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열 번째 여름.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열 번째 여름.
  • 스미레
  • 승인 2022.07.12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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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의 절반이 기어이 뚝 떨어져 나간 날. 낮의 시간이 밤의 그것보다 길어진다는, 오늘은 하지다. 여름의 밝고 환한 기운을 좋아하는 아이는 이날을 기다렸다는 듯 저녁상에 앉아서도 해를 볼 수 있다며 한껏 즐거워한다. 축구를 하고 와 땀을 뻘뻘 흘리며 한술 가득 뜬 밥을 담고 우물거리는 녀석의 동그란 두 볼이 마침 오늘의 석양빛과 꼭 닮았다.

배부르게 밥 잘 먹여 재운 아이를 주욱 톺아보니 작년에 사 입힌 모시 잠옷이 한참 깡총하다. 어어, 하는 사이 어느덧 한 해의 반을 지나 아이와 함께하는 열 번째 여름을 나고 있다. 그 사이 아이가 내 턱 밑까지 자랐고 나도 어딘가 조금은 달라졌지만, 삶의 모습은 녀석의 어릴 적과 거진 같다.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헤아려봐도 그렇다. 아침마다 네가 학교에 가고, 예체능 수업이 한둘 얹혔을 뿐 달라진 건 참도 없네, 하곤 웃어버렸다.

널찍널찍한 시간 속에서 동네를 거닐고, 짬짬이 뒤 돌아 각자 할 일을 하고, 볕 자리에서 심심한 간식을 들다 복작복작 집안일을 나누고, 털레털레 장 봐온 것들로 순한 밥을 지어 먹고, 툴툴대다 낄낄 웃다 함께 책 읽으며 잠드는 하루는 늘 길고도 짧다.

식구 모두 느리고 민민한 오늘을 참 잘도 꾸려간다. 그 모습이 예쁘고 장하다가도 종종 ‘어, 우리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하지 해를 쉬게 한 밤 덕분에 종일 바쁘던 나도 휴식을 얻는다. 자꾸 덥다고 깨는 녀석에게 손부채를 해주며 누웠자니 그간 쌓은 여름의 기억들이 눈앞에 환하다.

막 아이가 들어선 여름을 하얗게 태워버린 입덧. 기록적이었다던 그 여름의 폭우. 밤 내 우는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 꼬박 뜬 눈으로 보낸 아이와의 첫여름. 걷기에 재미 붙인 아이를 따라다니느라 조마조마했던 두 번째 여름.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 나가 그 앞에 살다시피 했던 커다란 분수. 여름마다 놀이터에서 얻어오던 주근깨와 일사병. 아이와 플라스틱 칼로 자른 수박 동동 띄워 만든 화채를 나누어 먹으며 책을 읽어주던 숱한 오후들.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이듬해 얻었던 감격적인 첫 수확. 한여름 아이 고집에 못 이겨 주워온 선풍기를 지고 비탈길을 오를 때 땀처럼 쏟아져 내리던 눈물...

그 시절에 비하면 다 컸지, 싶지만 사실 녀석은 키만 덥석 컸지 내내 덥다고 칭얼대고, 밤마다 손부채를 해줘야 곤해지는 여전한 아가다.

그뿐이면 다행이게. 종일 틈만 나면 엄마아 엄마아, 알람처럼 엄마를 부르고 배고파, 놀아줘, 옷 어딨냐, 책 어딨냐, 를 입에 달고 산다. 게다가 요즘은 저도 십 대라고 어설프게 배워온 허세를 부릴 줄도 안다.

오십일의 기적, 백일의 기적이란 말이 내겐 전혀 와닿지 않았듯 “열 살이면 애 다 커. 육아 길어봤자 십 년이야.” 그 말도 내 얘기는 아닌가 한다.

그랬거나 저랬거나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자란다. 그렇게나 뜨겁던 열 번의 여름이 초록의 그늘 아래 평온으로 모인 지금.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모두 어제 일 같은데 어느새 여름밤 아이와 도란대기 좋은 즐거운 단편들로 남겨졌다.

여름마다 온 동네를 호령하던 개구쟁이1 꼬마는 어딜 가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이 여름을 끙끙 앓는 엄마에게 죽을 쑤어 건넬 줄 아는. 성실한 여름 소년으로 자라있다.

열 번의 여름을 건강하게 나 주어 정말 고마워, 어여쁜 나의 여름아.

 

 

■ 작가소개

- 스미레(이연진)
『내향 육아』, 『취향 육아』 저자. 자연 육아, 책 육아하는 엄마이자 에세이스트.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짓는 엄마 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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