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연금술사 림태주 시인 “편견으로부터 벗어난 따뜻한 사람에게 밑줄 긋고 싶다”
언어의 연금술사 림태주 시인 “편견으로부터 벗어난 따뜻한 사람에게 밑줄 긋고 싶다”
  • 김예린 대학생 기자
  • 승인 2022.01.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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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태주 시인 [사진=림태주 제공]

“너였다. 지금껏 내가 만난 최고의 문장은. 나는 오늘도 너라는 낱말에 밑줄을 긋는다. 너라는 말에는 다정이 있어서, 진심이 있어서, 쉬어갈 자리가 있어서, 차별이 없어서,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 나는 너를 수집했고 너에게 온전히 물들었다.” (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의 ‘프롤로그’ 中)

『관계의 물리학』으로 사람 간의 관계를 물리학 원리로 풀어낸 림태주 작가가 이번에 언어를 화학의 은유로 풀어냈다. 신간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는 언어로 이루어진 관계에 대한 에세이다.

림태주 작가는 출판사 ‘행성 B’ 대표로 책 홍보를 위해 페이스북을 활용하다 점차 본인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는 3년 동안 올린 에세이를 추려 첫 번째 책 『이 미친 그리움』을 펴냈다. 지금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사랑과 이별을 정리한 『그토록 붉은 사랑』, 『이 미친 그리움』을 복간한 『그리움의 문장들』이 있다. 지난 11월 그의 작업실 근처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신간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는 어떻게 나온 책인가

“이번 신간은 『관계의 물리학』을 내고 3년 동안 준비한 책이다. 말에 관한 수많은 책이 있지만 이걸 화학으로 풀어낸 사람은 없었다. 인간의 말도 결국 결합하고 빛을 내는 화학 반응이기에 말과 화학을 엮으면 재밌을 것 같았다.”

Q. 제목을 어떻게 짓게 되었나.

“원고를 쓸 때 제목은 ‘언어의 화학’이었고 출판사에서 제시한 제목은 ‘사이의 언어’였다. 사이는 관계하고 관련이 있는데 그러면 『관계의 물리학』의 아류작 느낌이 나서 내가 다시 제목을 정했다. 처음에는 ‘당신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였는데 출판사와 상의 후 ‘당신’을 ‘너’로 바꿨다. 『관계의 물리학』을 냈을 때에는 사람들이 물리학 책인 줄 알고, 제목이 어렵다고 안 읽은 사람이 꽤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제목이 어렵다는 말은 안 듣는다. (웃음)”

Q. 책에 화학(이번 신간에 나오는 ‘발열반응’)과 물리(『관계의 물리학』에 등장하는 양자물리학이나 열역학 제2법칙, 원소 프랑슘 개념 등) 내용이 나오는데 평소 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은가?

“평소에 과학책을 자주 본다. 출판사업을 해서 여러 책을 접할 기회가 많은데 그 중 과학에 관심이 많다.”

Q. 어떻게 과학을 ‘관계’와 ‘말’로 연관 짓게 되었나.

“기존 책들과는 다르게 쓰고 싶어 관계를 물리학적으로 풀어보기로 했다. 관계라는 게 답이 없다고 얘기하지만 정말 답이 없는 걸까? 흔히 인간을 작은 우주라고 하는데 우주에 법칙이 있듯 인간에게도 어떠한 법칙이란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령 태양과 지구가 가장 적당한 거리에 있기 때문에 지구가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잊고 살지만 적당한 거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무작정 가까워진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다. 마음은 가까워도 물리적 거리는 필요하다. 존중의 거리. 그래서 프랑슘 같은 걸로 이야기 하고 철학 이야기를 풀기도 한다. 관계를 물리로 풀어낸 것처럼 이번 책의 경우에는 말을 화학으로 풀어냈다.”

