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나이 서른넷과 서른다섯, 뭐가 다를까
여자 나이 서른넷과 서른다섯, 뭐가 다를까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6.20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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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네 살은 1캐럿 다이아고 서른다섯 살은 9부 다이아예요. 사이즈 차이는 그렇게 크게 없지만 1캐럿 다이아가 훨씬 비싸거든요. 그냥 그런 거예요.”

서른다섯 살을 목전에 둔 어느 날, 이소호 시인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평소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는 받지 않지만, 하루 세 번이나 전화를 걸어 대니 책 계약과 같은 중요한 용건이 있으리라고 짐작한 것이다. 허무하게도 전화를 건 쪽은 출판사와는 거리가 먼, 시인이 뭐 하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는 결혼 정보 회사였다.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차별과 폭력을 파격적인 언어로 풀어낸 첫 시집 『캣콜링』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시와 산문을 오가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던 그의 커리어는 상대방의 관심 밖이었다. 

전화를 건 결혼 정보 회사 직원은, 여자는 “스펙보다 나이와 외모”라며 예쁘지 않다면 젊기라도 할 때 하루빨리 결혼 시장에 스스로를 내놓으라고 종용했다. 결혼 시장의 기준에 따르면 여자의 ‘젊음’은 서른다섯 살이면 가차 없이 끝난다는 것.

인간 신체의 노화는 이십 대 중반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서른다섯은 본격적으로 노화를 체감하는 나이일 수 있다. 더군다나 임신과 출산을 기준으로 한다면 서른다섯은 ‘노산’을 걱정해야 하는 다소 늦은 나이가 맞다. 하지만 가임기 여성이 아닌 그저 한 명의 여성으로, 사람으로 생애주기를 바라본다면 서른다섯 살은 아직 한창때다. 

최근 출간된 이 시인의 에세이 『서른다섯, 늙는 기분』은 서른다섯 살을 맞는 여성의 복잡한 심경을 다루고 있다. “(삼십 대의) 나는 일단 나로서는 망하지 않는다. 근데 사회가 망했다. 사회가 날 보는 태도는 (…) 망가져 있다. 나는 가만히 있지만 사회는 나를 늙은 여자로 치부한다”며 여자 나이에만 덧씌워지는 사회적 편견을 꼬집는다. 

“내 몸의 자유 이용권 만기를 온몸으로 느낀다”는 이 시인은 삼십 대가 되면서 여러 변화를 체감했다. 새치인 줄 알았던 흰머리는 늘어만 갔고, 한번 찐 살은 잘 빠지지 않았다. 신조어 같은 트렌드를 따라가는 일도 예전처럼 쉽지 않았다. 그는 흰머리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친구들과 난자 냉동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나이가 들며 누구나 비슷하게 겪는 일이다. 여자의 삼십 대가 특히 힘든 이유는 위의 결혼 정보 회사 직원처럼 여자에게만 유통기한을 매기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노처녀’, ‘여자는 삼십 대 중반이면 꺾인다’ 등 늙으면 상품 가치를 잃게 될 거라며 겁을 주는 말들은 흔하다. 이 시인은 “내가 쓸모가 없어질 것이라는 것. 노처녀라는 농담을 내게 던지면서도 본인의 수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부딪쳐야 한다는 것. (…) 일이나 가정 둘 중 하나의 선택이 왜 여성에게만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은 삼십 대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상황은 이십 대에도 비슷했다. 대학생 시절, 이제 막 스물네 살이 된 그에게 한 선배가 ‘이제 크리스마스 케이크다’라며 농담 아닌 농담을 건넸다. 24일에는 불티나게 팔려 나가지만, 25일이 되는 순간 떨이로 전락하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여자를 비유한 것이다. 이 시인은 “나보다 내 나이 숫자를 열심히 세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저주”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이 유독 심한 나라다. 그러나 시장 조사 전문 기업 트렌드모니터가 지난 2020년 발표한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30대에는 결혼을 해야 한다’거나 ‘40대에는 내 집이 있어야 한다’는 등의 고정관념이 시대변화를 잘 반영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44.2%로 적지 않았다. 다양한 삶의 형태를 선택하거나 고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100세 시대,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나이로 재단하는 일부터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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