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 윈프리는 왜 임종 앞둔 엄마에게 침묵했을까
오프라 윈프리는 왜 임종 앞둔 엄마에게 침묵했을까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05.20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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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오프라 윈프리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의 방에서 몇 시간째 TV만 보고 있었다. 어머니와 단둘이 있는 내내 도무지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간병인이 두고 간 호스피스 매뉴얼까지 뒤적이곤 했다. 세계적인 스타부터 정치인과 범죄자까지 어느 누구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그였는데, 왜 죽음을 앞둔 자기 어머니 앞에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을까.

이는 그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채 자랐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출생증명서를 보내 아기 옷을 살 돈을 요구할 때까지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으며, 어머니는 가정부 일을 하느라 그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할머니에게 맡겨졌던 그는 온갖 사소한 이유로 정서적인 학대를 당하고 매를 맞았다. 어릴 때의 기억은 후일 스타가 된 윈프리에게 반평생의 트라우마로 남겨져 있었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은 현재를 살아도 그의 뇌는 과거에 붙들려 있다. 어떤 위협이나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해 적응한 뇌가 그런 상황이 끝나고도 과거의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이들은 불행한 일을 겪었던 그 때와 비슷한 환경에 놓이면 혼란에 빠지기 마련이다.

책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는 오프라 윈프리와 아동정신의학자 브루스 D. 페리 박사의 대담집이다. 책은 윈프리를 비롯해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여러 인물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페리 박사가 트라우마 치유 방법을 전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페리 박사는 치유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연결성’을 강조한다.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자신을 지지해주고 온전히 함께해 주는 사람들 속에서 짧은 치유의 시간을 수백, 수천 번 경험하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전문가와 한 번에 긴 시간 대화한다고 바로 치유되지 않는다. 윈프리는 “단 한번도 전문적인 트라우마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지만, 매일 그의 친구 게일 킹과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며 상처를 돌볼 힘을 얻었다”고 말한다.

연결성과 함께, 트라우마 치유에서 핵심적인 다른 하나는 ‘순서’다. 페리 박사에 따르면 우리 뇌는 어떤 경험을 처리할 때 생존에 필요한 기본 기능을 담당하는 아래쪽 영역부터 시작해 언어와 사고를 담당하는 위쪽 영역 순으로 진행하는데, 이 순서는 트라우마 치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대화하는 상대방이 안전하고 친근한 사람으로 느껴져야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 ‘당신은 꼭 트라우마를 극복해야만 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폭력에 가깝다. 대신 우리는 이렇게 주문할 수 있다. 트라우마라는 거대한 산을 넘으면 그 너머에 과거를 지혜롭게 돌아볼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윈프리는 다음 날 다시 병실을 방문해 어머니를 용서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고통스러운 기억과 감정에서 풀어주어야 했다.

윈프리는 “우리가 과거의 고통을 여전히 꼭 붙들고 있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며 “트라우마로 부서지고 상처 입었던 우리는 누구나 그 경험을 페리 박사와 제가 말했던 외상 후 지혜로 바꿀 수 있다”고 독려한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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