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국가에서 히틀러는 어떻게 선출됐나
민주 국가에서 히틀러는 어떻게 선출됐나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05.18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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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전 독일의 정식 국명은 ‘바이마르 공화국’이었다. 1918년 독일 제국의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직전에 탄생한 민주주의 국가였다. 이 나라는 지금 봐도 흠잡을 데 없는 민주주의적 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 헌법 제1조는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해 놓았으며,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를 보장했고, 비례대표제도 실시하면서 유권자의 민의를 충실히 보장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 히틀러가 국민의 손에 의해 ‘선택’됐다. 무슨 이유였을까.

단순히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의 언변에 속아 넘어간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미국의 역사학자 벤저민 카터 헷의 책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는 히틀러와 나치 집권의 배경에는 전후 독일의 복잡한 국내‧외 정세가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그의 책에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게 걸려 있는 전쟁 배상금, 1920년대 말 세계 경제에 닥친 대공황, 그로 인한 각 사회 계층의 엇갈린 입장과 해소되지 않는 갈등을 비롯해 여러 역사적 맥락이 등장한다. 한마디로 당시 독일은 민주적인 정치 체제를 갖고 있었긴 하나 사회‧경제적으로는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던 것.

사실 처음부터 나치가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1928년 총선에서 나치는 2.6%의 득표율을 얻은 군소정당에 불과했다. 히틀러 역시 폭동을 부추기고 내란을 주도하는 과격한 선동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신을 정치적 굴욕과 경제적 어려움의 희생자라고 느끼는 사람들의 분노를 이용하는’ 힘이 있었는데, 그러려면 독일의 상황이 더욱 나빠져야 했다. 1929년 대공황으로 전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게 되면서 히틀러가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완성됐다.

대공황으로 세계적인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자 독일 농민들은 세금을 내지 못하거나 파산하게 됐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사회민주당은 도시 노동자들이 핵심 지지층이었기 때문에 농민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또한 사회민주당은 패전 후 방위비 지출에 반대하고 임금 인상 합의를 국가가 중재하도록 했는데, 이는 당시 독일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이었던 군과 대기업이 반대하는 것이었다. 결국, 자신들의 요구와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자 농민, 군, 대기업 세력은 히틀러와 나치를 정치적 대안으로 점찍었다.

민주주의가 몰락했던 1930년대 독일과 오늘날의 상황은 얼마나 다를까. 아쉽게도 100여년이 지난 지금, 탄탄한 민주주의 제도를 갖춘 국가에서조차 히틀러처럼 과격한 생각을 지닌 정치인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경우는 종종 있다. 2016년 미 대선에서 당선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소수자 차별 발언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고,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도 반이민 기조를 내거는 극우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지지율을 높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독일인들도 히틀러의 생각을 불편해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히틀러 같은 인물이 통치하는, 야만적이고 무법적인 독재 정부를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그저 각자의 문제를 가장 쉽고 빠르게 해결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말한다. 그 ‘쉽고 빠른’ 해결책이란 모두가 알다시피 독일이 군사적으로 팽창하고 유대인의 재산을 갈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흑역사를 만들었다. 절망스러운 상황을 하루빨리 타개하고 싶은 독일 국민들은 가장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한 것이다.

저자는 “나중에 태어난 우리에게는 당시 독일인보다 유리한 점이 한 가지 있다”며 “그들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조언한다. 민주시민으로서, 사회적 혼란 중 누군가 제시하는 ‘쉽고 빠른’ 해결책의 의미를 곱씹어 볼 여유와 지혜가 필요하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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