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에게 듣다] 고재민 교수 “도서관은 삶이 어우러지는 공간이어야 한다”
[명사에게 듣다] 고재민 교수 “도서관은 삶이 어우러지는 공간이어야 한다”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06.2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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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도서관의 풍경이 달라졌다. 이제 사람들은 도서관에 책만 보러 가지 않는다. 요즘 도서관에는 열람실 말고도 북카페 스타일의 라운지나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강좌실 등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 예전에는 조용한 공부를 위한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유아부터 어린이, 청소년에서 성인, 실버세대까지 생애주기별 전 연령층의 문화소통공간이 되었다. 도서관 전체가 하나의 종합문화시설로 변모해가는 상황이다.

자연스레 도서관 설계 방식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지역 내 도서관의 역할이 커졌다고 해서 단순히 공간만 확장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도서관의 역할에 맞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도서관을 설계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고재민 수원과학대 교수는 오랜 기간 국내의 많은 공공도서관의 설계 및 컨설팅을 수행해온 인물이다. 또 도서관 관련 포럼이나 강연, 토론회가 열릴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도 한다. 건축학 박사 학위를 지녔지만, 동시에 사서 자격증과 문헌정보학 박사학위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도서관은 “라이브러리’(library)가 아닌 ‘라이프러리’(liferary)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서관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삶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과연 그가 꿈꾸는 ‘라이프러리’는 정확히 어떤 모습일까. <독서신문>은 지난 8일 수원과학대 교수 연구실에서 그를 만나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고재민 수원과학대 교수 [사진=안경선 PD]
고재민 수원과학대 교수 [사진=안경선 PD]

Q. 도서관 설계를 전공한 건축학 박사지만, 동시에 문헌정보학 박사이기도 하다. 문헌정보학까지 공부한 계기가 뭔가.

“도서관 설계 및 컨설팅을 하면서 현장에서의 직접적인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고려하지 못했었다고 생각한다. 공간의 조형적인 미에 집중하다보니 문화시설 설계를 전공했다고 하지만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 한계로 느껴졌다. 10년 전에 도서관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관장님과 사서선생님들이 이런 얘기를 했다. 도서관의 운영적 측면의 경험과 이해 없이 공간을 구성하면, 그 안에 일하는 우리들은 창살 없는 감옥에서 일하는 것 같다고... 충격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도서관 설계를 전공했다고 생각했는데, 건축적 관점에서만 접근한 거였다. 쉽게 말해 도서관 내의 메커니즘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길로 동네 도서관에서 허구한 날 관장님들과 사서선생님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도서관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어떠한 움직임이 있는지 살펴보다가 재미를 느끼게 됐고, 이참에 아예 문헌정보학 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Q. 문헌정보학을 공부하고 나서 도서관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나.

“사실 학위를 따기 전과 후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관점이 달라진 이후부터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조금 건방진 얘기일 수도 있지만, 굳이 달라진 점을 꼽자면 도서관 내부의 메커니즘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거다. 현장의 요구 사항이나 실질적으로 도서관을 운영하시는 분들의 생각을 조금 더 잘 파악하게 됐다고나 할까.”

Q. 도서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원래부터 도서관에 애정을 갖고 있었나.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국회도서관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 때가 한 예닐곱 살 즈음이었는데, 그 공간이 권위적이지도 않고 재미있게 돌아다닐 수 있는 환경처럼 느껴졌다. 진짜 좋았던 건 밥이 맛있었던 것이다(웃음). 어렸을 때부터 사서 선생님들과 친하게 지냈고, 또 그분들이 막 책도 읽어주시고 간식도 챙겨주시니 놀이터처럼 여겨졌다.”

Q. 공간의 분위기가 독서에 주는 영향도 상당히 큰 것 같다.

“도서관이 너무 즐거워서 눈만 뜨면 빨리 가고 싶은 공간이면 이 안에서 일어나는 독서라는 행위도 즐거운 놀이처럼 각인된다. 하지만 도서관이 딱딱하고 힘든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면 독서라는 행위도 부정적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요즘 어린 아이들은 독서라는 개념을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평소 학교 도서관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년에는 학교 도서관 공간에 대한 매뉴얼을 개발하기도 했다.”

Q. 최근 공공도서관이 다양한 콘셉트로 세분화‧전문화되고 있다. 요즘 도서관은 독서 뿐만 아니라 각종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는데, 이런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단, 그렇게 도서관의 역할을 확장했을 때에는 충분한 인력과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막상 도서관을 확장했지만 지원을 하지 않고 기능을 다 하라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하기 쉽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서가 행복해야 이용자도 행복하다. 10명이 해야 할 일을 5명이 밤새서 죽을 만큼 일하면 그 사람들의 ‘삶’에서 행복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 안에서 대체 무슨 의미가 생기겠나. 요즘 도서관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 공간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공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공간을 운영하는 건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사진=최현식 PD]
[사진=안경선 PD]