Q. 지금껏 만난 최고의 문장은 무엇인가. 특별히 밑줄 치고 싶은 문장이 있는가.

“그런 문장은 없다. 나는 사람한테 밑줄을 긋고 싶다. 문장은 사람한테 나오는 거니까. 문장이 지류(支流)라면 사람은 본류(本流)다. 밑줄 긋는 대상은 사람이지 문장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편견으로 부터 벗어난 따뜻한 사람이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우리가 귀담아 들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의견도 받아들일 수 있다.”

Q. 어떤 문장(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어떤 사람으로 평가 받고 싶다’라는 생각을 예전에 버렸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로 본다. 어떤 사람은 나를 노란색으로 보고 어떤 사람은 파란색으로 본다. 그 색깔들을 다 모아서 내가 되는 거다. 사람은 되게 모호하고 복잡다단하다. 나는 그걸 그대로 인정해주는 게 좋다. 뭔가 하나로 단순화시키려고 하고 규정하려고 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다 관계에서 오는 것일 텐데 그건 그 사람의 해석이고 그 사람의 관점이라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규정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그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거다. 그런 면에서 나는 좀 자유롭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어떻게 불리고 싶고 그런 거는 별로 나하고 안 맞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지향하고도 맞지 않다.”

Q. 신간 책 1부에서 ‘진심을 알아보는 법’, ‘믿는다는 말에 대하여’를 보면 작가님은 자신만의 언어로 ‘진심’과 ‘믿음’을 재정립한다. 어떤 과정을 통해야 자신만의 언어를 제련할 수 있나.

“세상이 보는 대로 보지 말고 당신이 새롭게 보고, 정의하고, 당신만의 시각으로 파헤쳐 봐야한다. 그렇게 해야만 내 세계가 되는 거지 그게 없으면 남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쳇바퀴 돌듯이 돌다가 끝나게 된다. 그러면 그건 내 인생이 아니라 모두의 인생을 대리해서 사는 거다. 그것을 생각해 보는 게 글쓰기다.

사람들은 ‘글쓰기’ 하면 어휘를 보강하려 하고 어휘력이 딸려서 못쓴다고 많이들 그런다. 어휘력 때문에 글을 못 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시선이 새롭지 않아서 글을 못 쓰는 거다. 무엇을 바라보고 생각을 하고 쓰느냐의 차이다.“

Q. 구체적으로 방법을 알려줄 수 있나.

“초고는 일상의 언어로 편하게 쓰는데 이때 30퍼센트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사용한다. 나머지 70퍼센트는 글을 퇴고하는데 쓴다. 글을 고쳐서 좋게 만드는 거다. 나는 이걸 ‘편집’이라고 한다. 편집은 독자의 관점에서 한다. 편집은 독자가 내 글을 어떻게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이다. 내가 보기 좋게 ‘플레이팅’ 할 수 있어야 한다. 재료는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어떻게 내놓을지를 내가 결정하는 거다. 어떤 글은 샐러드로 내놓고 어떤 글을 볶아서 내놓고. 글을 읽는 독자들이 지루해지지 않도록 계속 편집한다. 또한 독자들이 내가 쓴 문장에서 시적인 것을 느끼는데 여기에는 압축과 비약이 있기 때문이다. 설명을 차근차근 하지 않고 가운데에 행간들을 띄엄띄엄하게 둔다.”

Q. 행간을 어떻게 두나.

“은유적인 표현을 많이 쓴다. 은유의 문장은 정답의 문장이 아니다. 사람마다 각자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르게 정의내릴 수도 있다. 그래서 묘사보다는 ‘정의형 문장’을 구사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Q. 정의형 문장?

“신간은 말에 관해서 수없이 많은 정의를 내리는 책이다. 그 ‘정의형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작가가 된다고 생각한다. ‘정의형 문장’을 내릴 수 있어야만 자기 말을 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자신만의 시각으로 새롭게 정의하는 자기만의 표현이다.”

