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와 삶을 만나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와 삶을 만나다
  • 전찬일 영화평론가
  • 승인 2022.01.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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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레오네 감독 [사진출처=IMDB]

지난 1985년 1월 1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란 ‘멋진’(Cool) 제목의 영화가 국내 개봉됐다. 1960년대 일찍이 현존 최대 거장 중 한 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스타덤에 등극시킨 세 편의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의 감독으로서 존재감을 굳건히 확립시킨, 이탈리아 태생의 세르지오 레오네(1929〜1989)의 유작이자 126년 세계 영화사의 문제적 걸작이었다.

로버트 드 니로를 비롯해 제임스 우즈, 조 페시 그리고 엘리자베스 맥거번이 연기한 데보라의 아역으로 치명적 매혹을 맘껏 발산한 제니퍼 코넬리 등 출연진의 연기가 꽤 인상적이었고, 한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OST로 손꼽곤 했던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도 압권이었다. 워낙 기대감이 커서였을까, 평균적으로는 짧지 않았던 130여 분의 영화는 그러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감독의 명성을 감안할 때,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실망스럽기조차 했다. 어딘지 허전‧엉성했다.

그 이유는 30여 년의 세월이 지나 밝혀진다. 2015년 4월 251분의 감독 확장판이 선보인 후, 영화는 시쳇말로 불세출의 기념비적 걸작으로 비상한다. 2020년 월간 문화전문지 《쿨투라》 12월호에 발표했던 ‘<달세계 여행>(1902)에서 <기생충>(2019)까지… 세계영화 100선’에서 진단했듯 내러티브, 시‧청각 등 영화의 전 층위에서 최상의 수준을 자랑한다. 몰입감이 대거 강화돼, 4시간이 넘는 긴 시간이 순식간에 흐른다. 빈말이 아니라, 축약 버전보다 훨씬 더 짧은 듯한, 기이한 영화체험을 안겨준다. 그 얼마나 드라마틱한 반전인가.

이 세계적 명장의 영화 세계는 말할 것 없고 심상치 않은 그 인생사 및 가치관 등을 깊이 있으면서도 폭넓게 짚은 역저가 지난해 12월 출간됐다. 『미국을 까발린 영화감독 세르조 레오네』(틈새의시간)<흔히 ‘세르지오’로 표기되나 발음상으로는 ‘세르조’가 더 정확하다.> 저자는 박홍규 전 영남대학교 교수다. 출판사의 소개를 가져와보자.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며 인문·예술의 부활을 꿈꾸는 르네상스맨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아내와 함께 작은 농사를 짓는다.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자 늘 노력한다.”

빈말이 아니다. 그는 단언컨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르네상스맨’으로 손색없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 『비주류의 이의신청』, 『저항하는 지성, 고야』, 『내 친구 톨스토이』, 『불편한 인권』, 『인문학의 거짓말』, 『놈 촘스키』, 『오노레 도미에』,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공저), 『수정의 야인 조지 오웰』, 『카프카, 권력과 싸우다』, 『에드워드 사이드』, 『메트로폴리탄 게릴라 루이스 멈퍼드』 외 다수의 책을 집필했으며, 『오리엔탈리즘』, 『간디 자서전』 『예술은 무엇인가』,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놀랍지 않은가? 그 관심사의 넓음이? 작년에 환갑을 맞은 필자는, 한 사람이 이렇게 광범위한 제재‧주제의 저서들을 지속적으로 세상에 내놓은 경우를 목격은커녕, 알지조차 못한다. 더 경이로운 것은 그 넓이에 곁들인 깊이다. 넓으면 으레 깊이감이 결여되기 십상이거늘, 그는 그 점에서도 읽는 이를 압도한다. 그런 책 중 하나가 『헤세, 반항을 노래하다 | 박홍규의 호모 크리티쿠스 4』(푸른들녘)다. 그 저서는 『데미안』,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 중학교 2년 때 탐독했던 일련의 대표작들을 통해 필자의 인생을 뒤흔들었고, 그래서는 아니지만 훗날 독어독문학을 전공할 필자를 한없이 부끄럽게 하기 모자람이 없었다.

다른 미래를 꿈꾸는 영화감독 켄 로치에게 친절히 안내하는 『비주류의 이의신청』(틈새의시간)도 그랬다. 50년 이상 영화를 봐왔고, 근 40년간 영화 스터디를 해왔으며, 30년 가까이 비평가로 살아온 필자에게 세계영화역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딱 한 명의 감독이 다름 아닌 켄 로치건만 말이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그런 수준의 명저를 쓸 능력도, 자신도 없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다. “‘황야의 무법자’라는 캐릭터를 만든 세르조 레오네를 사랑하며 쓰는 그의 평전이자 레오네에 대한 나의 러브스토리”(9쪽).

아울러 “이 책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70 평생 본 영화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다. 매주 영화를 한 편씩 보았다면 철든 이후 약 3천 편을 본 셈이다. 3년 전 퇴직 이후에는 하루 한 편 이상을 본다. 이렇게 보다가 죽었으면 싶다. 남들이 잘 보지 않는 예술영화(또는 작가영화)를 주로 보는데, 가끔은 대중영화도 본다. 그중 하나가 레오네 영화인데 나에게 그의 영화는 대중적인 액션물이 아니라 작가영화다.”(28쪽) 그는 덧붙인다. 이 책이 “전문서가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레오네 안내서”라고. 그 때문에 “영화도 줄거리부터 소개했다”고.

상기 진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는 “특히 아나키스트라는 측면을 염두에 두고 쓴 책”임을 강변한 바, 그 사실을 아는 영화 전문가가 이 땅에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황야의 무법자>(1964)로 유명세를 타기 전에 데뷔작으로 <로도스의 거상>(Il colosso di Rodi/ The Colossus of Rhodes, 1961)<네이버 등 포털은 물론 공신력에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는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마저도 <오드의 투기장>으로 나와 있는데 오역이다>을 연출했고 <쿼바디스>(1951), <벤허>(1959), <폼페이 최후의 날>(1960) 등 유명 역사영화들의 조감독이었으며,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작 중 대표작인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도둑>(1948)에 단역으로 출연까지 했었다는 사실들도 그렇고…

레오네가 정식으로 감독한 영화 편 수는 총 7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 중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각본에 함께 했고, 찰스 브론슨 헨리 폰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주연을 맡은 <옛날옛적 서부>(1968)는 “오페라틱한 서부극의 매력이 최대로 발휘된” 수작이다.

세르조 레오네 그는, “1960년대 후반에 전 세계로 확산된 정치적 사회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특히 관련되었던 주제인 폭력의 정당성에 도전”하며 “1968년 전후에 유럽과 서부극을 폭풍으로 몰아넣은 문화적, 정치적 봉기의 바로 그 모델인 독립적인 운동가의 마지막 인물이다”(300쪽) “거친 역사의식과 장대한 시각적 스타일, 영웅보다는 인간을 그리고자 했던 그의 노력들은 할리우드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진입한 한 이탈리아 감독의 냉정한 미국사의 해부이기도”(영화감독사전) 했다. 그 다채로우면서도 의미심장했던 레오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겠는가?

글 : 전찬일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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