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즈음부터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10만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평평한 지구 학회’에서는 2017년부터 매년 국제 콘퍼런스를 열기도 한다. 이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당연한 상식을 거부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텍사스테크대학교의 애슐리 랜드럼 교수가 2017년 콘퍼런스를 찾아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 30명을 인터뷰한 결과, 30명 중 29명이 유튜브를 통해 그러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튜브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동영상이 많이 올라온다. 사람들은 상식적인 내용보다 참신한 주장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튜브를 통해 ‘평평한 지구’를 믿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난 건 단순히 그런 영상이 많아서만은 아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만들던 컴퓨터 엔지니어 기욤 샤스롯은 ‘평평한 지구’라는 키워드를 가진 전체 영상 중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영상의 비율은 35%에 불과하지만, 알고리즘에서 추천되는 동영상은 90%가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영상이라고 설명했다. 한번 ‘평평한 지구’에 관한 영상을 보고 나면 이후 10번에 9번꼴로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알고리즘은 최대한 사용자의 이용 시간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는 데 유튜브가 일조했다는 비난이 일자 유튜브는 알고리즘에서 해당 영상들이 추천되는 비율을 조정했다. 하지만 ‘평평한 지구’를 믿지 않더라도, 스마트폰의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중독성 강한 알고리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책 『호모 아딕투스』(다산북스)에서는 제품경제와 관심경제의 시대를 지나 ‘중독경제’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중독경제 시대란 “사람들을 스마트폰에 중독시켜서 돈을 버는 시대”다.
‘중독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아딕투스’(Homo addictus)라는 개념이 생길 정도로 디지털 중독이 일상화된 시대, 중독경제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은 살아남기 어렵다. 그런데 중독경제에서는 빅테크 기업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사용자가 앱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거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OS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유도 사용자 데이터를 추적하기 위해서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빅테크 기업들은 ‘시핑-후킹-소킹-인터셉팅’의 네 단계를 거치며 전략적으로 사람들을 중독으로 이끈다. 시핑(Sipping)이란 맛보기 단계로, 지속적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우선 서비스를 맛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할지 아닐지 모르는 서비스에 돈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기간 한정 무료 배송, 신규 고객 할인 쿠폰, 무료 체험 기간 등은 모두 보다 많은 사람이 서비스를 경험하게 하기 위한 시도다.
후킹(Hooking)은 낚아채는 단계다. 깜짝 선물이나 할인, 흥미로운 이벤트 등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외에도 도파민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가 필요하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 앱은 사회적 욕구를 이용한다. 사람들은 타인의 멋진 삶을 구경하면서 자신도 인정을 받고 싶다는 생각에 지속적으로 앱을 이용하고, ‘좋아요’가 가져다주는 강한 쾌감에 중독된다.
소킹(Soaking)은 몰입을 유도하는 단계로, 유튜브의 자동 재생 시스템처럼 최소한의 동작만으로도 서비스를 계속 이용할 수 있게 하면 사람들은 몰입하기 시작한다. 인터셉팅(Intercepting)은 앱을 벗어나 현실로 돌아간 사용자를 다시 데려오는 기술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스마트폰 알림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림에 깜짝 보상과 같은 후킹 요소를 넣으면 사람들은 앱 알림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한편, 빅테크가 독점한 시장에서 틈새를 파고드는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들도 있다. 고도화된 AI 알고리즘도 끊임없이 변하는 사람의 마음을 완벽하게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면 신뢰하는 사람이 추천하는 제품을 사용하면 만족스러운 경험을 하기 쉬운데, 이는 그 사람의 추천 자체가 나의 선호를 일정 부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알고리즘에 맞서는 ‘큐레이팅’의 힘이다. 큐레이팅은 모든 이들의 취향을 반영할 필요가 없으므로 작은 규모로도 운영할 수 있고, 큐레이팅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에 한번 만족한 사람들은 높은 충성도를 보인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