Q. 편집 후 최종 과정이 있나.

“마지막에는 내가 쓴 글을 소리 내어 읽는다. 눈으로 볼 때와는 다른 게 있다. 어떤 문장의 흐름이라든지 단어의 세기, 억양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낭독을 해도 문제가 없도록 부드럽게 바꿔준다. 문장이 잘 흘러가면 눈으로 봐도 리듬감이 있다. 단순하게 내용만 있는 게 아니라 화음도 넣고 전조도 하며 문장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Q. 많은 이들이 첫 문장 쓰는 걸 어려워한다.

“그러면 두 번째 문장부터 써라. 다 쓴 다음에 어떤 문장을 첫 문장으로 올릴지 편집하는 거다. 보통 한 줄 쓰고 고치려하고 편집할 생각을 안 한다. 그래서 글이 늘지 않는다. 내용을 그릇 안에 다 담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사과를 어떻게 깎아 담을 지는 나중의 문제고 일단은 사과를 사와야 한다. 우선은 갖고 있는 내용을 토해내는 게 중요하다.”

Q. 글을 쓸 때, 혹은 삶에서 무언가를 오래하다 보면 관성적으로 하기도 하는데 초심으로 돌아가는 작가 본인만의 방법이 있는가.

“관성이란 게 과연 나쁜 것인가? 아무 생각 없이 계속 반복하려는 태도는 인간이 에너지를 덜 쓰고 싶어서 그렇다. 습관은 무섭기도 하고 중요하며 괴롭기도 하다. 그런데 그 습관이 없으면 인간은 너무 힘들다. 그래서 새로운 습관을 만들려는 거다. 습관, 관성이라는 것들이 들어있는 말이 반복인데 반복이라는 게 굉장히 소중한 거다. 반복으로 그 사람의 특징이 생기고 업적이 생긴다.”

“또한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인간은 한 번 왔으면 이미 차이가 발생해버려서 돌아갈 수도 유지할 수도 없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거지 처음으로 돌아갈 순 없다. 이렇게 언어가 가지고 있는 모호함이 있고 딱 떼놓고 보면 성립되지 않는 모순적인 말이 많다.”

Q. 작가가 정의내리는 ‘글을 쓰는 삶’이란 무엇인가.

“나에게는 작가로서의 삶이 없다. 많은 이들이 작가의 삶과 인간 림태주의 삶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작가로서의 삶이 림태주의 삶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건 오해다. 작가는 글을 쓸 때만 작가다. 작가로서 사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생활하는 거다. 생활 속에서 작가가 들어있을 때도 있고 밖에 나가있을 때도 있다. 생활인으로서 태도가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 좋은 글을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생활을 하는 것. 생활인의 삶을 잘 사는 것. 그게 좋은 작가의 삶이 되는 거고 작가의 삶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Q. 지금껏 그리움, 관계, 말에 대한 글이었는데 다음 책의 화두는 무엇인가.

“‘글쓰기’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글쓰기 학교를 열어 글쓰기 수업을 몇 년 했었는데 수업 내용을 정리해서 책으로 내려고 하고 있다. 요새 워낙 글쓰기 책이 많이 나와 있어서 ‘내가 쓰는 글쓰기 책은 어떻게 다를 수 있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요즘에 옛날 집에서 살고 싶어서 강화도에 허름한 한옥을 하나 샀다. 한옥을 수리하면서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세계를 맛보고 있다. 건축의 언어로 된 세계다. 그 사람들만의 전문용어가 있는데 그게 너무 재밌다. 그 사람들에게는 자기 세계의 말이지만 그 세계 밖에서 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용어로 깨닫는 게 많다. 왜 그 언어가 생겨났을까. 그 언어의 어원은 뭘까. 나는 작가이기도 하니까 그런 것들을 자꾸 캐묻고 따지고 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엿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있는데 앞으로 ‘집’에 관한 책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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