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서울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 『대도시의 사랑법』
보통의 서울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 『대도시의 사랑법』
  • 장다연 대학생 기자
  • 승인 2022.03.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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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율이 높아지고, 실직자가 많아지는 뉴욕이라는 도시를 자유로운 뉴욕으로 만들어준 밀튼 글레이저의 로고 <아이 러브 뉴욕 (I♥NY)>. 이 로고처럼 서울이라는 커다란 도시 속 특별히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한 한국의 로맨스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속 공간을 거닐어봤다.

기사를 쓰기 위해 다녀온 이태원역 근처는 반짝였다. 주말 오후 늦게 도착한 해밀턴 호텔 근처 클럽에선 호객행위도 이어졌다. 자유분방한 이태원역 바로 앞에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의 우렁찬 찬송가도 들렸다.

“술을 사주기만 하면 해달라는 건 다 해주는 술버릇이 있던 그 시절의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연령 미상의 남자와 이태원 해밀턴 호텔의 주차장에서 키스를 하고 있었다… 단지 내가 그 어두운 도시의 거리에 누군가와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고, 때문에 알 수 없는 누군가와 온 힘을 다 해 혀를 섞었다.” - 『대도시의 사랑법』 中

이태원에 대한 인식을 바꿔준 퀴어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속 주요 도시는 서울이다. 특히 4개의 단편 중 표제작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나’와 ‘규호’는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만나게 된다. 그들의 연애는 남들 다 하는 희로애락이 함께 묻어진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나’의 에이즈(소설에서 에이즈는 ‘카일리’라는 단어로 명명된다)로 인해 나와 규호는 성관계를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건 나야. 또 다른 나. 앞으로도 나일 거고 죽을 때까지 나일 테니까. 그리고 오직 나만의 것이어야 하고. 나랑 만나고 싶으면 말이야. 그걸 알아둬야 해. 내가 나이며, 동시에 카일리라는 사실을 말이야.” - 『대도시의 사랑법』 中

그런 ‘나’의 곁을 지켜주는 규호에게 다른 남자를 만나라고는 하지만 진짜로 만날까봐 늘 불안해하는 나의 모습은 사랑에 빠진 여느 연인들의 모습 그대로다.

“언젠가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둘이 함께 누워 있던 밤에, 규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카일 리가 있음에도 그 때 왜 선뜻 나와 사귀기로 했냐고,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 - 『대도시의 사랑법』 中

본능을 절제한다는 건 말로는 쉬워 보여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감사할 수밖에 없다. 당연하지 않다는 걸 사랑을 해본 이들이라면 다 아는 자명한 사실이니까.

그들에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돈’이었다. 이태원 클럽 바텐더로 일하는 제주 출신 규호와, 안정적인 직장인이지만 몸이 아픈 어머니를 간병하는 ‘나’에게는 당연한 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울에 상경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에 나의 보금자리를 가지기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위로해줄 수 있는 곳이 눈치 안 보고 머물 수 있는 공간뿐이기 때문이다.

거리를 걷다가 문득 이태원 근처 집의 시세가 궁금해졌다. 부동산 중개 앱을 켰다. 녹사평역과 이태원역 사이에 있는 걸어서 역까지 20분이 넘는 반지하 원룸을 얻기 위해서도 500만원이라는 돈이 필요하고, 매월 40만원이라는 고정지출이 있게 된다. 원룸을 전세로 살고 싶더라도 1억 2000만원이 필요했다. 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돈으로 사람의 진심을 살 수는 없지만, 사람의 관계는 돈에 의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건 이들에겐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신나는 노래를, 굳이 카일리 미노그나 티아라 같은 노래를 듣고 싶은데 하필 핸드폰 배터리가 다 떨어져버렸네. 이럴 때면 규호가 보조 배터리를 내밀곤 했었는데, 그것뿐인가. 아침마다 약과 물을 챙겨주고, 입술이 갈라지면 립밤을 건네주고, 내 방에 암막 커튼도 달아주고, 간지러운 등도 긁어주고, 나보다 먼저 욕실에 들어가 공기를 데워놓는 그런 사람은 너밖에 없었고, 그러니까 사실 나, 네가 엄청 필요해 규호야” - 『대도시의 사랑법』 中

화려한 대도시에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두 연인이 갈라지면서, 이제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도시의 공허함을 온전히 느끼게 된 그들은 여느 연인들처럼 그렇게 헤어졌다.

나는 풍등에 쓸 문장을 여러 번 고쳐 썼다. 다이어트, 주택청약 당첨, 포르셰 카이엔, 첫 책 대박 나게 해주세요. 뭔가 다 내 진짜 소원이 아닌 것 같아 빗금을 쳐서 지워버렸다. 아마도 그러는 사이에 구멍이 나버린 것이겠지. 나는 결국 풍등에 두 글자만을 남겼다. 규호 그게 내 소원이었다. - 『대도시의 사랑법』 中

도시란 참으로 얄궂다. 한사람으로 인해 도시의 불빛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소란스러워 보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것이 사랑이 가진 가장 큰 힘인가 보다.

[독서신문 장다연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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