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도 왕실 유지하는 영국, 왜일까
21세기에도 왕실 유지하는 영국, 왜일까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9.17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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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역사상 최장기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로 전 세계의 이목이 영국 왕실로 쏠리고 있다.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던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계속되는 한편, 젊은 세대와 과거 영국의 식민 지배를 아프게 기억하는 국가들에서는 이때를 계기로 왕실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다.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영국 정부는 매년 세금으로 왕실 유지비를 지원하는데, 21세기에 굳이 혈세를 써 가며 왕실을 존속해야 할 이유가 우리의 관점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영국이 여태껏 왕실을 유지해 온 이유는 무엇일까.

책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에 따르면 영국 내에서 왕실 유지에 반대하는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영국인들은 왕실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들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제도인 왕정을 “단순히 시대가 변했고 돈이 좀 든다고 폐지하는 것을 반대한다”. 영국에서 왕은 국가의 수반일 뿐 아니라 국제적 통합의 상징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영제국이 영연방으로 재편되며 영국의 왕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캐나다 등 주요 영연방 국가의 원수를 겸하게 됐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영국인들은 왕실의 폐지를 곧 자랑스런 영국 역사의 종말이라고 느낀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1953년, 아버지 조지 6세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왕위에 오른 젊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될 만큼 웅장하게 거행됐다. 전 세계 2,500만명이 TV 생중계로 지켜본 당대 최고의 행사였다. 사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영제국이 무너지며 축소된 영국의 대내외적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처칠 수상의 의도가 반영된 기획이었다. 약 30년 뒤인 1981년 진행된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혼식은 무려 7억5,000만명이 시청했으며, 당시 수십만 영국인이 거리로 나와 왕실에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는 순간을 축하했다. 영국인들에게 왕실은 격동의 시기에 안정감을 주는 전통이자 자국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드러내는 보루였던 셈이다.

여기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독보적인 매력과 균형 감각도 큰 역할을 했다. 여왕은 공식적으로는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국가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사려 깊은 메시지로 민심과 정치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왕실에 부여되던 면세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고 소유 재산에 대한 세금을 내기 시작해 왕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기도 했다. 부드러운 리더십과 적극적인 순방으로 영연방 국가들과의 관계 유지에도 힘썼다. 그 결과 여왕은 세계인의 선망을 받게 되었고 영국 내 지지율도 지난 5월 기준 81%에 달했다. 꾸준한 반대론에도 불구하고 과반수 국민의 지지를 얻어 온 왕실이 하루아침에 폐지 등의 극단적인 수순까지 밟을 가능성이 미약해 보이는 이유다.

그러나 영국 현대사의 산증인이라 불리는 여왕이 서거하고, 가뜩이나 사생활 스캔들 등으로 지지율이 낮은 찰스 3세가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론과 함께 영연방의 결속력은 약화하고 있으며, 브렉시트 이후 민심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찬란했던 왕실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증명하는 것, 74세의 나이로 왕실의 수장이 된 찰스 3세에게 주어진 막중한 과제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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