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털어놓는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
판사가 털어놓는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
  • 고지우 대학생 기자
  • 승인 2022.01.0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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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질서를 어지럽힌 범죄자들이 마땅한 형을 선고받지 않았을 때 시민과 언론은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판사를 비판한다. 정말 판사들은 범죄자에게 관대한 사람들일까? 만약 처벌이 무거워진다면 범죄 발생 건수와 범죄 노출의 위험이 줄어들까?

언제부턴가 재판에 대한 시민의 불만과 불신의 목소리는 커졌고, 재판 결과에 만족하는 사람보다 판사의 엉터리 재판으로 패소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30년 넘게 재판해온 판사 박형남은 책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통해 판사에게는 당연하지만, 시민에게는 낯선 법의 진심을 전한다.

1장 「다른 사람의 잘못을 판단하는 것」에서는 형벌을 섬세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 검사, 구속, 유무죄, 양형, 소년보호사건을 살펴본다. 형벌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위해서는 우선 시민들이 형사재판이 ‘삼가고 삼가는 일의 근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소한 몸싸움이나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서 시비가 벌어진 후 폭행 또는 명예훼손과 모욕으로 고소해 공권력을 감정 해소와 복수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정당한 고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빌린 돈을 갚지 않았다고 무조건 사기죄가 되는 것도 아니다. 범죄가 성립하려면 가해자의 행위가 형법이 규정하는 구성요건에 들어맞아야 한다. 형벌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최후의 보충 수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2장 「이익과 손해를 따져서 권리를 선언한다는 것」에서는 민법이 사람을 합리적·이기적 인간으로 본다는 전제 아래 경청, 법리와 판례, 전문 재판, 개인 파산 사건을 다룬다. 민법은 개인의 자유를 떠받치기 위해 존재하고,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에 이념적 기초를 둔다. 이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일을 자신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처리함으로써 행복하고 소중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보력과 협상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갑을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여기서 원칙과 현실을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대한 판사들의 생각이 다 같지만은 않다. 민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권리능력을 주고, 누구나 합리적으로 거래한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시민은 자기 이익을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 한다.

3장 「법의 이성과 사람의 감정을 헤아린다는 것」에서는 법과 사법의 기본 원리를 정의와 공감, 법 절차, 법적 안정성, 법치주의, 법과 정치로 나눠 성찰한다. 엄숙함이 요구되는 법정에도 눈물과 한숨은 있다. 미국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은 좋은 법률가는 법적 지식과 논증뿐만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학적 재판관은 사람마다 처한 상황의 비대칭성을 섬세하게 느끼면서 친밀하면서도 공평하고, 편견 없이 사랑하며 정의롭게 판단할 수 있다. 판사들은 스스로와 법정에서 만날 사람들을 위해 때론 이성보다 앞선 감성을 갖춰야한다.

4장 「세상 물정에 어두운 판사가 세상사를 판단한다는 것」에서는 시민과의 소통과 신뢰, 판사의 독립과 양심을 검토하고 판사가 그린 자화상을 소개한다. 판사가 당사자를 의사소통의 상대방이라고 생각하며 말을 들어주고 공감할 때 법정은 진정한 의미에서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다. 동네 사람과 공감하고 소통하지 않은 채 개념과 법리만 말하는 이는 ‘법률 기술자’일 뿐이다.

재판관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정의감에 따라 결론이 달라져 법적 안정성이 흔들리기 때문에 판사는 개념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분쟁을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개념은 법에서 공통적인 것을 모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법이 작동하는 현실 세계가 변하면 그에 맞춰 의미가 바뀌거나 새롭게 부여돼야 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식능력의 한계에 비추어볼 때 절대적 진실의 발견은 불가능하다. 판사도 예외가 아니다. 법조계에서 흔히 하는 말대로,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사건 당사자가 제일 많이 알고, 그다음은 변호사이며, 가장 사건을 잘 모르는 판사가 결론을 내린다.”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 중에서)

[독서신문 고지우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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