끼고 한 걸음씩 나아가자는 거예요. 비건을 ‘아예 안 하거나’, ‘압박감을 가지고 완벽하게 해내거나’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Q. 최근 한국에서도 비건에 대한 담론이 늘어나고,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는 비건이 문화 트렌드로 각광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 변화를 체감하시나요.

“비건 식당이 정말 많이 생기고 있고, 대기업들도 다 비건 산업에 뛰어들었죠. 농심과 풀무원은 비건 레스토랑을 오픈하기도 했고요. 저도 비건 셰프로서 언론 노출 빈도가 늘어났어요. 가치 소비가 늘어나려면, 우선 그걸 멋지다고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야 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고기가 아니어도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보편화하려면 앞으로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Q. ‘비건은 비싸고, 풍족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편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비건 레스토랑은 당연히 비싸요. 왜냐하면 비건이라는 가치를 위해 그만큼 연구와 노동력이 더 들어갔으니까요. 비싼 유기농 재료를 골라 쓰고, 국물 만들 때도 다시다 넣으면 끝나는 걸 그렇게 안 하려고 채소 우리고… 비건이 비싸다고 비판하기 전에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이렇게 싸졌는지, 그 구조를 먼저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령 지금까지 우리가 계란을 싸게 먹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수컷 병아리는 다 죽이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 덕분이었으니까요.

GDP가 높을수록 의식 수준이 높아져서 비건 인구가 더 많아진다고는 해요. 그런데 또 각 국가 안에서 보면 비건들이 상류층은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동물, 환경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다 보니 돈만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제가 영국에 있을 때도 오가닉 레스토랑 다니는 친구들은 다 수수한 옷차림으로 다녔어요. 돈을 많이 벌 생각도 없었고요. 삶의 지향점 자체가 다른 거죠.”

Q. 안백린 셰프에게 음식이란 무엇인지, 또 음식으로 어떤 일을 이루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우선 가장 익숙한 소통의 매개체죠. 맛있는 음식은 그 자체로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달고 짜고 자극적인 채소 요리를 만들고, 고기가 주는 만족감을 채소로 재현할 방법에 대해 항상 고민해요. 또 음식이란, 인간이 동물이나 환경과 연결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음식은 실제로 우리 몸속으로, 세포 속으로 들어가잖아요. 그렇다면 그 음식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키워져 왔는가를 아는 건 결국 자기 몸을 구성하는 요소를 아는 거예요. 그런데 현재 우리는 그런 것과는 단절돼 있는 것 같아요. 자기가 먹고 있는 고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건지 잘 모르잖아요. 요리를 통해 그런 부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반려동물’ 대신에 ‘반려종’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인간을 포함해 모든 동물이 상호 의존적인 관계라는 의미가 담긴 말이에요. 그런 인식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고, 궁극적으로는 음식이 단순한 소비의 대상으로 머무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음식을 대할 수 있다면, 먹는 행위를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가 동물이나 환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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