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디자인 정책이 만들어낸 한국의 시각 풍경
근대 디자인 정책이 만들어낸 한국의 시각 풍경
  • 강희원 대학생 기자
  • 승인 2022.03.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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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디자인되었다’라고 하면 미적 측면을 떠올리기 쉽다. 감성적인 상품 패키지나 세련된 인테리어 등이 그것. 디자인은 세상사와 무관한 독립적인 예술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상 속의 디자인 경험은 개인적일지라도 디자인의 생성과 작용은 결코 개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개인의 욕구와 취향을 겨냥해 소비를 촉진하는 ‘사적 영역’의 디자인이 정치라는 공적 영역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술사학자 아놀드 하우저가 ‘예술은 시대와 사회관계 속에서 빚어진 산물’이란 관점을 제시한 바 있듯, 한국 디자인 또한 전후 경제개발에 동원되었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디자인 평론가 최범은 저서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에서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며 한국 디자인의 문제점을 진단했다. 그는 한국 디자인이 지나치게 국가와 산업 중심으로 이루어진 탓에 일상 문화가 외면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때문에 디자인을 ‘뒤집어 본다’라는 그의 말은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 한 것이 아닌, 이미 뒤집힌 문제점을 똑바로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뜻한다.

최범은 한국 디자인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박정희가 고안한 ‘미술 수출’ 정책을 꼽는다. ‘미술 수출’에서 말하는 미술은 회화나 조각 같은 순수미술이 아닌 응용미술, 즉 지금의 디자인을 뜻한다. 이는 디자인이 수출 상품의 고급화를 위해 도구로서 활용된 것으로, 오직 수출을 염두하고 디자인하라는 일종의 교시에 가까웠다. 국가 최고 지도자가 한국 디자인계에 내린 명령이나 마찬가지였던 이 정책은 국가가 디자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떠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1970년의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추진된 농촌지붕개량사업 또한 한국 디자인의 운명을 잘 나타내는 정책이다. 한국 사회의 풍경을 변화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최범은 농촌지붕개량사업을 한국 모던 디자인의 출발로 보았다. 이 사업으로 인해 가장 먼저 낙후의 상징으로 지목된 것은 민가의 상징인 초가지붕이었다. 이들은 모두 슬레이트 지붕으로 교체되며 기존의 건축 양식을 잃었다. 근대화를 위한 불가피한 파괴였지만, 전통이 전면적으로 소멸되었다는 사실은 자명했다.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지난 수십 년 간 한국이 도시화되는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뒤덮인 간판이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이에 정부가 해결책으로 제시한 정책이 간판개선사업이었으나, 그 결과는 새마을 운동의 그것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불과했다. 개선 이후 지역의 개성이 부각되기는커녕 천편일률적으로 대체된 간판으로 인해 지역 특성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한국 근대의 풍경을 형성했고, 현재 우리 삶의 시각 형식을 이루는 바탕이 되었다.

이 같은 권위주의적 디자인 정책들은 창의적이어야 할 디자인 분야를 관료주의란 형태로 굳어지게 했다. 가령 오늘날에도 각종 공모 사업에 등장하는 한국의 미, 태극, 오방색 같은 키워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멋을 표현하라는 공모 조건이 이미 특정한 형태를 전제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어떠한 사유도 배제된 채 오로지 정책이 원하는 정답 찾기만이 강요될 뿐이다. 국가 주도로 시행된 ‘위로부터의’ 정책, 그것이 바로 한국에서 디자인이 사회와 맺는 관계였던 것이다.

물론 디자인을 소비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취향이나 상품 포장술 또는 국가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근대적 시각 형식이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고유의 역사를 형성하지 못한 채 정책에 휘둘리고 마는 현실에서 예술사적 가치를 지닌 시각 형식이 탄생할 리 만무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시대의 시각 형식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결국 한 사회 구성원들의 실천과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독서신문 강희원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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