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잊을 청년
못 잊을 청년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2.05.25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흔히 현대인들은 감동을 상실하며 산다고 한다. 이는 삶에 쫓겨 마음의 여유를 잃어서일 것이다. 또한 개인적으론 감동은 매사 감사하는 겸손한 마음을 지녔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오만하고 이기적이며 다소 뻔뻔하면 감동에 둔감해질 듯하여 평소 이런 마음을 경계하지만, 필자 역시 감동에 이르는 마음의 거리가 꽤 멀어 이 점이 못내 부끄럽다.

이게 아니어도 요즘 사회 전반적으로 감동이 사라질 일들이 벌어지기 일쑤다. 걸핏하면 재산을 탐내 자식이 부모에게 칼끝을 들이밀고 돈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등 돌리고, 보험금을 노리고 살인도 감행하는 각박한 세태가 아닌가.

사소한 일에도 감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자락이 순연하고 담백하다는 증표이나 날이 갈수록 심성이 혼탁해지고 거칠어지는 것은 어인 일일까. 세상살이가 팍팍해서라면 궁색한 핑계일지도 모른다. 타인이 베푼 은혜나 배려에 대해선 의당히 고마운 마음을 지니는 게 사람의 도리이련만 어느 사이 우린 그런 본연의 인간적 마음을 잃고 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또한 공짜는 더더욱 없다. 자신을 위하여 타인이 베푼 따뜻한 위로 한 마디, 힘들 때 상대방을 위하여 자신의 일처럼 솔선수범하며 도움을 준 사람, 이해타산에 얽히지 않고 순순한 인간애로 자신을 위하여 성심을 다해 준 사람 등등,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으로 감사할 일이 수두룩하다. 하다 못하여 미세먼지 없이 맑고 쾌청한 하늘, 따사로운 햇살, 싱그러운 신록, 볼을 간지럽히는 미풍마저도 자연에게 감사해야 할 일 아니던가.

어디 이뿐인가. 오랜 가뭄 끝에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는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세계가 기후 이상으로 온갖 기상이변을 겪지만 뚜렷한 사계절 변화를 우리는 느끼며 사니 이 또한 감사한 일 아닌가. 봄날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꽃 아래서, 혹은 날만 새면 일제히 함성을 지르듯 나뭇가지마다 움트는 연둣빛 새순을 바라보며 가슴 속에서 우주 만물의 생성에 경이로움을 느끼곤 했잖은가.

뿐만 아니라 주황빛으로 물드는 서녘 하늘을 바라보며 노을의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기기도 했다. 이런 감동은 인간만이 느끼는 게 아닌가보다. 어디선가 읽은 내용이다. 어느 동물학자가 아프리카 정글을 헤맬 때란다. 몸집이 큰 원숭이 한 마리가 한 손엔 꽃이 아름답게 핀 나뭇가지를 꺾어들고 서녘 하늘에 번지는 주황빛 노을을 우두커니 서서 한동안 바라보더란다.

이로보아 동물도 인간처럼 미추(美醜)에 대한 감정이 존재하나보다. 한편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을 인간처럼 느낄 수 있을까? 의문은 든다. 정녕 이게 사실이라면 한낱 동물들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잖은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어찌 감동에 무심하랴.

그동안 마음자락이 메마른 탓에 매사 무덤덤하던 필자였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런 필자의 가슴을 한껏 뒤흔든 청년이 있다. 코로나19 창궐로 집안에 칩거하는 날들이 길어지자 헬스용 자전거를 구입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페달을 아무리 밟아도 헐거워진 느낌이다. 해서 AS 신청을 하였다. 며칠 후 어느 청년이 집을 방문했다. 희한하게도 그 청년이 자전거 부품을 만지자 원상태를 곧 회복했다. 청년 말로는 아무리 살펴봐도 고장 난 부분이 없단다. 자석이 작동하여 바퀴 부분에 닿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에 먼지가 끼면 이물감으로 자전거 쇠바퀴에 자석이 제대로 붙지 않았을 경우가 가장 큰 원인이란다.

그 원리를 몰랐던 필자이기에 물품이 제대로 작동 안 한다고 무턱대고 수리 신청을 했던 것이다. 청년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서 출장비 3만원은 유상이지만 비용을 받지 않겠다는 말을 남겼다. 사실 어느 제품이든 고장 수리를 위하여 기술자를 부르면 출장비는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 청년은 회사 측보다 소비자 측에 서서 출장비를 받지 않았다. 비록 약간의 금액이지만 그 청년의 양심적이고 타인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참으로 고마웠다.

요즘 무엇으로든 남의 밥그릇 빼앗는 게 혈안이 된 세상이라면 지나칠까. 이런 각박한 세태에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도 불사하고 애써 달려온 출장비를 받지 않은 그 청년의 마음 씀씀이에 갑자기 가슴에 온기가 충만해지는 듯 했다. 모처럼 삭막했던 가슴에 윤기를 얻는 순간이었다. 이 자전거로 운동을 할 때마다 그 청년을 떠올릴 듯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