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 토끼』 정보라 “현실적인 상황과 반대 방향으로 쓰려고 해요”
『저주 토끼』 정보라 “현실적인 상황과 반대 방향으로 쓰려고 해요”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04.1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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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우)와 안톤 허 번역가
정보라 작가(우)와 안톤 허 번역가

”변비가 생긴 모든 분께 죄송하다는 말씀 드려요“
“화장실 가셔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英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저주 토끼』의 작가 정보라는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 중 이렇게 말했다. 그의 작품을 읽은 독자들이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졌다”고 평한 것에 대해 독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위트였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저주 토끼』를 번역해 전 세계에 알린 번역가 안톤 허도 동석했다.

독자들의 감상평대로 『저주 토끼』는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집이다. 이 소설에는 표제작인 「저주 토끼」 외 10편의 단편들이 수록돼 있는데 그 중 하나인 「머리」는 변기 속에서 머리가 나오는 이야기를 다룬다. 물을 내려서 쫓아내고, 꺼내서 밖에 버려도 머리는 자꾸 등장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머리는 주인공인 여성을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지금까지 그랬듯 “변기에 오물을 버려주시면 그것으로 몸을 이루어서 살겠다”고 말한다. 기절초풍할 일인데도 등장인물들은 덤덤하게 머리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여성이 어딘가에 가둬놓은 머리가 다시 변기로 돌아오자 남편이 “아, 그 통에 들어 있던 거? 변기에 넣어 달라고 해서 내가 넣었는데”라고 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명장면 중 하나다.

「머리」 외의 다른 단편에도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부커재단은 『저주 토끼』에 대해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를 활용해 현대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참혹한 공포와 잔혹함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정 작가는 기자 간담회에서 “인물인 경우에는 그 장면이나 주변 정황을 그대로 쓰면 모욕이나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비현실적으로 쓰려고 한다”며 “현실적인 상황과 반대 방향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고 평소 자신의 지론을 밝혔다.

허 번역가는 정 작가의 문체에 주목했다. 그는 “문체의 문학성이 돋보였다”며 “소설을 봤을 때 글을 잘 쓰시는 분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내가 먼저 이 책을 번역하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고 술회했다. 나아가 “정 작가는 아이러니한 문장을 많이 쓴다. 아름다우면서 무섭고, 고급스러우면서 유머러스하다”며 “이렇게 여러 정서가 같은 문장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 오히려 번역하기에 수월했다”고 덧붙였다.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저주 토끼』의 작품성을 인정받은 정 작가, 그는 차기작으로 ‘해양 수산물 시리즈’를 구상하고 있다.

“포항 남자 만나서 포항으로 시집을 갔는데요. 저만한 문어가 제사상에 올라오는 걸 보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해양 수산물 시리즈를 쓰려고 해요. 상어, 멸치, 김 이런거 쓸 거예요”

한편, 부커상 최종 수상작은 오는 5월 26일 발표될 예정이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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