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로부터 얻는 지혜
두부로부터 얻는 지혜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1.12.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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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란 말이 있다. 그럼에도 건강만큼은 제대로 지키지 못한 셈이다. 부모님이 물려준 존귀한 인체 부위 몇 개를 잃은 게 그것이다. 수년 전 담낭 및 간 일부 제거 수술을 했다. 또 있다. 최근 아래 어금니 4개를 발치했다. 이젠 치아까지 4개를 상실하자 갑자기 노화로 치닫는다는 생각에 서글펐다. 왠지 모를 열패감마저 들었다면 지나칠까.

아래 어금니 4개를 발치하자 무엇보다 김치며 단단한 음식물을 먹을 수 없어서 매우 불편하다. 말 그대로 물렁한 음식만 찾아 먹다보니 마치 노인이 다 된 기분이다. 치아를 손실한 친정 어머니의 고통을 이제야 알 법 하다. 의치로 인하여 주저앉은 잇몸과 치아의 부실로 겪는 그 고충이 오죽하였으랴. 새삼 어머니의 건강을 세심히 챙겨드려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요즘 두부를 즐겨먹노라니 어린 날 어머니께서 두부 만드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기억이 새롭다. 불은 콩을 맷돌에 갈아 삼베로 콩물을 걸러서 가마솥에 붓고 간수를 넣어 큰 나무 주걱으로 콩물을 젓는다. 이 때 장작불로 화기 조절을 한다. 이렇듯 어머니의 두부 만드는 모습은 어린 눈에도 매우 번거로워 보였다. 그럼에도 어머닌 명절만 돌아오면 두부 만들기를 잊지 않았다. 

다 알다시피 두부는 기원전 2세기경, 한(漢) 나라의 회남왕(淮南王)이 학자들을 시켜 편찬한 『회남왕 만필술(淮南王 萬畢術)』이라는 책자에 이것 만드는 법을 최초로 밝히고 있다. 이런 두부가 고려 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주로 절에서 즐겨먹던 사찰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요즘도 우리 국민들이 가장 즐겨먹는 식품 중 하나가 두부다. 두부는 콩나물과 더불어 서민들의 밥상에 자주 오르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두부도 세계화 추세라면 지나칠까? 미국에 두부 공장이 수 백 개에 이른다니 김치에 이어 두부도 세계화 대열에 참여한 한류 식품으로 자리 잡은 게 사실이다. 어느 문헌에 의하면 십 수 년 전엔 두부에 관한 학술 세미나가 미국 일리노이 대학 등에서 개최된 적이 있을 정도란다. 

어머닌 도회지로 이사 한 후 더 이상 두부를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두부는 여전히 우리 집 밥상 위에 자주 오르곤 했다. 어머니는 두부로 전을 부쳐 두부장아찌를 요리해주는 것은 물론, 두부를 듬성듬성 썰어 넣고 끓인 된장찌개 맛은 일품이어서 요즘도 도저히 어머니 손맛을 흉내 낼 수 없다. 이 때 어머니 심부름으로 동네 구멍가게에서 곧잘 사오던 게 두부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어느 겨울날 어머니 심부름으로 두부 한 모를 사들고 오다가 그만 골목길 얼음판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내 손을 벗어난 두부는 형체가 으깨어져 먹을 수 없게 됐다. 두부가 이렇게 무른 식품인줄 그 때 비로소 깨달았다.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어머니께 제대로 두부 심부름을 못하여 꾸중 들을 줄 알고 잔뜩 긴장했었다. 그러나 어머닌 실수는 누구나 저지르는 일이라며 오히려 다치지 않았느냐는 걱정부터 해왔다. 당시 조숙한 탓이었을까? 얼음판에 넘어질 때  두부가 망가지는 것을 본 이후, 훗날 자라서는 두부처럼 무른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런 생각은 무엇보다 어머니의 가정교육에 더욱 힘입어서다.

남다른 배포와 원대한 꿈을 항상 가슴에 간직하라고 하였다. 자신의 잘못엔 엄격해도 타인의 허물엔 관대하라고도 했다. 그리고 소소한 일에 집착하지 말고 항상 마음 그릇을 크게 쓰는 사람이 되라고 타일렀다. 

이런 어머니의 가르침과 달리 훗날 성장하여 매사 철두철미함만 추구하였다. 어디서든 헛발질 하는 것을 경계해 왔다. 정도(正道)만 걷길 고집하여 융통성 및 유연성이 부족하였다. 요즘엔 나이 탓이런가. 점점 소인배가 돼 가는 느낌이다. 어느 땐 타인이 건넨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자존심을 상해한다. 돌이켜보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나이들수록 성숙한 의식이 필요하잖은가. 아집, 편견, 그리고 옹색한 마음자락이야말로 얼마나 미숙한 인품인가.

두부는 비록 무르고 물러서 그야말로 치아 없이 잇몸으로 뭉개어 먹을 수 있는 식품이다. 음식도 너무 견고하면 치아를 손상 시킨다. 사람도 빈틈없이 너무 완벽하면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다. 틈이 있고 다소 마음의 여백이 있을 때 진정 인간 냄새가 물씬 풍긴다고나 할까. 너무 종잇장처럼 얄팍하고 얍삽하며 완전하면 인간미를 느낄 수 없잖은가. 새해엔 엉뚱할지 모르나 두부로부터 삶의 지혜를 다시금 얻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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