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고소득 전문직’
당신이 모르는 ‘고소득 전문직’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4.24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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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직장이 있다. 의식주를 지원해 주고, 연봉도 높다. 2년에 한 번 진급하는데 그때마다 연봉이 크게 오른다. 후배에게 밥 사 줄 일 없고, 각종 경조사비도 들지 않는다. 회사 안 매점은 면세가 돼 500원이면 맥주 한 캔을 살 수 있다. 입금은 많고 지출은 최소인 꿈의 직장이다.

또 다른 직장은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탈출할 수 없다. 30명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동안 24시간 부대끼며 일하고 생활한다. 일하는 공간의 온도는 40도. 퇴근하면 상사와 바로 옆방을 쓴다. 부모님의 부고를 들어도 당장 달려갈 수 없다.

여러분은 어떤 직장을 선택할 것인가. 사실 두 직장은 같은 곳이다. 스물다섯 살의 여성 선박 기관사 전소현 씨의 일터, 태평양을 오가는 LNG 선박 이야기다.

배에서 일한다고 하면 너른 바다를 마음껏 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육지에서보다 바다를 보는 횟수가 적다. 주로 갑판 아래의 기관실에서 창밖을 내다 볼 여유도 없이 일하기 때문이다.

한때 의사를 꿈꿨던 전소현 씨는 사람이 아닌 선박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다. 배의 심장과도 같은 엔진이 고장 나면 배는 망망대해에 그대로 서 버리고, 최악의 경우 배가 침몰하면 배에 탄 사람들도 위험해진다. 그러니 넓게 보면 기관사도 의사처럼 사람들의 생명을 돌보는 직업이다. 그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40도의 폭염과 무지막지한 소음, 얼굴을 새까맣게 뒤덮는 검댕 먼지 속에서 기계를 관리한다.

한번 배를 타면 몇 개월씩 항해하기 때문에 생기는 웃지 못할 일화가 많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람이 죽어도 바다 위에서 처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배에서 사람이 죽으면 선원들이 일단 수습한 뒤 다음에 도착하는 항구에 시체를 내린다. 그런데 시신용 냉동고가 따로 없어 그 동안은 고기를 넣는 냉동고에 시체를 보관해야 한다. 시체 옆에 보관했던 고기를 꺼내서 요리해 먹는다. 시체가 유기되어선 안 되니, 시체가 든 냉동고 앞에서 당직도 서야 한다.

연애도 쉽지 않다. 싸우고 다투는 것도 연락이 돼야 할 수 있는 일인데, 인터넷이 느린 것은 물론 수시로 끊기기 때문에 일부러 연락을 무시한다는 오해도 많이 받는다. 언제 배에서 내릴 수 있을지 모르니 마냥 기다려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여자가 드문 업종에서 홍일점이라 겪는 고충도 만만치 않다. 특히 한정적인 공간에서 개인 물건을 최대한 간소화해야 하는 상황에 몇 개월 치 생리대는 짐 그 자체다. 생리대를 처리하는 것도 골치다. 매번 겹겹이 밀봉하고 포장해 버려야 한다. 소각 과정에서의 폭발을 방지하기 위해 쓰레기를 일일이 검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선박 기관사의 일상은 육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로 매일매일 파란만장하다. 아무리 고소득이라고 해도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사람들은 종종 전소현 씨에게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곤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소중한 시기를 허비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젊은 나이에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보다는 가고 있는 길이 주는 설렘에 중심을 두는 것”이 청춘의 특권이라면서.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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