Q. 확장을 해놓고도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가.

“많다. 예산을 많이 들여 일단 건립을 해놓고 그 이후 충분한 운영예산과 인력이 지원되지 않으면 결국 이용자가 외면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Q. 이번 팬데믹으로 도서관은 새로운 환경에 직면해야 했다. 비대면 서비스가 늘어난 만큼, 도서관 공간도 축소되고, 사서는 AI로 대체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절대 그럴 일 없다고 힘주어 이야기 하고 싶다. 오히려 도서관이 더 중심이 되는 사회가 올 것이다. 사람이 밥 먹고 잠자는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공간이 필요한 것처럼, 만나고 소통하는 것 또한 본능이기에 그러한 욕구를 채워줄 공간도 있어야 한다. 나는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사람들이 모여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서관 말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도서관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사서의 역할과 위상은 더 높아질 것이다. 비대면 사회가 온다고 해서 공간을 없애는 게 아니라 도서관의 위상을 더 높여야 한다. 공공시설의 위상은 예산 및 인력지원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Q. 도서관에서의 ‘소통’을 중요시하는데, 과연 도서관의 소통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지역 내 아이들이 도서관이 너무 좋아 맨날 가서 논다고 치자. 아이들이 놀다보니까 집에 와야 되는 시간임에도 오지 않는다. 엄마들은 아이들을 찾으러 도서관에 왔다가 그들끼리 친해지는 경우가 생길 것이고, 결국 도서관은 엄마들의 아지트 혹은 동네 사랑방이 될 수 있다. 나아가서는 아빠들의 네트워크로 발전할 테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평소 서먹서먹해서 인사도 잘 못하던 이웃들이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의 소통을 통해 어색함을 잊고 동네 여기저기에서 안부를 주고받는 모습, 나는 이런 모습이 진정한 지역재생이고 이러한 소통창구의 역할을 도서관이 이끌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Q. 그런 모습이 실제로 이뤄진 사례가 있나.

“강원도 영월에 있는 월담 도서관을 보면 되겠다. 100평밖에 안 되는 도서관을 만들었는데 이웃들끼리 모이는 북적북적한 도서관이 됐다. 이렇게 인기를 끌다보니 군수가 예산을 추가로 들여서 2~3층 증축을 하면서 큰 공공도서관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월담 도서관은 여러 사례 중 하나일 뿐 다른 사례도 많다. 국내의 도서관을 주인공으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모아서 집필 중에 있다. 이번 여름방학이 지나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기대들 해보시라(웃음)”

[사진=안경선 PD]
[사진=안경선 PD]

Q. 도서관이 시끌벅적하지 않고, 조용한 공간으로 남길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도서관을 이용하는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서관은 아이들이 뛰어놀고 같이 소리내어 책을 볼 수 있는 소음 영역, 사서들과 책에 대한 정보 등을 나눌 수 있는 중소음 영역, 조용한 환경에서 집중적으로 독서를 할 수 있는 무소음 영역으로 적정하게 분리, 배치되어야 한다. 그래서 예컨대 내가 관여하는 도서관들은 1층은 놀이터 같은 개념으로 소음영역 중심으로 구성하고, 2층은 중소음 영역인 종합 자료 열람실, 3층은 집중독서 및 문화프로그램 등을 할 수 있는 무소음 영역으로 수평적으로 층별구분을 해놓는다. 이 말은 즉, 요즘 트렌드에 맞게 도서관을 만들어놨으니 어디서든 마음껏 떠들자는 건 아니다.”

Q. 곧 휴가철이 다가온다. 독자들에게 도서관 투어로 갈만한 곳을 추천해주면 좋겠다.

“경기권으로 간다면 최근 리모델링한 부천의 원미 도서관과 오정 도서관, 안과 밖에서 잔잔한 노래가 흐르는 역곡 도서관, 그리고 이번에 엄청난 규모로 신축 개관한 별빛마루도서관과 수주도서관을 추천한다. 이 5개 도서관을 1박 2일이나 2박 3일 정도로 놀러가면 좋겠다. 의정부 쪽에 있는 미술도서관과 음악도서관, 지하철 역에다 지은 가재울 도서관을 하루나 이틀 코스로 다녀와도 좋겠다.

만약 순천 쪽을 방문할 예정이라면, 그 지역 관광 명소와 함께 순천지역의 공공도서관 여행을 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그 지역 공공도서관이 다 특색 있고 재밌다. 경남지역에는 지혜의 바다 시즌1과 시즌2를 중심으로 최근 리모델링한 마산도서관 등을 시리즈로 방문해보는 것도 즐거운 포인트가 될 수 있고, 국내 최초로 도서관정책국이 탄생한 전주로 놀러가서 전주꽃심도서관을 시작으로 최근 리모델링한 전주시 공공도서관들을 관광명소와 곁들여 둘러보는 것도 매력적인 여행이 될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하다.

“문화 공간의 일상화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공연시설, 전시시설,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개념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다함께 어울릴 수 있는 문화의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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