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은 시민이다.’ (…)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의 자식 혹은 공부만 해야 하는 학생으로서 한정된 삶을 살아온 저는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말이었어요.” 책 『우리는 청소년-시민입니다』를 공동 집필한 한 청소년 활동가의 말이다. 시민이란 ‘국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나라 헌법에 의한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자유민’을 뜻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시민으로서 ‘권리’와 ‘자유’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청소년이 투표에 참여한 첫 대통령 선거였다. 만 18세 유권자는 318,231명에 달했다. 언론사들은 일제히 ‘교복 입은 유권자’들이 투표 현장에 나타난 이색적인 모습을 보도했다. 여야 선거 캠프에서도 학생들을 선대위 출정식에 앞세우고,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하는 등 청소년 유권자의 상징성에 주목하는 행보를 보였다. 선거권 연령이 만 19세에서 18세로 하향 조정된 이후, 청소년의 정치 참여가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있다. 21대 총선의 만 18세 투표율은 67.4%로 유권자 평균보다 높았다.
이렇듯 청소년의 정치 참여가 확대될 수 있었던 건, 안 되는 것 많은 현실에도 꾸준히 광장에서 목소리를 낸 청소년 당사자들 덕분이었다. 십여 년간 이어진 촛불의 역사 속에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크고 작은 성과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동료 시민으로서 청소년을 만나는 경험을 했다. 선거권 연령 조정은 이 경험들이 쌓여 이뤄진 일이었다. 청소년 활동가들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강원 지역 청소년들이 질문지를 작성해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들에게 공약 인터뷰를 진행한 ‘투표하자, 18’, 국회의원 후보들과 청소년 활동가들이 만나 청소년 ‘참정권’, ‘섹슈얼리티’, ‘자립’, ‘스쿨 미투’처럼 국회에서 잘 다루지 않는 의제를 놓고 토론한 ‘안녕, 국회’ 등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동등한 권리를 지닌 정치적 주체로 환대할 준비가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대선의 주요 후보들은 아동·청소년 공약을 비중 있게 다뤘지만 생존, 보호, 발달권에 초점을 맞춘 공약이 대부분이었다. 청소년 참여권 증진을 위한 공약을 낸 후보는 이재명 후보와 심상정 후보뿐이었다. 청소년을 권리의 주체로 보기보다는, 보호의 대상이자 미래의 인적 자원으로만 여기는 시각이 주를 이뤘다. 일부 학교에는 여전히 학생의 정치 활동을 징계 대상으로 규정하는 구시대적 학칙이 남아 있다. 이런 상황이니, ‘청소년’과 ‘정치’ 두 단어는 아직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선거권 확대는 청소년을 시민으로서 존중하기 위한 첫 단추에 불과하다. 청소년의 고민거리를 두고 ‘성인만 되면 달라진다’며 무시하거나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을 예비적 존재로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이다. 법과 제도의 개선도 필요하지만, 청소년의 문제를 곧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 청소년의 정치 참여는 의견이 분분한 문제지만, 청소년-시민의 일상은 정치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청소년의 일상을 우리의 일상과 분리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는 “청소년의 생각과 힘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빠르게 노화할 것”이라며 “청소년의 제안에 얼마나 귀 기울이는지가 공동체의 사회적 건강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