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90년대생’의 통쾌한 반란
‘이기적인 90년대생’의 통쾌한 반란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5.02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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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웃기면 웃을 필요 없다.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한다.” 마치 90년대생의 사회생활 태도를 요약해 놓은 것 같은 이 문장은 SBS의 유튜브 예능 프로그램 <문명특급> 제작진이 아이돌 출연자에게 제시하는 행동지침이다. SBS뉴스의 윤춘호 논설위원은 “‘신문물을 전파하라’는 구호를 앞세운 이 유튜브 채널 자체가 하나의 문화 현상이다”라고 평했다. <문명특급>을 만든 90년대생들은 무엇이 달랐을까. <문명특급>의 홍민지 PD가 최근 출간한 책 『꿈은 없고요, 그냥 성공하고 싶습니다』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

기존의 미디어는 연예인을 자극적인 가십으로만 소비하기 바빴다. 1분 1초가 귀한 연예인을 섭외해 놓고 연애사와 가정사, 다이어트를 얼마나 했는지 같은 사생활만 꼬치꼬치 캐 묻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나이가 어린 아이돌에게는 더했다. 아이돌은 늘 웃는 얼굴이어야 했고, 무례한 질문에도 ‘태도 논란’을 피하려면 친절하게 답변해야 했다. 홍민지 PD는 이런 세태에 불편함을 느꼈다. 불합리한 일을 겪어도 웃어야 하는 동년배 아이돌이 직장에서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90년대생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돌을 전문성을 가진 직업인으로 표현하려 했고, 그 결과 이제까지 아이돌에게서 들을 수 없었던 참신한 이야기들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문명특급>이 아니었다면 아이돌이 춤 동작의 미세한 각도, 무대에서 짓는 표정 하나하나를 두고 수천 번 고민한다는 사실을, 화려한 겉모습 뒤에 감춰진 피, 땀, 눈물을 시청자들은 영원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며 일해 온 건 홍민지 PD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예능 PD를 꿈꿨지만 번번이 낙방하다가, 정확히 뭘 하는 건지 아무도 모르는 ‘뉴미디어’ 팀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어른들은 미래가 없는 일은 빨리 그만두고 지상파 프로그램 PD가 되라고 조언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걸 어쩌겠는가. 그는 자신을 거부하는 꿈이라면, 그런 꿈은 갖지 않기로 했다. 차려진 밥상을 거부하고 새로운 판을 짜기로 한 것이다.

이런 태도가 기성세대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흔히 90년대생은 이기적이고,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홍민지 PD가 보기에 이들은 치열한 입시 경쟁과 취업난으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대를 지나며 ‘생존 본능’이 강해졌을 뿐이었다. 현재 회사에서 팀장이 된 그가 바라본 90년대생 직원들은, 소속감이나 충성심을 강요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줄 때 오히려 좋은 성과를 냈다.

방송계에서 ‘진짜’ 미디어가 아닌 가벼운 콘텐츠 취급을 받던 ‘문명특급’은 지난해 한국방송대상 뉴미디어 작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과는 달리 짧은 시간에 모든 걸 담아야 해서 더욱 치열한 회의를 거쳤고, 제목이나 섬네일(영상의 표지 이미지) 하나까지 단 한 순간도 대충 만들지 않았다 말하는 홍민지 PD. <문명특급>이 아이돌의 전문성을 조명했다면, 그의 책 『꿈은 없고요, 그냥 성공하고 싶습니다』는 90년대생의 ‘이기적’인 태도 속에 숨겨진 전문성을 대변한다.

90년대생이 이기적이지 않다고 항변하는 대신, “좀 이기적으로 일하면 어떤가. 그로 인해 새로운 대안이 나온다면 ‘개이득’”이라는 그의 말에서 ‘이기적인 90년대생’과 기성세대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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