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시인 이상도 매료됐던 ‘커피 한잔’
천재 시인 이상도 매료됐던 ‘커피 한잔’
  • 강희원 대학생 기자
  • 승인 2022.03.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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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커피를 사랑한다. 그것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커피 소비량은 성인 1인당 연 353잔, 세계 평균 소비량(132잔)의 약 2.7배에 달한다. 오늘날 커피는 단순 기호식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커피가 일종의 문화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커피는 종종 노래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10CM의 ‘아메리카노’가 대표적이다. ‘메뉴판이 복잡해서 못 고를 때’ ‘설탕은 빼고 달라’는 등 위트 있는 가사가 어쿠스틱 멜로디 위에서 흥겹게 통통 튄다. 그런가 하면 폴킴의 ‘커피 한 잔 할래요’는 좋아하는 상대에게 용기 내어 수줍게 말을 건네는 상황을 그려냈다. ‘커피 한 잔에 빌린 그대를 향한 나의 맘/ 보고 싶었단 말 하고 싶었죠’. 감미로운 음색과 설렘 가득한 가사가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귓가를 스친다.

커피가 노랫말에 등장한 것은 최근 일이 아니다. 그 역사는 생각보다 뿌리가 깊다. 카페가 다방으로 불렸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1980년 발매된 펄 시스터즈 노래 ‘커피 한잔’이 있다.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그대 올 때를 기다려 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한 번만 들어도 음을 흥얼거리게 하는 묘한 중독성을 가진 이 노래에는 그 시대 연애의 풍속이 담겨 있다.

문학비평가이자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로 있는 권영민은 그의 에세이 『커피 한잔』에서 이 노래에 대해 “대학 시절 흔히 들었던 노래이자 월남 파병을 앞둔 형과 헤어지던 날 다방에서 흘러나왔던 노래”라고 말했다. 커피는 노래에 녹아들었고, 노래는 기억에 자리 잡아 책이란 형태로 재탄생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은 커피를 주제로 한 에세이인데, ‘문학 작품 속에 나오는 커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권영민은 시인 이상의 문학을 연구했다. 그 이력이 엿보이는 부분은 책 중 ‘다방 제비’에 대한 내용이다. 1933년 6월, 이상은 종로 2가 네거리 반도광무소 건물 아래층을 세내어 직접 실내장식을 꾸미고 ‘제비’라는 이름의 다방을 운영했다. 그는 왜 다방을 운영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삶을 간략하게나마 다룰 필요가 있다.

1910년에 태어난 이상은 그림에 재주가 있어 소학교 시절부터 화가를 꿈꿨다. 관립 경성고등공업학교(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신)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이듬해 1월 조선건축회지 표지 도안 현상 모집에 당선되며 미술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끝내 그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다. 스물두 살이 되던 해, 조선총독부 공사현장 감독으로 일하던 중 그는 돌연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병명은 폐결핵. 이상은 그길로 건축기사를 사직하고 황해도 배천온천으로 요양을 떠났다. 그곳에서 만난 여인이 기생 ‘금홍’이었다.

요양에서 돌아온 이상은 금홍을 서울로 불러들이기 위해 다방 제비를 개업하고, 그녀와 동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업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금홍과의 불화로 다방 운영이 점차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다방 제비는 2년도 넘기지 못한 채 문을 닫았고, 이상은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다. 금홍과도 결국 결별한다.

다방 제비가 이상에게 시련을 안겨준 공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 이곳은 그의 새로운 문학적 산실이 되기도 했다. 1930년대 중반 경성의 문학인들에게 다방 제비는 교류의 장이자 하나의 작은 ‘살롱’이었다. 이곳에서 이상은 당대 소설가 박태원과 만났고,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등과 접촉할 수 있었다. 그의 유명한 연작시 <오감도>는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탄생했다. 그를 역경에 처하게 했던 다방 제비가, 아이러니하게도 한 시대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게 한 결정적 공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카페는, 커피를 매개로 사람들을 이어주는 공간이다. 이는 오늘날까지 지속되어온 카페의 본질적 기능이다. 당신도 한 번쯤 접해보았을 커피. 그렇다면 커피에 대한 당신의 기억은 무엇인가. 책이 저자가 실제 방문한 카페 경험담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어쩌면 독자에게 이 같은 질문을 남기기 위한 의도적 배치였을지도 모른다. 에세이를 읽는 독자의 내면에 자연히 본인만의 기억이 맺힐 수 있도록.

책 마지막 장에서 다뤄진 로마의 카페 그레코, 도쿄 긴자의 카페 파울리스타는 각각 현지에서 오래된 역사를 가진 명소로 유명하다. 해외 유명 카페에도 관심이 있는 커피 마니아라면 흥미를 가질 내용이다. 물론 국내 카페도 소개됐다. 서울대 문리과대학이 관악으로 이전하기 전, 저자의 대학 시절 이야기다. 대학로(혜화) 학림다방에서 있었던 추억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혼자 쭈그리고 앉아 두어 시간 책장을 넘기고 있어도 괜찮았고, 모처럼 만난 고향 친구를 데리고 당당하게 들어설 수 있었던 곳도 학림이었다.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고 여관방에 함께 몰려 들어가 눈을 붙인 후 이른 아침에 가방을 챙겨들고 거리로 나와 가장 먼저 들렸던 곳도 학림이었다. 달걀 노른자를 커피에 넣어 주는 학림의 모닝커피로 쓰린 속을 달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22년에 보는 학림의 풍경은 어떨까. 찬바람이 매섭던 2월 어느 날, 학림에 가보았다. 내부는 생각보다 아담했다. 반질반질한 나무 바닥에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손님들의 대화소리와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쇼팽 에튀드가 한데 뒤섞여 공간을 가득 채웠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아닌 드립(drip, 커피 가루에 끓인 물을 붓고 필터로 거른 커피)으로 손수 내려주는 점이 독특했다. 깔끔하고 균형 잡힌, 고소한 맛의 커피였다.

커피를 홀짝이며 창밖을 바라보니 마로니에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파란 하늘과 적갈색 벽돌이 경계를 맞대고 있는 이곳에서는 형체의 윤곽이 유독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관악으로 이사 가기 전 문리대 모습을, 옆구리에 책을 끼고 검정 작업복 차림으로 서성대던 작가의 대학생 시절을 잠시 상상했다.

[독서신문 강희원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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